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나도 역이민이나 할까?
신아연 2010년 01월 18일 (월) 07:45:27
외국을 여행하면서 이민 사회를 경험한 한 작가가 자기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탓에 내용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만나 본 교포들마다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족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나서 그렇지 외국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 라는 말을 하더라는 요지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사람이 한 세상 사는데 물질적으로 빠듯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환경보다 더 안 좋은 곳이 있을까." 하고 의아했다고 합니다.

해외생활이란 게 너나없이 더부살이하는 형상이라 먹어도 배가 고픈 심리적 허기와 물질의 실질 결핍 인식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삶의 조건 탓에 저한테 물었더라도 두루뭉술 그렇게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예상 밖의 반응은 나도 인식하고 있는 나의 약점을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처럼 당황되고 무안하며 한편 야속도 하고 약도 좀 오르는 것 같다가 곰곰 더 생각하니 자괴감을 비롯한 뜻 모를 수치심까지 불러오면서 갑자기 살 맛을 잃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이 "벌거벗었네!" 라는 천진한 아이의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진 것처럼 그 사람의 그 말이 어제까지 멀쩡하던 이민 생활을 한순간에 누차하고 남루하게 전락시킨 듯 황폐한 마음을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호주에 사는 경우만 두고 말한다면 천혜의 자연경관과 깨끗한 공기 같은 무상으로 주어진 것 외에도 사람에 치여 부대끼지 않는 일상의 공간 등, 비록 내가 일군 것은 아니지만 돈 없고 가족 없어도 그런대로 살 만하다 할 조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하여 살아본 적 없이 그저 다녀가는 이의 무심한 언급에 그렇게까지 기죽을 것 없다고 우리끼리 다독이면 그만입니다.

더 깊숙이는 이 나라에 살아보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 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가다 길을 물었을 때 이렇게 저렇게 가면 된다는 설명으로도 맘이 안 놓여 목적지 가까운 곳까지 기어이 동행해 주는 부담스럽기까지 한 친절, 갓길 주차장 옆에서 도로 공사를 하던 인부가 옆에 세워진 자동차의 주차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것을 보고 자기 주머니를 뒤져 동전 몇 닢을 더 넣어주고는 혼자 씩 웃는 장난기 어린 배려, 극장에서 학생이라고 말만 했는데 신분증 보자는 소리도 없이 그냥 할인표를 내주는 서로 믿는 사회 분위기, 유원지에서 사고가 났을 때 구급차를 불러주고 병원 응급실까지 따라가 보호자가 올 때까지 함께 있어주는 선한 사마리아인과의 일상적 만남 등이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가족들이 그리우면서도 이방의 삶을 살 만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왠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먹구름 낀 이민 생활을 예견하는 듯 그 작가의 말이 요요하게 떠오르고 자꾸만 기운이 빠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서 사는 게 점점 팍팍해지는 것이 물질적으로 만날 그 타령인 데다 나이 들수록 한국의 가족들이 더 생각나기 때문만은 분명 아닐 텐데 왜 이리 점점 더 황량한지 모르겠습니다.

호주는 최근 저소득층과 빈곤 가정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세계에서 가장 잘 구축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찌 가난 구제뿐이겠습니까. 완벽에 가까운 장애인 복지를 비롯하여 사회 곳곳을 살뜰히 보살피는 선진 사회제도는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시스템과는 반비례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점점 온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을, 살면서 자주 체험합니다. 좀 전에 열거한 호주의 '사람 냄새'는 사실 옛 시절의 추억이 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실은 그런 인정과 친절을 언제 대면해 보았는지 아득합니다.

