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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소 권 사장
 작성자 : 최재운  2007-10-13 20:09:25   조회: 2058   
2년 전 이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무엇보다도 절실하고 답답한 일이 단골 이발소를 물색하는 일이었다. 12년간 꾸준히 다니던 이발소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더 이상 이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흔한 게 이발소 같지만 이발사의 성향이나 실력도 제대로 모르면서 아무데나 드나들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저번에 다니던 이발소는 마치 내집을 드나들 듯 부담이 없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아무 말이 없어도 자리에 앉기만 하면 그만이다. 40대 후반의 노련한 이발사가 다 알아서 해주니 편리하기 짝이 없었다. 애써 구구히 설명하고 주문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이렇게 편하니 한 번 정한 단골을 12년이 넘도록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번에 살던 곳과는 달리 이 근처에서는 마음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동네 이발소를 찾기가 여의치 못하다. 오죽했으면 적잖은 시간을 투자하여 서쪽 반대편 끝에 있는 옛 단골 이발소로 두 번이나 찾아가기까지 했을까. 이 지역 지리에 어둡고 골목이며 사람들이 낯설기만 하니 어찌하겠는가. 이발소 숫자도 많지 않으니 취향에 맞는 곳을 찾기가 더욱 힘든다. 그렇다고 매번 그 먼 길을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골로 드나들만한 가게를 찾기 위해 작정을 하고 찾아 나섰다. 골목골목을 몇 차례 누빈 끝에 그리 멀지 않은 한적한 모퉁이에서 아담하면서도 친근감이 가는 이발소 하나를 찾았다. 수수한 외관으로 보아 요금도 별로 비쌀 것 같지 않았다.

이발사 생활 40년이 넘었다며 목에 잔뜩 힘을 주는 권 사장을 여기서 만났다. 60이 넘은 나이에 수 십년을 이발가위와 함께 살아온 흔적이 굽은 허리로 남았다. 요새 나이로는 노인 축에 도 끼지 못하건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보인다. 중키에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을 지녔다. 소파 위에 널브러진 신문을 뒤적이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어느 듯 권 사장의 인생강좌가 시작된다. 이미 수 차례 들어온 재방송이지만 별로 싫지 않으니 신기하다. 지난 세월 화려했던 경력이며 목좋은 가게를 얻어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던 때의 무용담이 주 메뉴다. 명절 대목에는 손님이 밀려 부인은 물론이고 사람을 여러 명 고용한 적도 있었다며 한껏 기염을 토한다. 불경기를 모르던 황금시대의 꿈같은 이야기다.

이제는 그 좋든 세월은 다 지나간 옛이야기일 뿐이다. 심한 경우 하루 종일 가게문을 열고 기다려도 너 댓명 손님을 맞을까 말까한 형편이란다. 눈도 침침하고 기력도 옛날 같지 않아서 가위질이 힘에 부친다고 푸념이다. 시종일관 넋두리와 한숨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더욱 서글픈 일은 젊은 사람들이 이발 기술을 배우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기술을 전수하고자 해도 받을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단다. 게다가 세련된 미장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손님을 죄다 빼앗아가 버려 운영이 더욱 어렵단다. 나긋나긋한 젊은 아가씨들이 최신설비가 갖추어진 아늑한 공간에서 곱디고운 손으로 정성을 다해 머리를 만져주니, 신세대 젊은 남성들이 허연 머리에 구부정한 노인네가 운영하는 골동품같은 이발소를 찾을 까닭이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만 해도 참한 미용소가 서너 군데 있다. 이름부터가 ‘OO헤어컷’, ‘OO헤어숍’ ‘OO헤어살롱’ 등과 같이 신선하고 매끈하여 젊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들이 집에서 가깝고 요금도 비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내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고방식이 고루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감히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출퇴근 때 얼핏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사내아이들은 물론이고 제법 나이든 중년신사며 심지어 내 또래의 중늙은이도 눈에 띈다. 정말 기이한 일이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을까? 주위에 젊은 여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 생긴 미용실일수록 내부장식이나 외양이 산뜻하고 밝다. 현대식 디자인에 시선을 끄는 겉모양부터 권 사장의 이발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중충하지 않고 환한 조명에 내부 집기도 개성이 넘친다. 전반적으로 산뜻하면서도 편안하며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일하는 사람들도 대개 젊고 아릿다운 아가씨들이니 어찌 게임이 되겠는가. 머리를 손질하는 기술이야 40년 경력의 노련한 이발사가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지금이 어디 손재주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든가. 세월이 변하고 생각이 바뀌고 취향이 달라졌으니 어찌하랴. 권 사장이 혼자 아무리 한탄하고 땅을 친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권 사장 가게를 찾을 때마다 늘 자랑삼아 듣는 이야기가 있다. 보기에는 초라해도 상당한 지위의 인사들이 자기 가게의 단골이라는 주장이다. 그 중에서도 30대 중반의 어느 판사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발소 바로 가까이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대를 이은 단골이란다. 하루는 그가 이발을 하고 돌아 갔다가 얼마 후 아버지와 같이 다시 나타났다. 아버지는 권 사장에게 아들의 머리를 다시 손질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점잖은 판사 나으리 체통에 맞는 헤어스타일로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높은신 판사 영감도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찍소리 못하고 다시 머리를 내 맞기고 있더란다. 이 세상에 판사님의 머리를 마음대로 그 것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주무르는 사람이 흔하지 않을 것이니, 이만하면 어깨에 힘줄만 하지 않는가 하고 한바탕 허탈하게 웃었다.

