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고 베트남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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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고 베트남을 가다

김수종

2006년 12월 27일 (수) 00:00:00

배를 타고 베트남을 다녀왔습니다.
필자가 탄 배는 우리나라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 두 나라 NGO가 공동으로 마련한 ‘피스 & 그린보트’였습니다. 전세 낸 크루즈 여객선은 일본선적 2만3천 톤급 후지마루이며 12월12일 부산항을 출항하여 후쿠오카, 홍콩을 거쳐 엿새 만에 베트남의 하롱베이 항에 닻을 내렸습니다.

베트남의 아주 작은 부분을 보았습니다. 시간으론 이틀이고 공간으론 하롱베이와 하노이를 잇는 자동차여행과 한나절의 하노이 구경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주마간산이었습니다. 일본보다 약간 작은 34만㎢의 영토사이즈를 생각하면 한 점을 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감히 베트남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우리의 시각에서 한 번 전망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겨울에 파릇파릇 자란 모판, 무성한 바나나 숲, 늪지에 몸을 반쯤 담근 채 풀을 뜯고 있는 물소 떼 등 농업국가로서 베트남은 꽤 풍요로운 목가적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하롱베이 항에서 하노이까지 약 160㎞를 버스로 이동하는 데 3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우리에겐 후진적인 정(靜)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3년전 만 해도 도로사정이 엉망이었던 것을 아는 현지주민들에겐 엄청나게 변화한 동(動)의 모습입니다. 삼성 현대의 포크레인이 군데군데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개혁 개방)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정치는 공산당독재, 경제는 자본주의를 도입한 중국을 본 딴 것입니다. 20년이 지난 오늘 연 8~9%의 경제성장률로 아시아의 성장국가 대열에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올해 외국인직접투자가 100억 달러를 넘을 정도니 베트남을 보는 세계의 눈길은 긍정적입니다.

베트남은 지정학적 위치가 참 좋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길쭉하게 차지한 이 나라의 해안선 길이는 3,000㎞가 넘어 동중국해의 한 변을 이룹니다. 육지엔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해저유전 매장량이 50억 톤에 이릅니다. 산업성장의 백이 든든합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주목할 변화는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개선 속도입니다. 미국은 지난 11월 하노이 APEC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용인하고 차별 없는 교역국가로 인정했습니다. 베트남의 대미무역흑자를 사실상 보장해 주는 전략적 조치입니다. 게다가 반도체기업 인텔의 베트남 현지투자까지 결정되었습니다.
무엇이 30년 전 두 원수지간을 가깝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중국을 견제하고 싶은 두 나라의 전략적 필요성이 합치한 것입니다. 베트남과 중국은 20년 전 전쟁을 치렀고, 남사군도의 영유권분쟁이 걸려있습니다. 베트남은 미국을 빌어 중국의 세력확대를 억제하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책략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 인구는 약 8천300만 명입니다. 60%가 30세 이하입니다. 10여 년 전 실리콘 밸리가 한창 피어날 때 그곳을 취재하면서 잘나가는 한 벤처기업의 CEO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컴퓨터프로그래밍에 필수적인 알고리즘 실력에서 한국과 일본인은 비슷하고 그 위에 중국인이 있다. 또 그 보다 상위에 인도인이 있으며, 제일 꼭대기에 유태인이 있다. 그런데 당신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중국인과 인도인 사이에 동양 인종이 있는데, 누군지 아느냐.” 그 CEO는 “그게 베트남인”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말의 진실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인도의 동반성장 즉 친디아(Chindia)현상을 보며 그 기억을 새롭게 떠 올립니다. 전쟁의 상처를 뒤로 젖혀버리고 전략적 선택을 하는 베트남의 변화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북한의 운명도 추리해 볼 수 있고, 아시아의 새로운 숨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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