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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박수갈채를
임철순 2009년 12월 28일 (월) 08:13:52
며칠 전 성남아트센터에서 <호두까기인형>(차이코프스키)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러시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노보시비르스크 국립오페라발레극장의 작품은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무대, 우아한 춤과 흥겨운 음악은 왜 이 작품이 연말이면 늘 무대에 오르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는지 잘 알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박수는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인색하다기보다 아주 형식적이고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웠습니다. 나라도 체면 불고하고 “브라보” 소리를 질러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민망한 풍경이었습니다. 대사나 특별한 해설이 없는 몸의 예술 발레는 사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 모릅니다. 음악회에서도 교향곡의 악장 중간에 눈치 보듯 조심스럽게 누군가 박수를 치면 이어 덩달아 과감하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언제나 보게 됩니다.

10여년 전 독일 테너 페터 슈라이어의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나그네>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그는 노래 중간에 박수를 치지 말아 달라고 미리 주문을 했습니다. 관객들을 위한 배려라기보다 자기 공연을 방해 받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였지만, 동기야 무엇이든 관객들은 ‘박수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 편했습니다.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연주 중의 박수 실수를 만회하려는 것처럼, 우리의 음악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공연이 끝난 뒤 맹렬한 과잉 부름갈채(커튼 콜)가 이어지는 게 보통입니다.

그 날도 조심스럽고 열기가 전혀 없는 박수에 가담하면서 한국사람들은 박수 예법에도 어둡지만, 근본적으로 나에게든 남에게든 박수를 치는 데 익숙하지 않거나 인색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박수갈채라고 말하는데, 일상생활에서 문자 그대로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러 환호하고 환영하고 찬성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칭찬과 찬양, 감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수는 원래 상대방을 포옹하는 동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상대를 포옹하려는 동작과 크게 치는 박수의 동작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한꺼번에 포옹할 수 없기 때문에 포옹하는 동작의 대신으로 박수가 만들어졌고, 빠르게 포옹하는 동작을 하다 보면 저절로 손뼉이 마주치게 돼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경우, 남이든 자신이든 칭찬할 일이 별로 없고 감동이 우러나고 신명나는 일도 없으니 박수갈채가 나올 리 없는 거지요. 문화심리학자인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책에서 한국인들이 감탄을 할 줄 모르며 wonderful(영어), wunderbar(독일어)와 같은 감탄사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잘 쓰이던“지화자” “니나노” “얼쑤”와 같은 말들은 사라지고, “얼~씨구”처럼 비꼬는 욕으로 바뀐 경우까지 있다는 거지요. “죽인다”라는 감탄사를 쓰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것은 정말 이상한 말이라는 겁니다.

얼마 전 한식집에서 밥을 먹을 때 주인 아주머니가 죽을 내왔습니다. 맛이 어떠냐는 물음에 일행 중 한 명이 “죽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맛이 아주 좋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아주머니는 기분 좋은 표정이었지만 그녀가 방에서 나가자 그는 “나는 그냥 이게 죽이라고 말한 건데…”라고 해서 사람들이 와 웃었습니다. 일종의 말장난이었지만, 죽인다는 말이 점잖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여자들은 감탄을 잘 하고 다른 사람 칭찬도 잘 합니다. 이와 달리, 남자들은 그런 말을 하면 체질적으로 닭살이 돋게 돼 있나 봅니다. 남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기회란 술집에서 씩씩하고 화창하게 폭탄주를 마실 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또 한 해가 가는 세밑에, 1년을 돌아보면서 내가 박수갈채를 받을 일이 뭔가 한 가지라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래 뒤져 보지 않아도 그런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든 남겨서 다른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것이 명예로운 삶이겠지만 그런 일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하고 그 해에 이루어야 할 것들을 기록하곤 합니다. 그 계획과 소망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새해로 과제를 이월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한 해의 고비에 서서 무엇인가 억지로 찾아서라도 스스로 칭찬하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여성 문화인은 사회활동에서 은퇴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ΟΟ아, 그 동안 너 참 수고 많았어. 잘해 주어서 고마워.”그리고 자신에게 주는 감사의 선물로 승용차 한 대를 샀다고 합니다. 어렵게 자란 그녀의 어린 시절과, 장성한 뒤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자기 칭찬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렇게라도 자신을 칭찬하고 부추기면서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마음과 힘에 기대어 새해를 맞고 싶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9년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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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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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118.XXX.XXX.158)
지난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 해를 맞겠습니다.
자유칼럼의 발전을 기원드리며 건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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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16: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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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220.XXX.XXX.63)
타인을 향한 박수,타인을 향한 비판엔 날을 세우면서도
정작 자신을 향한 박수와 비판엔 관대(?)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새해엔
자신을 향해 박수도 뜨겁게 치고 비판도 뜨겁게 하겠습니다!
임 주필님의 건필을 기대합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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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07: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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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길 (121.XXX.XXX.16)
임철순 주필님의 탁월한 필력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짝! 짝!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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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23: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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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대 (211.XXX.XXX.129)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자기 자신에게 박수를 친다는 것이 아주 신선하게 닥아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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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6: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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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jk (121.XXX.XXX.250)
좋은 지적입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되는 두가지 조건중의 하나가 박수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은 그래도 나은 편이죠. 주인공이 나올때까지 계속 박수를 치는 커튼콜도 있고 앵콜 박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공연을 마치고 인사할때 잠깐 박수를 치고나서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박수가 끊기는 예가 더 많지요.
무슨무슨 시상식때 보면 수상자를 소개하면 잠시 박수가 나오지요. 그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박수가 끊어지고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거나, 상을 받고 인사를 할 때 잠시 박수가 나오지요. 그 박수가 수상자가 상을 들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을 때까지 이어지는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요. 불과 몇초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에 박수는 이어지지 못하고 단속적으로 쳐주는게 우리네 박수인심이 아닐까 합니다. 상이 하도 흔해서 그렇다면 할말도 없습니다만.
다른 하나의 조건은 파티장에서 연설할 때 경청해주는 매너입니다. 스탠딩 파티라도 가보면 객석의 소음으로 연사의 연설이 묻혀버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지요. 파티가 너무 흔해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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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5: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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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호 (211.XXX.XXX.129)
올 한해도 주필님께서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나에게 박수갈채를'은 나를 긍정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임주필님 새해에도 멋진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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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0: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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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打 (121.XXX.XXX.193)
즐겁게 글을 쓰고 치열하게 술을 마시며 사시는 임주필님에게 박수갈채를....
이제 글은 끊고 치열하게 술만 마시며 사는 저에게도 스스로 박수를....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유.
그리고 새해엔 저녁시간에 가끔 뵈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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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09: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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