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첫 10년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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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첫 10년이 남긴 것

황경춘

2009년 12월 31일 (목) 01:47:53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20세기를 뒤로하고 희망의 새천년을 맞이한다고 온 세상 언론매체가 광란에 가까운 법석을 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생활은 그만두었지만 정기적으로 글을 써 보내는 곳이 아직도 두세 군데 있었고 건강에도 별 문제가 없어서 새천년의 도래보다 개인적으로 몇 년 후에 맞이할 8순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한 고비에 더욱 마음이 쏠리는 나날이었습니다.

아내의 대수술 후의 회복기와 맞물렸던 때라, 자기 자신의 건강과 인간의 수명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젊었을 때의 건강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별 불편이 없었던 당시의 몸 상태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덤덤하게 맞이한 21세기에 들어서자 미국에선 전대미문의 ‘9ㆍ11테러사건’으로 5천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생기고 이라크에선 전쟁이 확대되고, 한편 국내에서는 정권이 두 번 바뀌었지만 정치는 제자리걸음으로 국민을 실망시켜 왔습니다.

그런 뜻에서, 지난 10년도 80여 년의 제 인생에 있어 그저 그런 평범한 역사의 일부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직접 체험한 일제(日帝)의 학정(虐政), 조국의 광복, 한국동란, 4ㆍ19혁명, 군부독재에 항거한 민주화운동 등 국내의 여러 역사적 사건이 점철(點綴)된 10년 단위의 시대와 잠재적으로 비교하여 그러한 즉흥적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기축(己丑)년 세밑은 예년보다 더욱 바빴습니다. 극히 제한된 사회활동만 하는 노인이지만 이번 연말따라 모임이 많았습니다. 11월 하순부터 시작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년에는 11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해외 친지에 보내는 연말연시 카드의 발송준비 작업을 일본 여행 때문에 12월 들어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하순에 있었던 금년 마지막 송년 모임이 끝나고 성탄절의 조촐한 가족 모임을 마친 주말에 저는 아내가 외출한 사이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보고, 미루어두었던 신문과 잡지의 관심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그때 비로소 올해를 포함한 21세기의 첫 10년의 역사흐름이 범상(凡常)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한때 가졌던 피상적(皮相的) 관찰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습니다. 평소에 글 제목만 보고 내용을 깊이 살피지 않는 얄팍한 독서태도와 웬만한 큰 사건에도 거의 만성이 되다시피 한 둔화(鈍化)된 감성, 거기에 설상가상(雪上加霜)격인 노인성 순발력 퇴화,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자신의 단견(短見)을 나무랐습니다.

20세기의 역사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서방(西方) 중심의 작품이었다면, 새천년의 세계 축(軸)은 서서히 아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21세기 첫 십년간의 세계 동향으로 증명되었다고 논하는 석학(碩學)들의 글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과 유럽이 아직도 경제적으로 허덕이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몇 나라는 성장을 계속함으로써 금세기가 ‘아시아의 세기’(Asian Century), 아니 더 나아가 ‘중국의 세기’(Chinese Century)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시아,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과 인도, 이 두 나라를 도외시하고는 어떤 전 세계적 협정도 일구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냉혹한 사실이 지난 번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기후회의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경제력을 동반하지 않는 정치권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근대 국제사회의 권력구도임에 비추어, 중국은 이미 미국의 최대 채권국가로 군림하고 있으며, 중국 수출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미국사회의 경제적 취약성은 현재의 ‘미ㆍ중 양극체제 가 불원간 ‘중국 단일체제’로 바뀌는 도화선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된 바락 오바마와 일본 헌정(憲政)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루고 아시아 공동체를 주창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총리의 출현도 주목해야 한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한편 지난 10년 동안에 국제세력구도에 이러한 변화가 있었던 반면, 개인의 생활과 사회활동에도 혁명적 변화가 있었다고 AP통신이 보도했습니다. AP가 보도한 쉰(50) 가지의 변혁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 비행기 탑승에 음료수 병 반입이 금지되고, 신발을 벗고 위험물 탐지검사를 받는 일.
- 특히 여성 사이에 유행하는 연령을 도외시한 복장과 스타일.
- 순식간에 사이버 세계를 점령한 개인 블로그 수는 자그마치 1억 개가 존재함.
- 디지털 카메라의 발달로 할머니가 손자에게 사진을 전송하는 세계로 진화.
- 미국인구의 85%가 휴대전화 소유, 타이거 우즈 사건에서 보듯 남편의 외도 어렵게 됨.
- 남극에 가 있지 않는 한 상사의 수시 호출을 피할 길 없는 연락망.
- GPS의 발달. 그러나 입력을 정확히 해야지, 한 부부는 Capri를 Carpi라 입력해 640km를 헛수고 했다고.
- 초등학교 아이들까지도 문자메시지에 매달리는 세상.
- Wikipedia: 정확성은 둘째 치고, 인터넷에 백과사전 선풍을 일으키다.
- 요가: 마돈나 등 명사를 통해 대유행, 지금은 동네 할머니까지도.
- YouTube: 2005년에 도입된 비디오 공유 채널. 미국 선거전에서 대 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