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계영배(戒盈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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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계영배(戒盈杯)

방석순

2010년 01월 06일 (수) 00:59:37

새해 들어 엿새째 아침입니다. 아무리 작심삼일이라 하지만 아직은 새해 첫날의 다짐이 언행을 제어하기에 확실한 유효기간입니다.

올해엔 마음에 또 어떤 다짐들을 두었을까요. 죽기 살기로 돈을 벌자. 돈보다는 역시 건강이다. 세상에 태어나 이름 하나는 남겨야지, 욕을 먹더라도 한 자리 차지해야 위너가 되는 거야. 이름은 잊혀도 좋지만 아름다운 일 하나쯤은 남기고 가야지. 이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어도 머리가 산란할 만큼 갖가지 다짐들이 마음 밭을 들쑤시고 다녔겠지요.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이런저런 욕심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특히 남자들에겐 물욕, 성욕, 권세욕, 명예욕 따위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통제 안 되는 게 명예욕이라던가요. 이런 욕심들은 사람의 성장 발전에 큰 자극제가 되거나 추진력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파멸로 이끄는 도화선이 되기도 합니다.

천하의 도덕군자 공자(孔子)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던 제(齊)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아갔을 때 일입니다. 환공은 춘추시대 포숙아(鮑叔牙)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고, 한때 이복형의 편을 들어 자신을 죽이려던 관중(管仲)을 중용해서 천하의 패자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공자는 그 사당에서 의식 때 쓰이는 그릇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그릇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사당지기에게 물으니 “항상 곁에 두고 보는 그릇[宥坐之器]"이라고 답했습니다.

‘가득 채우려들면 기울어 넘쳐흐르지만 적당한 양을 채우면 반듯이 서는 그릇.’ 공자도 이미 환공의 이 비기(秘器)에 대해 듣고 있던 터였습니다. 공자가 나기 거의 한 세기 전에 먼저 세상을 뜬 환공은 천하를 제패하고도 물이 절대로 넘치지 않는 그릇을 곁에 두고 늘 자신의 과욕을 경계했다는 겁니다. 공자도 이후 더욱 평상심을 지키며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도록 자신을 삼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비슷한 비기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조에서 헌종 때까지 살았던 화순의 실학자 하백원(河百源)과 생몰연대가 확실치 않은 통천(?) 출신의 도공 우명옥(禹明玉)이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잔.’ 오히려 출생과 행적이 불분명한 우명옥 쪽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합니다.

시골 벽지서 도기를 굽던 선머슴 우삼돌이 큰 꿈을 안고 왕실의 진상품을 만드는 경기도 광주분원(廣州分院)을 찾았습니다. 그는 스승에게서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동안 우명옥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마침내 스승도 이르지 못하던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왕실로부터 큰 상을 받으며 이름을 드날리게 된 그는 이후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 끝에 가진 재물을 탕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온 우명옥이 정진 끝에 계영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계영배는 그 후 정조․순조대의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의 수중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는 뛰어난 장사 수완으로 중국을 넘나들며 인삼 무역을 벌여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계영배로 자신의 지나친 욕심을 단속하면서 주변의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해 나라에서 군수자리를 제수 받는 영예까지 누렸습니다. ‘조선의 거상’이라는 임상옥에 대한 호칭이 다만 그가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임상옥의 계영배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 최인호의 『상도』를 통해 더욱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거상 임상옥을 남몰래 사숙하던 작중 인물 김기섭이 북한을 드나들다 의주 임상옥의 후손들에 의해 전해지던 비기 계영배를 손에 넣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최고 재벌 총수인 그 역시 죽을 때까지 계영배를 침실 책상머리에 얹어두고 자신의 과욕을 경계합니다.

문제의 계영배 안쪽에는 ‘계영기원여이동사(戒盈祈願與爾同死: 가득차는 것을 경계하며 너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라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합니다. 잔에 적절한 양의 술을 부으면 글씨가 확대되며 비로소 확연히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최인호는 임상옥의 저서 『가포집(稼圃集)』에 씌었다는 문구를 인용해 계영배의 진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아자 부모 성아자 일배(生我者父母成我者一杯: 나를 낳은 건 부모이나 나를 이루게 한 건 하나의 잔이다).’ 작가 최인호의 허구(虛構)가 아니라면 계영배는 분명 ‘거상 임상옥’의 인물을 만들어낸 기물(奇物)로 실재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임상옥이 미처 계영배의 진실을 몰라 잔의 한쪽 모서리를 깨뜨리던 바로 그날 계영배를 만든 우명옥이 세상을 떠났다는 설도 돌아다닙니다.

더욱 재미난 것은 임상옥이 『가포집』에 남겼다는 문구가 바로 ‘유좌지기(宥坐之器)’라는 비기(秘器)로 평생 욕심을 경계했던 제 환공을 춘추오패로 우뚝 세운 재상 관중의 말에서 따왔다는 점입니다. 관중은 자신을 환공에게 천거해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치게 해준 벗 포숙아에 대해 ‘생아자 부모 지아자 포숙아(生我者父母知我者鮑叔牙: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 라며 고마워했습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상징처럼 잘 알려진 문구입니다.

이 역시 최인호의 픽션이 만든 기연(奇緣)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나친 욕심은 필경 화(禍)를 부른다는 계영배의 교훈만은 언제 어디에서도 두루 통하는 진리라 하겠습니다.

지난해 힘들었던 만큼 올 한 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던 일을 이루고 잘 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마음속에 나름대로의 계영배 하나쯤 챙겨두고 이웃과 더불어 잘 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홍렬 (121.XXX.XXX.244)

새해 벽두에 좋으신 자경의 마음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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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10: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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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244)

그러고 보니 흘러넘쳐서 좋은 것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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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7 19: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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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72)

마음을 비우라는 소리를 들으면 허전해서 어떻게 살게요하고 되묻습니다.비우는것보다 채우는것이 제 본성에 맞아서요.물질은 덜어내기가 가능하지만 마음은 자연스럽게 흘러넘처야 충만감이 느껴지지요.무르익은 과일은 저절로 떨어지지요.사랑과 측은지심으로 나를 채우는한해가 되기를 기원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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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7 15: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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