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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따로 현실 따로

김홍묵

2009년 11월 16일 (월) 02:55:08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보정역. 2006년 11월 전철 분당선을 연장하여 생긴 역입니다. 죽전지구 개발과 함께 급격히 늘어난 주택과 인구 때문에 교통수요가 폭증하여 용인시가 60억 원을 들여 지은 역이라고 합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탓도 있었지만 보정역 주변은 아파트값이 다락같이 올랐습니다. 텅텅 비어 있던 주변에는 금세 아파트 단독주택과 상가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상전벽해가 되었습니다.

보정역이 종점이거나 역을 거쳐 서울 등지로 운행하는 수십개 노선버스가 드나들면서 요즘 보정역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한낮이나 밤늦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곳을 출발하는 전철은 항상 만원 승객으로 가득합니다.

사람이 들끓는 곳을 상인들이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인근에 가건물 상가가 줄지어 들어서면서 온갖 가게가 늘어선 저자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가장 빠른 속도로 허허벌판이 도회로 변모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화가 순기능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던 주민이나 환승 승객들은 요즘 보정역을 드나들면서 짜증을 먼저 냅니다. 역 주변이 난장판 같은 무질서의 백화점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합실을 빠져 나오자 마자 광장을 가로막고 있는 노점 옷가게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 천장까지 만들어 놓은 광장에는 행거들로 메워져 통행하기가 불편한 데다 점점 더 인도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역무원에게 “승객에게 불편을 주고 있으니 단속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역무원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거기는 용인시가 관리하는 곳이니 시청에나 물어 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물어 보는 사람만 얼굴이 화끈거릴 뿐이었습니다.

거기다 좁아진 보행로 한가운데에 지난 봄부터 산나물 야채 고구마 같은 것을 파는 할머니들까지 가세해 통로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광장 옆의 가게들도 덩달아 인도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풀빵틀, 화초, 과일, 비치파라솔이 보도를 절반 이상 점령했습니다.

지을 때 역사와 보도 사이에는 화단이 마련돼 나무와 꽃들로 단장돼 있었습니다. 원체 많은 사람들이 버스나 택시를 기다리느라 서성거리다 보니 화단이 성할 리 없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화단을 싹 밀어 버리고 보도블록을 깔아 놓았습니다.

역 앞 차도는 버스와 택시 전용이라지만 한 걸음이라도 아끼려는 극성스러운 사람들의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혼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버스는 가운데 차선에서 손님을 내리고 태웁니다. 승객들이 차도로 뛰어나가 승차하는 것은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맨 먼저 자리 잡은 구두수선 박스는 그렇다 치고 전신주와 가로등 옆에는 대형 쓰레기 봉투가 흉물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약간 외진 곳에 마련된 자전거 보관대에는 밤늦은 시간 취객들의 방뇨로 냄새까지 풍깁니다.

‘살아서는 진천 , 죽어서는 용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수가 우아해 옛부터 명당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산을 깎고 들을 메워 지은 아파트 숲이 울창해졌습니다. 난개발의 대명사로 꼽히기도 했던 용인은 100만 인구를 넘보고 있습니다.

용인 곳곳에는 ‘세계 최고 선진 용인’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청사도 들어섰습니다. 앞서가는 용인 최고의 용인을 지향하는 당국이 뒤안길의 혼잡과 역겨움을 먼저 없앤다면 더욱 아름다운 용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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