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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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는 동물들

박시룡

2009년 12월 21일 (월) 01:22:45

동물도 사람처럼 술에 취합니다. 자연에 있는 열매의 당분이 발효되면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로 변합니다. 곤충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연구가 진행 중인 대부분의 동물들은 알코올을 섭취하면 흥분하고 조정능력을 상실하며 심하면 혼수상태에도 빠집니다.

광대파리, 땅벌, 말벌, 호박벌, 진드기 등은 발효된 수액이나 열매를 먹고 평형감각 기능을 잃어 순간적으로 땅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수액을 먹고 사는 딱따구리의 한 종은 발효된 수액을 먹고 비틀거립니다. 인도에서는 나무늘보가 발효된 꽃을 먹고 술에 취해 행복해하는 듯한 모습이 그 나무늘보를 오랫동안 관찰한 과학자에 의해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조류 연구가들도 겨울에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이 발효된 딸기를 먹고 술에 취해 날다가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전합니다.

미국에서는 술 취한 새들이 자주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개똥지빠귀와 여새는 북미 조류들 중에서도 술에 취하는 일이 많은 상습 술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술에 취한 채 창문이나 전선으로 뛰어들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일도 잦습니다. 유럽에 사는 황여새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종종 땅바닥에 떨어져 죽은 사체로 발견되곤 했는데, 외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흔적은 없었습니다. 사체를 부검한 결과 죽을 당시 심하게 술에 취해 있었고, 그 때문에 급성 간질환을 얻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곤충이나 새가 술에 취하는 것은 사실 우리 인간에게 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코끼리가 술에 취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술 취한 코끼리 때문에 인간이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1985년 인도 서부 벵골지방에서는 150마리의 코끼리가 밀주 제조 공장을 습격해 다량의 밀주를 마신 일이 있습니다. 술에 취한 코끼리들이 마을을 습격하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주민 5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코끼리들은 콘크리트 건물 7채를 파괴하고 20여 채의 오두막을 짓밟기도 했습니다.

야생 상태의 코끼리는 술을 잘 먹는 동물로 악명이 자자합니다. 코끼리 음주사고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작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태국에서 술 취한 코끼리들이 운전 중인 차를 세워 먹을 것을 빼앗고, 차를 부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환경보호자들은 자기 영역을 빼앗긴 코끼리들이 인간에게 항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바나원숭이들도 만만찮은 술꾼입니다. 주민들은 사바나원숭이를 사냥할 때 술을 미끼로 씁니다. 사바나원숭이들 가운데 일부는 가끔 알코올을 섭취하지만 일부는 상습적으로 술을 마십니다. 그러나 전체 원숭이 가운데 15%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최근 연구결과 유전적 요인이 이런 차이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간의 알코올 중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알코올을 좋아하는 유전적 성향에 아주 큰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음주 성향에는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인도 크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알코올을 더 좋아합니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어릴 때의 환경이 자라서 알코올을 좋아하게 되는 정도를 결정짓습니다. 즉 어린 시절에 스트레스를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성장했을 때 알코올을 더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코끼리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즐겨 마신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코끼리들을 약 0.5ha의 면적에 1개월간 가두어 길렀더니 넓은 지역에 사는 코끼리에 비해 알코올을 3배 정도 더 찾았습니다. 술 취한 코끼리들은 사회성이 극히 낮아 자기 시간의 40%만 동료와 함께 지낸 반면 술 취하지 않은 코끼리들은 거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자기 무리와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술 취한 코끼리들은 대개가 공격적이었습니다.

또 알코올 농도가 각각 다른 여러 가지 술을 주어본 결과 코끼리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알코올 농도 7%인 술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열매가 발효됐을 때의 알코올 농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실제로 동물행동학자들은 최근 코끼리들의 서식지가 없어지면서 먹이가 줄어드는 바람에 알코올을 더 많이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자 R. 더들리는 동물이 취하려고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알코올은 칼로리가 탄수화물의 두 배나 되는 식품입니다. 익은 열매는 에탄올 분자를 공기 중에 퍼뜨려 동물을 유혹합니다. 에탄올 분자가 공기 중에 퍼지면 에탄올을 감지하도록 진화한 동물들이 그 열매를 먹으려고 몰려듭니다. 에탄올은 식욕을 증진시켜 열매를 먹는 동물들이 더 많은 과일을 먹게 하고 결과적으로 식물의 씨를 더 많이 퍼뜨리도록 합니다.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에너지원으로 알코올을 선호하도록 진화돼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알코올 냄새는 에너지가 풍부한 먹이를 의미합니다. 코끼리들이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이 경쟁이 치열해지자 모자라는 칼로리를 채우려고 술을 더 많이 마셨을 수도 있습니다. 동물들이 알코올을 섭취하고 술에 취하는 현상은 칼로리를 보충하면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음주를 하는 사람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보다 심장병 발병률과 사망률이 낮다는 의학적 보고가 있습니다. 하루 한두 잔 마시는 술은 관상동맥 심장질환의 발병을 예방하고 간 기능을 향상시킨다고 합니다. 약간의 알코올은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자극하여 간 조직 재생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알코올은 에너지원이 될 뿐만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효능이 있어 진화 과정에서 알코올을 적당히 즐기는 개체가 생존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동물들은 술이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마시지만 인간은 알면서도 퍼마셔대니 알코올의 유혹은 정말 무섭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들의 음주행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창 술을 마시는 연말, 적당한 양의 술은 오히려 약이 된다니 인간이라면 동물과 달리 자기통제를 하면서 알코올을 즐기도록 하십시오.

utopco (123.XXX.XXX.6)

박사님과 이야기 속의 동물은 항상 같은 생명체 같습니다.
생명의 경외감이랄까......
결국 한생명이겠지요.

그러다 보면 다른 동물들은 이미 알고 지내는 것을
우리 인간은 이제야 깨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금년 1년 섬세한 표현으로 많은 신비함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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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5 12: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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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 (211.XXX.XXX.129)

동물도 술을 먹는군요. 잘 몰랐던 새로운 사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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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1 16: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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