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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단상(斷想)
최병상 2010년 02월 09일 (화) 01:02:17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던 1950년대 말 초등학생 시절 제일 싫었던 일 중의 하나는 밤중에 뒷간에 가는 일이었습니다. 소변이야 방안에 들여놓은 요강에 실례하면 되지만 대변은 간단치 않아 원채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채의 뒷간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무서워 참고 참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할 수 없이 호롱불 심지를 키워 유리등에 넣고 뒷간으로 달려갔습니다. 기다란 그림자는 도깨비처럼 무서웠고 금방이라도 꺼질듯 흔들리는 호롱불이 심장을 멎게 했습니다. 공포에 질려 어떻게 일을 봤는지 모르게 후다닥 해치우고 방안에 뛰어 들어온 후에야 심장이 비로소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공포의 밤과 함께 초등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골목마다 세워진 가로등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어 얼마나 신기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하릴없이 골목길을 걸으며 나도 이제 문화인이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했고 시골집에 내려가선 환한 가로등 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가로등은 발전의 상징과 문화의 전령사로 인식되어 시와 노랫말에 심심찮게 오르곤 했습니다. ‘목마와 숙녀’의 멋쟁이 시인 박인환 씨의 ‘세월이 가면’ 이라는 시에도 애절하게 등장합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이 시에 이진섭 씨가 곡을 붙이고 혼성그룹 ‘뚜와에 무와’의 박인희 씨가 다감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애창되고 있습니다.

한참 후에는 애절한 목소리의 김수희 씨가 “가로등도 졸고 있는 비오는 골목길에 두 손을 마주 잡고........." 로 시작되는 ‘못 잊겠어요’를 불러 역시 인기를 모았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갓 씌운 가로등 아래는 사랑을 맺어주기도 하고 헤어지게도 하는 애틋한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노래 속에서 만나는 가로등은 무척 낭만적이고 맛깔스러운데 지금 만나는 맨 몸 가로등은 짜증스럽기만 하니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큰 길에서 150여 미터 떨어진 우리 동네까지는 3개의 가로등이 서 있고 17호가 사는 동네에서는 무려 6개의 가로등이 해질 무렵부터 다음날 동트기 직전까지 어둠을 몰아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어둠을 낮으로 사는 짐승들과 곤충들에겐 금단 지역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고, 겸손히 고개 숙여야 할 벼들은 목에 잔뜩 힘이 들어 있고, 가을의 신사 코스모스는 꽃망울도 터트리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이상한(?) 풍경이 연례행사처럼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구 7만여 명이 살고 있는 우리 무안군에는 도로변 가로등이 3,313개, 378개 마을의 가로등이 5,690개나 되니 전부하면 9,000개가 넘습니다. 도로변 가로등의 밝기는 250와트이고 마을 가로등의 밝기는 150와트랍니다. 도로변 가로등은 계량기가 부착되어 있고, 마을 가로등은 보안등이라는 명목으로 계량기 없이 개당 4,035원 정액제로 되어 있는데, 매월 군청에서 3,900여만 원의 요금을 한전에 지불하고 있습니다. 요금 부담이 없는 탓에 필요 이상으로 세워지고 있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두드러져 안타깝습니다.

성경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빛을 만드셨는데 어둠을 없애버리지 않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 빛을 낮이라 부르고 어둠을 밤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니 밤은 물리치고 밝혀야 할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용인하고 지켜줘야 할 대상이며 낮이 못하는 일을 채워서 온전한 하루를 완성시키는 훌륭한 짝이 아닐까요?

이제, 마구 서 있는 가로등을 솎아내고, 밝기도 낮추고, 맨 몸 가로등에 갓도 씌우고, 자정이 지나면 쉬게 해서 빼앗은 어둠의 영역을 되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벼들은 겸손해지고 코스모스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며 우리의 젊은이들은 귀하게 만나는 가로등 그늘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최 병상씨는 한국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 사무국장과 3대 지방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고향인 전남 무안군 몽탄면 학산리에서 쌀농사를 하며 꿀벌을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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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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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119.XXX.XXX.235)
서울 한강다리마다 경관조명이라는 이름으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조명을 할 수 있겠지만 좀 품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리마다 저럴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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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5 16: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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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상 (112.XXX.XXX.244)
다리마다 다른 색깔에 밝기도 낮춘 듬성듬성 서있는 한강다리의 가로등 운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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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 1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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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3.XXX.XXX.182)
아, 참 아름다운 글입니다. 유년의 풍부한 감성과 예민한 기억력, 그리고 현실 문제의 통찰까지, 한달음에 엮어낸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가로등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제가 사는 호주에는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가로등이 매우 흐리고 귀하답니다... 길이 너무 어두워 사고가 날 지경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아래 연인들은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밤길이 항상 너무 어두워 불편했는데, 밤은 밤이여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스런 일로 여겨지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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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1 15: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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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상 (220.XXX.XXX.40)
적당한 가난,적당한 어둠을 감수하고 가로등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창조주의 섭리를 어기지 않고 위험한 고비용의 원전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는 전력은 북쪽과 나눠서 통일빛으로 활용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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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3 11: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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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18.XXX.XXX.134)
서울에도 무수한 인공 빛으로 천박해진 동네가 많습니다. 오세훈 시장만 그런 걸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무안까지 그렇다니... 참,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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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1 14:09:48
2 0
최병상 (220.XXX.XXX.40)
그러게요~
인근 목포시에서는 유달산 꼭대기까지 가로등도 모자라 써치까지 동원해서 대낮같이 밝히고 있답니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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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3 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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