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표기로 ‘Hankook' 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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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춘

2009년 10월 22일 (목) 00:50:48

1945년의 광복을 거쳐 1948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각각 따로 세운 남한과 북한은 나라의 영어호칭만은 똑 같이 Korea로 사용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영어로 글을 쓸 때 정식호칭인 The Republic of Korea(ROK)나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를 사용하지 않을 때엔 남한은 South, 북한은 North 를 Korea 앞에 꼭 넣어 구별을 하였습니다.

기사를 작성할 때에는 공식 성명서를 인용하는 등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번거로움을 피해 국가의 정식호칭을 매번 쓰지 않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러나 영문기사 작성상의 이런 관례를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을 South Korea로 표기하는 것을 정부 당국에서는 신경질적으로 싫어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논리상으로는 당연한 일이었지요.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니 South Korea란 당치도 않은 표기이지요. 그러니 ‘South Korean President’ 란 호칭을 이승만 대통령이 좋아했을 리가 없고 다음 정부도 그러했지만 특히 이런 영어표기를 싫어한 것이 제3공화국 이후의 군사정권이었습니다.

외신에 종사하는 언론인이면 이 일로 정부당국자와 한두 번 입씨름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사이 세상이 바뀌어 북한이 국제연합의 회원국이 되고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물론이고 6자회담 등 여러 국제회의에서 우리와 동등한 입장에서 외교 활동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듭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양쪽 호칭을 ‘한국’ ‘조선’ 이라고 완연히 구별하여 표기하니 별 문제는 없지만 몇몇 구미 선진국을 제외한 일부 국가에서는 Korea라는 단어에서 오는 혼란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 손상은 피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 등 모든 분야에서 ‘조선’이란 고유명사를 사용하면서 왜 영어에서는 ‘코리아’를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만일 북한이 영어표기에서 ‘코리아’를 버렸더라면 영어호칭에서 오는 이러한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언론계에서 일하는 오래된 외국인 친구 한 사람이 최근 우리 영자신문에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영어에서 ‘Korea' 대신 ’Hankook‘을 쓰자고 제안하는 글을 써 퍽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에 외신기자 모임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어 내 칼럼에 당신 글을 인용할까 하는데 좋으냐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카피라이트(copyright)로 꽁꽁 묶어둔 글이 아니니 얼마라도 쓰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 20년 이상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써온 영국 태생의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씨는 북한에도 다녀온 적이 있고 한반도 문제에 관한 책도 쓰는 등 우리나라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1989년에 당시 버마로 불렸던 동남아 국가의 군사정부가 국호를 ‘미얀마’(Myanmar)로 변경하자 국제연합은 단 5일 만에 새 호칭으로 바꾸었다는 예를 들며, 브린 씨는 한국도 그런 식으로 영어표기를 ‘Hankook'으로 바꾸면 남북한의 영어호칭에서 오는 혼란이나 한국이 받는 이미지 손상 등의 문제가 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개정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한국’은 의당 ‘Hanguk'으로 써야 하나, 이 경우 ’Hang-ook'(항욱)으로 잘못 발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옛 표기법을 따라 ‘Hankook'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친절한 충고까지 그는 덧붙였습니다.

브린 씨는 자기가 칼럼을 쓰는 영문지의 모회사가 ‘Hankook'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만, 사실 ’Hanguk'이라 표기했을 때엔 그런 위험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국역을 ‘Anguk'이라고 표기하는데 제 일본 친구 한 사람이 이를 ’앙욱‘이라고 발음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요즘 들어 바짝 ‘KOREA'의 브랜드 이미지 세계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에 브린 씨의 의견을 참작하여 과감하게 ’Hankook' 카드를 들고 나서 북한하고는 판이한 대한민국의 이미지 증진에 승부를 걸어보는 길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