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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미안해!
이상대 2009년 12월 02일 (수) 00:52:37
요즘 마누라 곁에 좌정하고 김장을 거들지 않으면… 농담이겠지만, 쫓겨난다거나 큰일이 난다고들 합니다.

엊그제 시골에서 맛있다는 배추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내려가기 전부터 아내가 김장 걱정을 하면서 할인점과 시장을 분주히 오가며 탐색전(?)을 벌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곳의 것이 싸고 좋은가? 보통의 주부들이 흔히 하는 모습이려니 했습니다. 차를 가지고 사러 가자느니 손수레로 혼자 나를까 하더니 아무 소리가 없었습니다. 급하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차를 가지고 시골 갔다 와야 한다니까 잘 되었다면서 배추를 좀 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값은 고하간에 하천 부근의 토심 좋은 밭에서 재배한 것이라 맛좋기로 소문난 배추가 있다니까 좋다고 하였습니다.

친구에게 미리 부탁하고 갔는데, 마침 친구가 재배한 것이 있어 아주 싸게 사 가지고 왔습니다. 막상 가지고 와서 싸고 좋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시큰둥하였습니다. 포기가 너무 작다나…

가만히 보니 그저께부터 슬슬 김장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 없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런 현상도 나이 들어가면서 뒤늦게 느끼는 마음의 변화인가 봅니다.

아닙니다. 세상이 급변하는 탓인지 김장하는 데 남자들이 많이 거드는 것을 여기저기서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지인과 산에 가기로 약속을 하였기에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가 늦은 밤에 돌아오니 버무리기만 하면 될 정도로 온 종일 김장 준비를 한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미안해서 뭐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물으니 김치를 담을 통이나 갖다놓고 뚜껑을 모두 열어두고 가서 잠이나 자라는 것입니다. 성격을 아는지라 통을 챙겨 주고는 아무 소리 없이 슬그머니 방으로 가 잠을 잤습니다.

피곤했는지 바로 잠을 잤고, 여느 날보다 좀 늦게 일어나 보니 김장한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밤새 혼자서 뒷정리까지 다 하고.

언제 끝이 났는지 모르지만 제 잠을 깨울까 염려하여 딸아이 방에서 아직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여보, 미안해. 잠이나 실컷 주무셔. 아침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 것이니...”


글쓴이 이상대님은 경북 영주 태생의 농업인입니다. 육군 장교 출신으로 1988년 가을부터 전북 무주에 터를 잡아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마음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가축, 주로 염소를 방목 사육하다가 정리한 후 지금은 소규모 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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