요즘은 그저 세상의 온갖 나라 사람들이 땅덩이 큰 호주에서 제각기 자기네 나라에서 살던 방식대로 자기들끼리 딴 나라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체면과 눈치, 경쟁과 비교의식이 일상화된 한인 사회에 치이고 지칠 때 그래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넉넉하고 소박한 인심을 만날 수 있어 호주에서 살맛이 났건만...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해외 교포사회에도 돈많은 사람이 부쩍 늘었고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작가의 말에 비춘다면 모두들 행복하다 해야 할지. 하지만 결국 그게 행복의 조건이었다면 애초 이민 올 필요도 없었 을테니 살아갈수록 손해 봤다는 생각, 낭패감만 커지니 황당한 일입니다. 어쩌면 요즘 역이민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알맹이 빠진 해외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9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서 소영 (121.XXX.XXX.26)
안녕하세요? 바쁘시지만 건강히 잘 지내시라 믿습니다. 전 아직은 역이민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호주에서의 생활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니 만약 내가 아직도 서울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지금같이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성취하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상상해보면 솔직히 자신도 없으며 부정적인 생각만이 들 뿐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내가 나이가 들어 나의 생을 마감해야 될 때가 되면..그때 저 역시 회귀본능때문에 한국으로 가려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말해야만 되는 이나라에서도 결국 인간은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지구는 너무 좁나봐요~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답변달기
2010-01-27 20:20:41
0 1
서 소영 (121.XXX.XXX.26)
안녕하세요? 바쁘시지만 건강히 잘 지내시라 믿습니다. 전 아직은 역이민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호주에서의 생활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니 만약 내가 아직도 서울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지금같이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성취하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상상해보면 솔직히 자신도 없으며 부정적인 생각만이 들 뿐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내가 나이가 들어 나의 생을 마감해야 될 때가 되면..그때 저 역시 회귀본능때문에 한국으로 가려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말해야만 되는 이나라에서도 결국 인간은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지구는 너무 좁나봐요~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답변달기
2010-01-27 20:20:39
0 1
차덕희 (121.XXX.XXX.207)
이십세기 초반부터 흩어진 세계 각국에 있는 교포 이,삼세들에 역이민의 문을 좀 더 열면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흔히 말하는 세계화의 방법으로 상호교류로가 많이 있으면 한반도의 위치상 플러스 요인이 더 될듯 함니다.연어처럼 회귀본능을 인정해야 한다고 봄니다.
답변달기
2010-01-20 15:46:15
1 0
김명임 (115.XXX.XXX.84)
아연님!!! 새해 첫인사네요.
잘 지내시죠?
세계 어느곳에 살던지 사람사는 곳은 다 살만할것이라 생각이 되긴 하지만
나는 웬지 잠깐 살다 돌아오는 건 몰라도 이민생활은 못할거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고국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에 그런건 아니지만
힘들때 외로움을 견뎌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디에 있든 근본적인 외로움이야 자신이 지고가야 할 몫이지만
실향민의 그리움처럼 가슴 한켠에 채우고싶은 뭔가를 항상 갖고 산다는게
에너지를 더 써야하는 일같아요.
나이드신 분들의 역이민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으면서 나이들면 그런 생각이
더 드는가보구나 짐작할 따름입니다.그러나 고국에서의 삶도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냄새는 점점 없어지고 있으니 황량함은 이곳도 마찬가지지요.
오늘도 <매일매일이 똑같은 날의 반복이 되지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로
시작했지만 매일 아침마다 가슴 설레고 기대되는 새날이었음 좋겠습니다.
자꾸 현실에 안주해버리려고 하는 나 자신을 채찍질해보지만 나이들어감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ㅎ
아연님!! 새해엔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냄새를 듬뿍 맡을 수있기를 기원합니다
힘내시고 행복하소서. 호주하면 아연님이 계시다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답변달기
2010-01-20 11:08:25
1 0
인내천 (220.XXX.XXX.117)
더 큰 야망을 위해서든, 조국이 싫어서든, 타국의 강점에 의해서든 조국을 떠나는게 이민일진대 동기야 어떻든 모든 이민은 역이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력으로,실패한 사람은 정부가 역이민을 주선해야할 것입니다~~

울 나라는 일제의 강점으로 타의에 의한 이민 1세대가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여 산전수전 격었지만 지금에 와선 조국의 영역을 확장하였기에, 그보다도 피해자이기에 우대하고 배려하여 역이민을 주선하는게 국가의 도리일 것입니다!

역이민을 주선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이며 조국의 무능 때문에 강제 이민 당한 그들을 두번 죽이는 것입니다.
훗날, 좋은 조건에서 자발적 이민을 갔더라도 역이민을 위한 것이기에 당연히 돌아와야할 것입니다!
그런 날에는 무궁화, 진달래 손에손에 꺾어들고 뜨겁게 마중나가겠습니다!
경인년에 역이민의 대로가 열리길 기대합니다!!!
답변달기
2010-01-20 00:54:53
2 0
marius (121.XXX.XXX.125)
어느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 중에 ‘집단과 권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집단이 떼거리이겠습니다. 학연 지연 이게 다 떼거리일 것입니다. 참, 종교도 여기 포함되겠습니다. 떼를 짓는데 는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외로워서 그럴까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민을 가도 떼를 짓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거기 가면 거기식대로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거기 가도 여기와도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것이 다 우리 팔자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변달기
2010-01-19 17:20:30
0 0
김윤옥 (210.XXX.XXX.149)
끌리는 무엇에 흔들립니다.

쌘프란시스코 트윈픽스 언덕에
처음 왔습니다
마을이 내려다보입니다

엷은 어둠에 잠긴 수많은 집들

방금 어느 집 현관 앞에
장난감 같은 차 한 대가 멈춰섭니다.

하루 일을 마친 집 주인이
돌아온 모양입니다.
이제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겠지요.

모든게
내가 사는 서울을 닮았습니다
이런 저녁 어스름 속에선
누구나 당신이 되는 걸까
거기, 당신이 사는 집이 보일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당신이
두고 온 피붙이처럼
자꾸만 그리워집니다

처음부터 내 안에 당신이,
아니 당신 안에 내가있어
끌리는 무엇이 되어
我, 他를 가리는 일이 어려운 것처럼

낯 선 곳에서 맞닥뜨리는
이렇게 못 견디게 안타까운 마음이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아프리카 오지의 헐벗은 땅에도
당신은 계시겠기에
어디서나 끌리는 무엇에 흔들립니다

굶주린 커다란 검은 눈망울의 어린 것
내게 눈맞추면
기꺼이 내 두레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려야하는 줄
이제 깨닫습니다

여행길에서 낯선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익숙한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답변달기
2010-01-19 12:17:31
1 1
이무석 (203.XXX.XXX.182)
거리 인부와 동전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의사 생활하는 친구들 생각도 났습니다.
답변달기
2010-01-19 11:05:28
0 0
이기태 (203.XXX.XXX.182)
저는 20년전 어머니 때문에 일시(?) 역이민 왔다가 그후에는 아버지 때문에 눌러앉아 있기 20년! 나이먹으니 이제 여기가 더 좋네요. 집근처에 모든것 다 있고 사람들과 부닦이며 경계심 덜 갖고 살며 친구들 잘 만나고... 불편한 것 보기싫은 것 잘 피하면 되고요. 길어지니 이만. 승리하세요.
답변달기
2010-01-19 07:47:39
1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