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로 태어나서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방석순 프리즘

사나이로 태어나서

방석순

2009년 10월 05일 (월) 09:10:06

누구나 전쟁은 싫다고 말합니다. 평화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평화가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평화를 지킬 힘이 없으면 전쟁의 참화를 피할 길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리고 끝내는 나라까지 빼앗겼던 이 땅의 남자들에게 국방의 의무는 당연한 도리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이 들지 않았다면 병역은 이 나라 젊은 남자들이 마땅히 짊어져야할 신성한 의무입니다.

안타깝게도 어제도 오늘도 육체보다는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병신을 자처하며 병역을 기피하려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돈을 써가며 병신으로 만들고 비겁자로 만들려는 부모도 적지 않습니다. ‘비겁자,’ 남자로서 그보다 더 굴욕적인 낙인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군대는 권력자들의 사열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곳에서 권력을 꿈꾸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진중가(陣中歌)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병영생활 2~3년은 헛되이 버리는 세월이 아닙니다. 보람과 긍지를 느껴야할 소중한 기간인 것입니다.

갑갑하고 불편하고 성가시지만 군 생활은 남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을 쌓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군대는 남자를 더욱 참을성 있게 더욱 강인하게 더욱 남자답게 만드는 곳입니다.

“어느덧 훈련소에 온 지 11일째입니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나 취침시간이 되면 집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친구들도 보고 싶고요.
7월 31일 아들 OO 올림”

“오늘은 일요일이라 이렇게 편지도 쓸 수 있고 밀린 빨래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빨래도 하고 배식을 하기 위해 찌개, 밥통도 나르고 설거지도 해 보니까 집에서는 참 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군대에 오기 전엔 입대해서 별로 배울 점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책임감, 자신감, 용기 등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들을 배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8월 9일 아들 OO 올림”

“저번 편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저를 20여 년 간 몸 건강히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엔 어머니, 아버지 생각을 하면 가끔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괜히 뭉클해지기도 하고요. 제가 이제까지 잘 못해드린 것 같아서요.
8월 12일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 OO 올림”

“어제는 이곳 논산에서 받는 훈련 중 가장 힘들다고 하는 유격훈련을 받았습니다. 오전부터 많은 친구들이 지쳐 쓰러졌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쉬는데 소대장님이 ‘어머니의 은혜’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던 친구들이 나중엔 거의가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어떤 친구는 눈물을 그치지 않아 소대장님이 놀리기까지 하였습니다.
8월 15일(토)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 OO 올림”

“모두들 퇴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좋아합니다. 훈련도 모두들 사고 없이 치러내서 뿌듯해 하고 있고요.

입대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제 생활태도에 반성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다음에 절 보시면 분명히 더욱 멋있게 변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9월 10일 아들 OO 올림”

졸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아들이 훈련병 시절 보내온 편지들입니다. 제 방 청소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아 야단을 듣던 아들이었습니다. 편지가 날아올 때마다 고생한다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했지만 심성의 변화가 느껴져 대견스러웠습니다. 제 약속대로 지금은 성실한 직장인이 되어 있습니다.

아들보다 훨씬 많은 문제를 안고 씨름하던 제 젊은 시절 방황을 멈추게 해준 것도 군대였습니다. 가난한 살림, 불편한 생활,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사춘기의 불안정한 정서, 한때 집은 탈출하고 싶은 감옥 같이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포 소리가 땅을 흔드는 전방, 야수의 웅얼거림처럼 대남방송이 밤공기를 타고 흐르는 강변에서 비를 맞으며 보초를 서던 고달픈 병영생활 중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은 옹색했던 내 집이요, 보고 싶은 사람들은 어머니와 형제들이었습니다. 군대생활은 그렇게 내 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지금껏 그렇게 저를 철들게 했던 경험은 달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청문회나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병역이 마치 억울한 징역살이처럼 기피의 대상입니다. 공직자나 부유층 자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병역비리 사건은 시도 때도 없이 언론에 터져 나옵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성장을 보이는 20대 초반의 2년은 개개인 일생에서는 참으로 소중한 시기입니다. 더구나 운동선수와 같이 젊은 한 때 신체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생의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황금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황금 같은 시간을 바친 젊은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한다든지, 취업을 지원한다든지, 그런 실질적인 보상이 없다면 아무리 신성한 의무라 해도 앞장서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의무만 강요하고 그에 대한 혜택이 없다면 누구라도 피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군대생활의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면서도 학교를 마치고 취업한 회사에서 군 징집을 면제받아 상급자가 된 대학 동기생을 만나는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도 갖가지 훈련에 동원되는 동안 면제자들은 유유자적 제 생활을 즐긴다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군 복무를 필한 남성들에게 주던 채용시험에서의 가산점이 남녀불평등이라는 이유로 폐지되었습니다. 혹시 양성평등을 부르짖는 이 사회에서 남성만 징집대상이라는 것 또한 시정돼야 할 역차별은 아닌가요. 오히려 군 복무에 대한 가산점을 인정하고, 군 복무를 자원하는 여성들에게도 군문을 개방하는 건 어떨까요. 지금은 군 내에서도 여성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육해공군의 전투분야에서조차 여성들이 남성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보이는 시대입니다.

싱싱한 젊음을 군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단련케 하고, 개인별 적성과 전문성을 살린 부대 배치로 군의 효율도 높이고, 동시에 개개인의 사회진출을 위한 훈련기간으로 활용케 하는 방안을 강구한다면 군 복무자들에 대한 작은 보상책이 되지 않을지.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고 병무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군 복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하고 상대적인 불이익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병역비리의 근절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jongwan (121.XXX.XXX.244)

남자만 병역 의무가 있는 것은 역 차별입니다. 여자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려면 동등한 의무도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여자도 군대에 가야합니다. 여자라고 군인이 되지 못 한다는 것은 19세기 사고 방식 입니다. 군대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더 더 잘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자에게도 병역 의무를 주어야 합니다.

답변달기 ▼

2009-10-06 09:51:12

0		0

jhheo (121.XXX.XXX.244)

병역의무의 신성함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려면 병역의무를 마친 자들에게 특별한 사회적 우대를 부여해야합니다. 병읙의무를 마친자를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그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하고 병역은 선택적인 직업이 되어야합니다. 직장에서 국대 경력은 가산되어야하고 공무원 채용에도 우대를 받아야합니다.

답변달기 ▼

2009-10-06 09:49:40

0		0

한세상 (121.XXX.XXX.202)

군에 갔다온 것이 오히려 짐이 되게 내버려 둬서는 곤란합니다. 받아드릴 수 있는 범위에서 가산점, 우대제도를 마련하면 될 터인데 정부나 국회에서는 뭐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까지 담임선생님을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애들이 대부분입니다. 어쩌자구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

2009-10-05 22:48:30

0		0

김해진 (61.XXX.XXX.81)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국장님과 아드님이 느꼈던 "군생활이 주는 장점" 모두 공감합니다.
또한 군대를 가지 않는 사람(혹은 여러가지 사유로 면제 받은 경우)과의 차별점이 거의 없다는 점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군대를 회피하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군생활을 성실하게 마치는 사람들에게 혜택까지는 아니어도 '손해"보았다는 생각은 들지않게 제도가 바뀌었으면 합니다.

답변달기 ▼

2009-10-05 10:16:35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