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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관리자  2007-06-01 16:09:04   조회: 3563   
[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좌충우돌 이정규 사범의 미국 정착기 (3)

미국 입국때 공항에서 봉변 잇따라, 검은 봉지 안에서 풍겨오는 순대 냄새

[527호] 2006년 12월 18일 (월) 이정규 wtkd@paran.com

● 드디어 들이닥친 영어 쓰나미

영어 못해도 어떻게 한자리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겠지 하던 넉살 좋은 내 생각은 4학년이 되어서 여지없이 깨졌다. 한 기업 입사시험에 응시를 했다. 30대 1도 넘는 경쟁률에 1차, 2차, 3차 시험이 다 영어로만 치루어 졌다. 당연히 미역국이었다.

‘영어를 배워야 산다’라는 결론에 닿았다. 어떻게? 영어의 바다에 빠져라! 미국으로 가는 거다. 게다가 내 어릴 적 꿈이 바로 국제 태권도 사범 아니었던가.

아틀란타 올림픽 때 아틀란타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쯤 떨어져 있는 차타누가라는 테네시주의 한인교회에 들러 시범을 했었다. 시범을 본 교회 한글학교에서 사범을 보내줄 수 없겠느냐는 요청을 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 한글학교에 전화를 드렸더니 오면 좋기는 한데 보수를 주기에는 한글학교나 교회의 규모가 너무 작다고 했다. 다만 일자리를 찾아 줄 테니 생활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라지 않았는가. 어떻게 인생이 뒤바뀔 지는 상상도 못한 채 신바람 나서 얼른 가겠다고 결정을 했다.

● 샌프란시스코 공항 출입국 관리소

미국에 들어간다니 아는 사람이 자기 동생에게 보내는 물건을 좀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탑승시간이 다되어 가도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검은 가방을 건네주며 잡다한 소품들이란다. 남의 짐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는 일은 금지된 일이다. 어쨌든 조급한 맘에 서둘러 비행기를 탔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신고를 하면서 비자를 보여주었다. 내가 가진 비자는 관광용 방문비자였다. 미국 입국 시 출입국 관리소에서 다시 한 번 방문 목적을 확인하고 체류기한이 찍힌 도장을 찍어준다. 그 기간을 초과해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더욱이 학교를 다닌다거나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것도 몰랐다.

입국 목적이 뭐냐고 하길래 영어도 좀 배우고 미국에서 생활하며 경험도 좀 쌓고 싶어 왔다고 했다. 한국에선 뭘 하느냐? 대학을 졸업했고 직업은 아직 없다. 더듬거리긴 했지만 성실하게 대답했는데 인상을 팍 쓴다. 권총 찬 사람을 불러 나를 인계하더니 따라 가란다. 배낭을 등에 지고 손엔 검은 가방하나 들고 덜렁덜렁 따라갔다. 공항 한구석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들 정복차림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분위기가 이게 아니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짐을 다 풀어 놓으라더니 수색을 한다.

수첩을 뒤지고 지갑을 열어 돈이 얼마나 있는지도 다 세어 본다. 허리띠며 신발 밑창까지 정밀 수색이다. 맨발로 서서 범죄자 취급받으며 취조를 당했다. 수첩에서 어학코스를 밟을 계획을 찾아내었다. 이거 뭐냐? 하여 영어를 배울 학교다. 그랬더니 “그건 불법이다 넌 분명 불법체류를 계획하고 들어온 녀석”이라며 막 다그친다.

우린 너를 미국에 받을 생각이 없다. 다른 범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아도 그대로 강제 출국이란다. 덜컥 겁이 났다. 그럼 학교 안 다니고 몇 달만 있다 가면 안되냐 그랬더니 내가 가지고온 돈 가지고는 한 달도 못 버틴단다.

아메리칸 드림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떠들썩하게 환송식 다 치르고 어제 떠난 한국을 오늘 쫓기어간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아찔했다.

그런데 나를 취조하던 사람 곁으로 다른 권총 찬 사내가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춰 섰다. 흩어져 있는 사진 한 장을 손으로 짚었다. 군대에서 M60 기관총 사수 때 찍은 사진이었다.

가슴에 탄띠를 교차해서 걸고 기관총을 들고 있던 사진이었다.

그 사람이 내 사진을 보더니 너도 M60 사수였냐고 묻는다. 난 시무룩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대로 훈련받은 기관총 사수라면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숙달된 사람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인지 아니면 그냥 사진 찍자고 남의 총 들고 폼잡고 있는 건지. 난 복무했던 기갑여단에서 M60 최고 기록 사수였다.

물끄러미 내 사진을 보며 서 있던 사람이 나를 취조하던 사람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하고 나한테 사진 잘 봤다며 자리를 떴다. 갑자기 그 취조하던 사람이 짐을 다시 싸란다.

짐을 싸고 허리띠를 찾아 매고 신발을 신으니 내 입국 신고서에 체류 허가 도장을 꽝 찍어 주었다. 6개월짜리 체류허가였다. 가도 좋단다. 가도 돼? 뜻밖이었다. 아마 지나가던 그 사람이 잘 좀 봐주라고 부탁한 모양이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전우가 나타나 나를 구해주곤 화랑담배 연기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어쨌든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취조실을 나와 다음 단계로 세관신고를 향해 갔다. 인상이 안 좋아 보이나? 이번엔 세관에 잡혔다. 가방을 열란다.

그러더니 가방 속에서 꽁꽁 저며 맨 검은 비닐봉지를 꺼낸다. 아까 그 사무실에서 미처 열지 못했던 봉지다. 이게 뭐냐고 묻는다. 갑자기 아득했다. 모른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그 안에 뭐가 담겼는지 나도 모르지... 머뭇거리는 표정이 보이자 의심이 갔는지 바로 꽁꽁 싸맨 비닐봉지를 푼다. 저게 뭘까? 풀기 전에 답을 맞춰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집히는 게 있었다. '설마 미국까지 오는 사람에게 그런 짓을?' 세관원이 들고 보여줄 때 비닐봉지 모양이 마치 고무호스를 말아놓은 것처럼 보였었다.

그 찰라 봉투매듭을 딱 풀어헤치고 속을 들여다 본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뒤로 제켰다. “으악! 이게 뭐야?” 바로 대답했다. “순대!"

두 손을 쭉 내민 채 기겁을 하고 서있는 세관원과 검은 봉지 너머로 풍겨오는 순대 냄새. 맞았군... 난 쫓겨나다시피 순대 봉지를 들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아,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아니 보낼게 없어서 자르지도 않은 둘둘 말린 순대를 나를 시켜 보내나? 하마터면 또 쫓겨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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