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정월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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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정월 아침에

방석순

2010년 01월 26일 (화) 00:23:22

아직 정월입니다. 새해엔 희망차게 보람 있게 잘 살자, 덕담 나눈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선 너무 춥습니다. 새해 들어 철원은 영하 26.8도, 서울은 영하 15.3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지난해 장기 기상예보를 들은 기억으론 별다른 추위가 없을 것 같았는데, 방심의 허를 찔린 탓일까요?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추위는 기상청 발표 수치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서울이 영하 15도가 되리라던 날 아침이었습니다. “도대체 오늘은 몇 도래?” 아침 밥상을 받으며 TV를 켜 보았습니다. 마침 ‘인간극장’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병마에 잃은 ‘두 자매’ 이야기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언니 현이는 3년 내내 장학생이었다고 합니다. 한창 대학생활의 꿈에 부풀 나이건만 엄마 떠난 후의 뒷수습에 동생 뒷바라지에 생계 걱정에 몸도 마음도 편한 날이 없습니다. 아직 철이 덜 든 동생 슬기는 그 추운 날 모양내느라 교복만 달랑 입고 문을 나서 언니의 걱정을 더합니다. 그래도 엄마처럼 보살펴주는 언니를 위해 제 손으로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착한 동생이기도 합니다.

밝은 성격 덕분에 자매는 아주 외롭진 않습니다. “슬기 아침은 먹였어?” 하고 동생까지 염려해 주는 담임선생님, 엄마 병간호로 집을 비운 사이 방 청소까지 해주던 친구들, 자매를 남기고 기어이 엄마가 저 세상으로 떠나던 날 슬기보다 더 슬피 울어주던 슬기 친구…

음식점에서 일자리를 구한 현이는 어렵긴 해도 지금처럼 동생과 함께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슬기는 5년 전 엄마와 헤어진 후 처음으로 연락이 닿은 아빠와 살고 싶어 합니다. 다 늦게 아빠와 화해하고 싶지 않은 현이, 그러나 슬기에게 더 잘해 줄 자신이 없으니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서 아빠에게 잘해 드려.” 그러면서 현이는 슬기와의 아쉬운 이별을 준비합니다. 현이의 친구들이 현이 곁을 떠나는 슬기를 위해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선물을 전해 줍니다.

TV 안에선 모두들 웃고 떠드는데 오히려 TV 밖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천길 벼랑으로 몰리는 듯합니다. 날씨를 알아보려다 마주친 두 자매 이야기에 대책 없이 코끝이 찡해져서 잠시 밥숟갈이 제멋대로 놉니다. TV 속 ‘두 자매’의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 두 자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겠지요. 그들에겐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지난해 연봉 1억 원 이상의 봉급쟁이가 1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연간 수천억 원의 수익을 내는 기업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추위에 떨며 삽니다. 부의 세습뿐만 아니라 산업구조의 개편, 시장의 확대, 고용형태의 변화로 빈부격차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IT니 바이오니 이름조차 생소했던 새 산업들이 어느덧 세계경제를 휘젓습니다. 대형마트들은 구멍가게를 몰아내고 대형서점은 골목 책방을 쓸어냅니다.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접수해 갑니다. 돈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최고의 가치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젊은이들이 돈놀이 기업으로 몰려가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공평하지는 못해도 아름다운 것이다.” “인생은 멋진 것, 살아볼 만한 것이다.” 미사여구도 많지만 세상살이는 갈수록 쉽지 않아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행복이 많아질수록 몸으로 누리고 마음으로 느끼는 행복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매 이야기를 보다가 지구촌 인생극장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일들이 덩달아 떠올라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TV 화면 아래쪽으론 ‘아이티에 7.0도의 강진, 사망자 10만 명 넘을 듯’ 이라는 자막이 흐릅니다. 카리브해의 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후 프랑수아 뒤발리에 가의 30년 독재로, 또 먹을 게 없는 빈민들이 빚어낸 ‘진흙쿠키’로 유명해진 나라입니다.

아이티의 지진뿐이 아닙니다. 남미에서는 폭우가 쏟아져 도로가 운하가 되고, 유럽에서는 폭설이 뒤덮여 도시가 고도가 되는 등 지구촌은 올 들어서도 거세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로만 친다면 천혜를 누리고 사는 셈인 우리나라에서는 ‘세종시 안’을 수정하니 마니, ‘4대강’을 살리니 죽이니 해서 아우성입니다. 지지세력은 파란 현수막을 흔들며 시위하고 반대세력은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머리를 깎고 시위합니다. 그들 가운데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나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난리로 국민들의 마음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론 보도는 유엔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재앙을 맞은 아이티에 구호의 손길과 물품을 보내고 있다고 전합니다. 국가나 단체뿐만이 아닙니다. 올림픽 준비에 눈 돌릴 틈이 없을 피겨 스타 김연아, 연예인 차인표 신애라 부부, 골프 스타 최경주도 다투어 성금을 내놓았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아이티를 위한 자선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이티 어린이의 새까만 볼을 마주 비비며 새 자식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하얀 피부의 양부모들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져 가는 지구촌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도 오직 나눔과 베품의 정신만이 희망입니다. 돈이 아니라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지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재난을 통해서 비로소 진리를 깨우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인수 (121.XXX.XXX.244)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접하고 계시는 방석순님의 프리즘같은 글은 항상 공감을 줍니다. 감성보다 경제적 관심만이 최고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외롭지 않게 해주시는, 그리고 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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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7 13: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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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34)

직장에서 적잖은 봉급을 받는 내 딸아이가 자녀를 강남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는 제 친구의 개인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는 놀랐습니다.
어린이들의 생일잔치, 특별활동 실습 사진등,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입을 다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나도 '중산층' 이거니.... 착각하고 산 날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산층은 아예 없다는 걸 잘 압니다.
이제는 빈곤층과 부유층만이 서로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더불어 살고있습니다.
아이티가 격는 불행, 우리 자신이 느끼는 이 암울함이 다 벗어나야 할 현실인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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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14: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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