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이 한창 피고 지더니 이젠 장미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한여름입니다. 잠깐 천둥과 소나기가 지나간 화단에 서서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시원한 한국 음식 생각이 났습니다. 냉면이 그립고 시원한 나박김치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웬일로 별로 시원하

이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딩의 가장 높은 곳에서 수십 미터 아래의 땅을 바라보며 서 있을 때, 비장한 마음으로 자신의 목을 매달기 위한 도구, 끈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오실 즈음이 되면 언제나 현관문을 손수 열어 놓았습니다. 대문에서부터 어머니의 기척이 나면 아버지는 현관 앞으로 나가서 어머니의 귀가를 맞으셨습니다. 벽돌로 지어진 집 한 쪽에 딸린 목욕탕에 장작불을 지피고 목욕물을 데우는 것은

막내아들이 집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항상 눈물이 났습니다. 속을 푹푹 썩이면서 언제나 제멋대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던 아들이었으니까요. 지난봄에 아들이 큰 사고를 친 후 내가 병석에 드러눕자 철이 들었나 봅니다. “청개구리 얘기가 무언지 아니?” 엄마가

몇 해 전, 뼈를 에는 겨울바람에도 초연히 서 있는 아비뇽 다리를 뒤로하고 왕복 5시간 거리에 있는 레 생-마리-드-라-메르(Les Saintes-Maries-de-la-Mer)를 향해 떠났습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남쪽 국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

겨울 눈보라와 함께 이곳 캐나다까지 불어온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소식은 국내의 소비자와 기존 치킨 판매업소 간의 치킨 가격 적정성에 대한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형업체 롯데마트가 군소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생존권을 흔든다는 항의에 부딪혀

앙드레 김의 타계 소식을 들으니 애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가 내 근무처에 뜻밖의 전화를 한 번 한 적이 있었고, 언론계 사람들을 통하여 내게 대한 관심을 보여 준 것도 있어 나는 그에게 빚을 진 느낌이 들기도

나는 6ㆍ25 동란 이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6ㆍ25나 1ㆍ4 후퇴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모두들 그 때는 초근목피로 생활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공산당이나 국군에 동조한 죄로 가족들이 죽었다, 이북으로 납치되었다고 하는

버드나무들이 휘늘어져 있던 천변은 우리 조무래기들에게는 놀이동산이었습니다. 가장 어린 나는 사촌들 속에 묻혀 색종이로 만든 팔랑개비를 날리며 달렸습니다. 그곳은 울안에 갇힌 한 마리의 토끼같던 내게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상설무대를 설

어느 무더운 여름 방학 때의 일이었습니다. 유년의 기억 중 아름답지 않은 사건이 생겼던 그 여름의 잔상은 이 나이가 되도록 완전히 가슴에서 지워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커다란 상처로 남아 나를 괴롭힌 적은 없었지만, 살아오면서 항상 개운하지 못한 기억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매일 오전 오후 내게 서예를 가르치시겠다며 고서로 가득했던 문방사우의 서재에 칠판을 들여 놓으셨습니다. 쪽문 밖의 해바라기들이 보이는 서재에서 노닥거리는 것은 좋아했지만, 아직도 놀기에 빠져 있던 내가 아

나에게서 가장 아름다웠던 유년의 봄이라면 몇 년간 살았던 남도의 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담했던 그 도시의 봄은, 그 곳을 감싸 안듯 흐르는 강의 살얼음이 녹아내리면 건너편 산, 들과 함께 서서히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다 남녘에서 훈풍이

오랜만에 이탈리아의 지중해변에 위치한 산레모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15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칸쏘네의 고장으로 알려진 이 도시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마 지중해 쪽빛 바다와 최초로 상면하게 되었던 그 기차역의 신선하고도 강렬한 인

해마다 구세군 사람들의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여기저기 울리기 시작하면 성탄절과 연말에 맞추어 봉사단체에서 편지들이 날아옵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아는 구세군단체(Salvation Army)나 고아들 오갈 곳 없는 여자들이 기거하는 코버넌 하우스(Cove

토론토에 거처를 마련한 후, 여느 도시를 방문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가 있는 시간에 돌아다닌 곳은 미술관과 박물관이었습니다. 그중 토론토 북쪽에 위치한 맥마이클(Mcmichael) 미술관은 전원적 풍경 속에 서있는 모습이 지금까지 어느 미술관에서도

무리 진 나무들과 호수, 강, 구름, 발길 가는 곳마다 우리를 그 은은한 향에 젖어 들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봄에는 연둣빛으로 피어나는 자작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의 숲,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면 푸르던 나뭇잎들이 명을 다한 모습으로 불타오르기 시

국내나 국외여행을 하다 보면 국립공원을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립공원은 그 이름에 걸맞게 모처럼 시간을 내어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흡족한 기쁨을 선사합니다. 이번에 다시 찾아본 미국의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도 그 장엄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 지금 엄마가 탄 비행기는 태평양 중심부 상공을 지나고 있어. 창 밖으로 펼쳐진 구름밭이 장관이구나. 문득 우리가 몬트리올에 살고 있을 때, 너랑 나랑 황홀한 구름에 취하여 하늘을 목 빠지게 올려보던 때가 떠오른다. “엄마, 지금 얼른 밖으로

가끔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 때마다 조용히 찾아가 쉬고 싶은 곳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한여름의 시원한 선들바람처럼 헝클어진 내 사념을 다스려 주는 추억이 깃든 곳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잠시 S시에 머물렀던 유년시절 기억 속의 한 페이지를

나는 전생에 유랑하는 집시였거나 아니면 정처 없이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 떠도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일반 사람들보다는 방랑벽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동안 집안에 오래 처져 있게 되면 그만 어디든지 사람이 없는 곳으로 카메라 메고 훌렁 떠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