지난 일요일 저녁답 이발을 한지 한 달이 넘어 권 사장 가게를 찾았다. 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할아버지가 이발 중이었다. 40중반 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이 가게 밖에 의자를 내다놓고 앉아 철지난 주간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세 사람이나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대개 나 혼자 이거나 한 사람 정도 순서가 밀려있는 수가 많았다. 보아하니 오늘은 족히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권 사장의 구수한 입담과 할아버지의 재치 넘치는 맞장구가 찰떡 궁합이 되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소파에 수북히 쌓인 신문뭉치를 펼쳐들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 때문에 도대체 기사내용에 깊이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모 야당 대통령 예비후보들의 네가티브 선거전 이야기로 온통 도배를 한 주간지를 몇 차례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그 내용을 외울 있을 때 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자리에 앉는 순간 정면에 게시해둔 영업허가증으로 눈길이 갔다. 처음부터 그기에 있었겠지만 한 번도 눈에 띈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에 하얗게 빛이 바래 사진과 글씨가 희미하다. 액자 속에서 20대 중반의 권 사장이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싸인펜으로 굵게 쓴 주민등록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44****로 시작을 하니 그의 나이가 60을 넘겼음은 분명하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 남긴 훈장이던가. 퇴색한 사진을 처다보고 있으려니 날로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오늘날의 이발소 모습을 보는 듯했다. 급변하는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있는 60대 중반 이발사의 노쇠한 얼굴이 한데 겹쳐 눈앞에 어른거린다.

동네 이발소는 주민들이 모여 소식을 전하고 정보를 서로 나누며 열띤 시국토론도 벌이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오늘의 대표연사는 방금 이발을 마친 바로 그 할아버지다. 줄잡아 70대 중반은 됨직한 그는 최근의 모 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며 아프카니스탄 인질사태 등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해박하고 정연한 논리를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낸들 어찌 의견이 없었겠냐만 잠자코 경청하면서 그의 탁견에 연신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언론사 정치부 기자출신인지는 몰라도 청산유수같이 쏟아내는 시사해설과 논평을 들으며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요새가 소위 IT시대가 아니든가. 온갖 매체에서 다양한 정보를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노력여하에 따라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특정 분야에서 권위자로 당당하게 부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그의 입담도 난데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와 지축을 흔드는 뇌성벽력 때문에 뚝 그쳤다. 집을 나설 때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잔득 끼어있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우산을 챙겨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폭우가 내릴 줄은 몰랐다. 세차게 부는 바람도 단단히 한 몫 거든다. 권 사장이 출입문에 드리워져 있던 발을 걷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그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된 할아버지는 재빠르게 다른 일거리를 찾았다. 빗자루를 들더니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는다. 오랜 단골이니 한 식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된 모양이다. 권 사장집 사정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 집 딸아이가 어느 직장에 다니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부인이 등산 중 다리를 다친 일 등 모르는 것이 없었다.

비가 그치자 끈질긴 입심을 자랑하던 할아버지도 떠났다. 말상대를 잃은 권 사장도 덩달아 입을 닫았다. 이윽고 이발이 끝나 요금을 지불하고 가게문을 막 나서려는 참이었다. 모처럼 불려나온 권 사장 부인이 차 한 잔을 내오겠다며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만원 남짓의 적은 요금을 내고 황송하게도 40년 실력의 명품 이발을 한 처지라서 뜻밖의 제의에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모처럼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는 일,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과연 차가 나왔다. 커피가 바닥났다며 새콤한 매실차를 내왔다. 더운 날씨에 뜨거운 차를 마시며 짧은 시간이지만 머리 속이 무척 복잡했다. 과연 염치없이 받아 마셔도 되는지. 이 분들의 호의는 어디까지인지 등.

훨씬 가까운 거리에 월등한 설비를 갖춘 최신식 미용소가 여러 군데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상당기간 발길은 권 사장 이발소로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세련된 설비와 자로잰듯 잘 다듬어진 기술보다는 허술해 보이지만 수수하고 편한 분위기가 내게는 제격이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주요 고객일 수 밖에 없는 미장원에 태연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다양한 연령층의 온갖 여성들 틈에서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장시간 버틸 자신이 없다. 젊은 여성에게 머리를 내 맡기기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변변치 못한 주변머리로 인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큼성큼 미용소 안으로 들어설 강심장도 없다.

첨단전자시대에 살다보니 인터넷이니 이메일이니 하는 최신 문명의 혜택을 받고있지만, 정신상태나 사고방식은 40십년 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답답한 노릇이다. 수 십년 간 몸에 밴 생각을 바꾸고 버릇을 고치는 일이 어찌 쉬울 수가 있겠는가. 나이들어 손동작도 느리고 돋보기 없이는 작업이 어려운 권 사장이 보기에도 딱하고 민망하지만 어찌하랴. 다소 멀리 걸어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당분간 그의 가게를 찾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도도한 시대적 흐름에 어찌 감히 거역할 수 있으랴. 나도 과감하게 생각을 바꾸어야 겠다. 편협되고 단선적인 사고의 틀을 깨야 할 때다. 권 사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멀지 않는 장래에 아파트 앞 ‘OO헤어컷’에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당당하게 들어설 날이 올 것이다.


( 2007. 9 )
2007-10-13 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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