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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깊이와 넓이
최병상 2009년 12월 18일 (금) 00:24:56
"우리 나락은 언제 사줄랑가 모르겄어."
일흔을 넘긴 상동양반, 발산댁의 푸념입니다.
정월 초하루가 엊그제 같은데 달력은 뎅그러니 한 장 남아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뭔가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때 아직도 팔리지 않은 벼 가마가 군청 앞에, 도청 앞에 쌓여 있어 답답합니다.

2001년도에 1가마당 16만8천 원 하던 쌀값이 14만 원대로 곤두박질하고 그나마 팔리지도 않고 있으니 농민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닌 이방인이 분명합니다. 쌀값 뿐 아니라 고추 값도 10년째 1근에 7~8천을 오르내리고, 깨 값도 2~3만원을, 배추 값도 포기당 5백원~1천원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농자재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농민들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65년도에 엥겔계수는 63,4%나 되었는데 이젠 겨우 25,6%(2008년말 현재)에 불과합니다.

이런 현상은 임금제(의,식,주) 중에서 의(衣)와 주(住)는 대기업이 장악하여 독과점을 형성, 초과이윤을 실현 하는데도 정경유착으로 어쩌지 못하고, 식(食)을 담당한 농민만을 만만하게 보고 가격 지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 좋은 옷은 없어도 배는 부르게 해야 불만의 폭발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끓는 물이 넘치지 않게 하는 주전자 뚜껑의 구멍 역할을 농민에게 지우는 정부의 계산된 의도 때문입니다!

이런 고도의 정치적 술수와 소비자의 저렴한 가계비에 대한 욕구가 야합하여 농민들을 빚더미에 앉히고 머리띠 동여매고 거리로 나서 아스팔트 농사까지 짓게 합니다. 값싼 농산물을 사주는 대신 공산품을 수출하여 외화도 벌고 넘치는 농산물로는 값을 낮춰 먹을거리에 대한 부담을 줄여 불만을 잠재우는 1석 2조의 재미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 심연의 골은 깊을 대로 깊어 우리 경제의 90% 이상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니 국가의 백년대개가 심히 걱정 됩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여의도에서 쌀값 올리라고, 수매량 늘리라고, 대북지원 재개하라고 외치면 소수의 농민을 위해 다수의 국민이 희생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동결시키다 못해 떨어뜨립니다. 작년 말 현재 농민은 318만 7천명으로 전체인구 4,860만7천 명 중 6,5%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런 도식적인 통계수치를 근거로 농업, 농촌, 농민을 홀대하고 있습니다. 소위 협의의 농업개념입니다! 과연 농업이 그렇게 얕고 좁을까요?

화난다고, 슬프다고, 기쁘다고, 무슨 무슨 기념일이라고, 연말이라고 연초라고 마셔대는 모든 술의 원료는 농산물입니다. 소주의 원료는 쌀이고 맥주의 원료는 맥주보리, 포도주의 원료는 포도, 고급 양주도, 북한의 들쭉술도 모두 농산물입니다. 요즘 상종가를 치는 막걸리도 쌀로 빚고요. 그래서 모든 술 공장은 농업이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농민이고 술 취한 사람들 역시 주변농민이고 나이트클럽이나 술 가게도 농업이 분명합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가 입는 모든 옷의 원료는 목화, 양모, 양피, 대마, 뽕나무, 모시 등 모두 농산물과 축산물입니다. 일부 나일론이 첨가되지만 주원료는 모두 농업이 제공합니다.
그래서 방직공장은 농업이고 양장점, 양복점, 의류공장, 의류가게는 농업이고 거기에 종사하는 모두는 농민이고 패션쇼 모델도, 디자이너도 농민입니다.

또 있습니다. 제빵공장, 국수공장, 라면공장, 제과공장, 설탕공장, 두부공장, 우유공장, 통조림공장, 간장공장, 햄공장, 메주공장, 두유공장, 치즈공장, 쥬스공장의 원료도 밀이고 콩이고 과일이고 젖소와 고깃소입니다. 역시 농민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농산물입니다. 이런 공장들,종업원들, 유통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농민 손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농업이 문을 닫으면 함께 문을 닫아야 하는 비료공장, 농기계공장, 농약공장, 비닐공장, 사료공장, 포대공장도,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도 모두 농업, 농민입니다.

미국의 농민은 전체 인구의 1,9%에 불과하지만 미국정부는 농업 때문에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35%로 인정하고 거기에 상응한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별의별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으며 심지어 주식도 아닌 쌀 농가를 위해 비싸게 사주고 수출업자에게는 싸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슈퍼 301조(모든 국제법에 우선)를 제정하여 외국농산물이 과다 수입되어 값을 떨어뜨리면 곧바로 제재하여 자국농산물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위 광의의 농업개념으로 무장하여 머잖아 다가올 식량의 무기화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의 공산품을 사줄 나라가 있고 언제까지 우리에게 값싼 농산물을 팔아 줄 나라가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협의의 농업개념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광의의 농업개념으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농업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은 6,5%에 불과해도 우리 국민의 50%는 농업 때문에 삶을 유지할 것입니다. 제발 좁은 눈으로 보지 말고 넉넉한 눈으로 농업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벼 가마가 아스팔트 위에 쌓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 병상씨는 한국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 사무국장과 3대 지방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고향인 전남 무안군 몽탄면 학산리에서 쌀농사를 하며 꿀벌을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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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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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3.XXX.XXX.182)
현장감 가득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때론 가슴 아프고 때론 안타까웠지만, 결론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다면 사람과 사회는 변화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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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11: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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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211.XXX.XXX.129)
농사짓고 공부하는 최선생님만이 쓸 수 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계속 많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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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16: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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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상 (112.XXX.XXX.244)
혹시 목포의료원 최 박사님 맞나요?
최 박사님께서도 자유칼럼을 애용하신다니 반갑습니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자주 뵙지 못 해 죄송합니다~~함 찾아뵙겠으니 고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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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13: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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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옥 (118.XXX.XXX.218)
식량문제와 농업을 경시하는 나라는 미래를 생각하지않는 나라이고 사상루각의 위험한
나라입니다. 제발 멀리 바라보고 튼튼한 기반을 구축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같이 머리맞대고 깊이생각하여 기본구축에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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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08: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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