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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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황경춘

2009년 12월 14일 (월) 01:43:19

우측보행을 실시한 지가 제법 되었습니다. 지하철역 통로나 계단에는 화살표가 함께 그려진 ‘우측통행’이란 표시가 여러 군데 보이고 벽면에는 ‘편리하고 안전한 우측보행, 우리의 그리고 세계의 보행문화‘라고 적힌 포스터도 많이 눈에 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넓은 지하철역의 계단이나 통로에서뿐 아니라 일반도로 보도를 걸을 때의 혼란과 불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시행 초부터 가능한 한 우측보행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왜 ‘가능한 한’이란 말을 쓰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도저히 우측보행을 실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좁은 골목길이나 보도에서는 반드시 오른편을 걷습니다. 앞에 사람이 나타나 부딪칠 정도가 되면 오른쪽으로 몸을 피합니다. 지하철역 계단에서는 오른쪽 손잡이를 잡으면 대개의 경우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이 제 왼쪽으로 피해 갑니다. 그러나 지하철 환승역 계단에서는 이게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하차한 방향에 따라 일시에 많은 승객이 제가 가려는 오른쪽 방향으로 쏠려 오르내리면 저 혼자만이 오른쪽을 고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엔 시간에 별 구애를 받지 않는 제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그 큰 흐름을 혼자서 막아설 재간은 없으니까요.

가끔은 우리 시민의 공중도덕이 전반적으로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보행 규칙의 변경에 따른 혼란에는 약간의 이해가 갑니다. 생각해 보면 오랜 세월 계속되어온 보행문화를 정부의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바꾸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일본 통치하에 있을 때, 모든 차량과 보행인은 좌측통행이었습니다. 명치(明治) 개화 이후 영국과 가까워진 일본은 차량의 좌측통행을 채택하였습니다. 캐나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연방(英聯邦) 소속 나라와 2차대전 전 영국과 가까웠던 태국 인도네시아 등 몇 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현재까지 이 좌측통행을 계속 실시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웃인 캐나다는 이미 2차대전 전에 미국과 같은 우측통행으로 바꾸었습니다.

한국은 광복 이후 철도를 제외한 모든 차량의 통행이 미국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제 때 건설된 철도는 신호체계를 우측통행으로 변경하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문제 등 으로 이 우측통행 실시에서 제외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철도와 연결되어 운용하게 된 지하철 1호선은 다른 노선과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고 있습니다.

1940년대 후반엔 지금처럼 자동차 교통이 복잡하지는 않았으나, 일제 때부터 좌측통행에 익숙해 있었고 운전대가 오른쪽에 위치한 일제 차를 몰던 한국인 운전사들이 크게 당황한 것은 물론이고, 광복 직후에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된 수많은 미군 운전사와의 사이에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랜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어려운 일이었겠지요.

전후에도 차량의 좌측통행을 고집한 일본은 교통이 폭주하자 교통사고의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한때 대향통행(對向通行) 즉 보행자는 차량 진행방향과는 다른 우측통행을 권장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그 결과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교사 내 복도에서의 우측통행을 지도하는 곳도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차 등 모든 대중교통이 좌측통행 위주로 만들어져 운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대향통행 정책은 빛을 못 보았다고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차량의 우측통행에 관계없이 보행자의 좌측통행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 계속된 습관을 갑자기 바꾼다는 것이 어렵다는 데는 누구나 수긍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형편을 살펴보면 의식적으로 우측보행을 하려는 노력이 일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저의 집과 지하철역 사이에 초등학교가 있어 좁은 보도에서 등하교 학생들과 자주 부딪칩니다. 그럴 때마다 과연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측보행에 관한 훈련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를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당국의 포스터가 말하는 것처럼 우측보행이 세계의 보행문화라면 여기에 대한 더욱 친절한 계몽을 학교나 대중매체에서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함께 자동차의 운전 매너와 비슷하게 보행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매너를 각자가 지켜주면 노약자나 신체 장애인이 더욱 안전하고 마음 편하게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 (203.XXX.XXX.171)

글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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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6 10: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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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석 (211.XXX.XXX.129)

보행은 인간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나라의 보행문화를 모르다가 좋은 지식이 되었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건강히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장에서 보잘것 없는 글로 10권의 책을 만들어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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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5 08: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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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중 (211.XXX.XXX.129)

저는 우리나라처럼 차량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갖은 운전자들이 있는 나라에서는 대향통행(對向通行) 즉 보행자는 차량 진행방향과는 다른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인도가 따로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좁은 길을 오른쪽으로 가다가 뒤에서 오는 차를 인지하지 못하고 갑자기 좌측으로 발을 떼어 놓는 순간 교통사고가 날 확률이 무척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도가 없는 좁은 길에서는 제 자신도 반드시 좌측통행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알리느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측보행을 강제하려면 먼저 모든 골목길에 보행자를 위핸 보도를 만들거나, 운전자로 하여금 그런 길에서 보행자를 보면 무조건 속도를 낮추는 문화를 먼저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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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4: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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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상 (211.XXX.XXX.129)

우측통행을 확산시키기 위해 학교에서 교육을 실시하는 등 과정에 드는 비용보다, 정부가 우측통행 억지로 시키려고 했던 걸 취소할 때의 비용(경제적비용 뿐 아니라 사회적비용까지)이 훨씬 덜 들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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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4: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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