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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이는 어디에
임철순 2010년 03월 22일 (월) 02:41:17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71년 2월 어느 날 밤, 한 번인지 두 번인지 대문 벨 울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취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이 한밤중에 대체 누구지, 하며 도르래 달린 중문을 옆으로 밀어 열고, 이어 나무대문의 빗장을 벗겼습니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가 장난을 치고 갔나’하고 돌아서려다가 대문간에 놓인 퍼런 보따리를 발견했습니다. 열어 보니 놀랍게도 아기였습니다. ‘음력 정월 20일생’이라고 세로로 씌어 있는 쪽지와 우유병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집은 큰 길에서 5m 정도 들어간 막다른 집입니다. 급히 아기를 들쳐 안고 큰 길로 뛰어나가 사방을 둘러봤지만 사람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통행금지 시간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아기를 안고 들어와 함께 자취하던 고종사촌 형이 깰까 봐 조심조심하며 내 옆에 재웠습니다. 살펴보니 생후 열흘도 안 된 것 같은 아기는 여자애였고, 또릿또릿 눈망울도 맑고 토실토실 귀여웠습니다. 더욱이 참 이쁘고 기특하게도 밤새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술과 잠에서 깬 형은 아기를 보고 당연히 깜짝 놀랐습니다. ‘너 일 저질렀구나’하는 듯한 눈빛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설명을 듣고는 이내 아기를 어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업둥이를 어떻게 하나? 우리가 자취를 하던 집의 주인은 알부자로 소문난 60대 부부였습니다. 안주인은 당시 여당인 공화당 서울지부당인지 무슨 조직인지에 들어 있던 사람인데, 밖에서 누가 들어오면 뒤따라 다니며 타일 깔린 마당을 물걸레로 닦을 만큼 결벽증이 심했습니다. 또 아내는 대단한 술꾼, 남편은 지독한 골초여서 걸핏하면 서로 “담배 끊어라”, “술 끊어라”하고 다투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집에는 호철이라는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이가 손자뻘이어서 알아 보니 입양한 아이였습니다. 아기를 놓고 간 여인은 아마도 그 집의 이런저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기엄마의 기대와 달리, 호철이 어머니는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며 아기를 안아 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대문간에서 아기를 주워왔다고 하자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을 뿐입니다. 형과 내가 “그러면 우리가 키우겠다”고 하자 “학생들이 나중에 장가도 못 가려고 그러느냐”고 펄쩍 뛰며 말렸습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두 살 위인 형과 고려대 2학년에 함께 다니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가 아기를 어떻게 기르겠습니까? 그것은 호철이 어머니 말이 옳았습니다.

그래서 상의 끝에 파출소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 날 저녁 고려대 앞 제기3동(?) 파출소에 호철이 어머니와 함께 셋이 가서 우리를 슬슬 놀리는 경관들에게 아기를 넘겨 주고 왔습니다. 이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을 때 내자동(종로구) 영아원으로 보낼 것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아기를 넘기면서 뭔가 서류를 썼던지 안 썼던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력 정월 20일생’이라는 쪽지는 틀림없이 경찰에 넘겼습니다.

그렇게 아기를 넘겨주고 오니 무척 서운하고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서운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나는 그 애를 ‘임서운’이라고 그러고, 형은 윗사람 성을 따르는 거라며‘윤서운’이라고 우겼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을 되살리려고 이메일을 보내 당시 상황을 말해 보라고 하자 형은 답을 보내면서 “우리가 아기 우유 먹여줬지”라며 ‘우리’를 굳이 강조했습니다. 서운이는 어디까지나 내가 주워온 내 딸인데…. 경찰에 넘길 때 임서운이라고 이름을 지어 보낼 걸 그랬나? 어쨌든 호철이 어머니는 그 다음부터 우리를 큰 아범, 작은 아범 하고 부르며 놀렸습니다.

그 뒤 간혹 남들에게 “나에게 딸이 있었다”는 말을 하면서 이 일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준 적은 있지만 나는 서운이를 잊고 살았습니다. 갑자기 서운이가 생각난 것은 여중생 납치살해범 김길태 때문입니다. 길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라는 길태. 교회 앞에 버려졌던 아기. 그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난 뒤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했다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를 주워와 길러준 부모는 더욱더 가엾고 딱합니다. 게다가 요즘 미혼모 낙태문제와 미혼모의 학습권 보장, 이런 일들이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서운이를 생각나게 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 모두 우리 사회가 공 들이고 힘 기울여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지금 따져 보니 서운이의 생일 음력 정월 20일은 양력으로 1971년 2월 15일(월)이었습니다. 그러니 서운이는 우리 나이로 벌써 마흔입니다. 결혼을 했다면 이미 아이를 둘 이상 낳았을 나이입니다. 그렇게 경찰에 넘겨준 뒤에는 서운이가 어떻게 됐는지 한 번도 알아보지 않은 게 후회됩니다. 국내에 있는지, 아니면 곧바로 외국에 입양돼 갔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다만 서운이가 아무 탈없이 자랐기를 바라면서,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울러 서운이와 같은 업둥이가 앞으로는 없거나 줄어들기를, 그리고 있더라도 모두 잘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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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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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36)
사직동 동회 자리에 영아원이 그시절에 있었는데 학창시절이여서 하루에 두번씩 고개를 돌려가며 보게 되더군요.가느다란 팔과 다리로 아기침대 가장자리를 붙들고 서있는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서운이도 스쳬갔을지도....모자 보건법이란 제도에 관심이 생긴 것이....그시절에는 다들 어려워서 홀트회를 고맙게 여겼지요.여건이 바뀌었다고는 하나서운이 같은 아기들이 많은 것이 안타깝기만 함니다.또한 수정 보완할 제도상의 문제도 보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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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20: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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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과거를 회상하는 자네 글을 읽고있노라니 나 역시 과거의 일이 생각나 몇자 적네. 대학교 1학년 시절 세상을 겁없이 살면서 이일 저일 마구 경험하던 때였어.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학교 서클에서 부산 해운대에 있는 고아원 봉사를 갔었는데 고아들의 심정을 알지 못하던 철부지 대학생들이라 쉽게 아이들에게 접근을 못했어. 용기를 내서 선배들부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 이틀을 지내니까 아이들이 서서히 자기가 마음에 드는 대학생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우리는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 지내며 해운대 해변가로 나가 수영도 하고 아침과 저녁에는 예배당에 가서 같이 기도를 하면서 정을 쌓았어.
보름 정도의 봉사활동 시간이니 지나니 큰 걱정이 앞서는 것이야. 과연 이 아이들과 어떻게 헤어질 방법을 모르겠는 거야. 우리도 어린 나이인데 그 아이들은 우리의 차를 따라 뛰어 오며 손을 흔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거야. 차를 타고 가는 우리들은 조금은 어른답게 아이들 몰래 울었지. 서울로 돌아와 나와 친했던 아이에게 편지를 써 보냈지. 답장을 할 수 있게 우표를 동봉해서 말이야.
그 아이는 그 당시 나에게 조개껍질로 묶어 만든 목걸이를 선물로 보내왔어. 우리는 약 6개월 정도 편지를 주고 받다가 편지 왕래가 끊어지고 말았지. 인생을 한바퀴 돌아온 지금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캐나다로도 이민을 가서 살기도 했지만 이사짐을 정리할 때면 그 때의 어린 친구가 준 조개껍질 목걸이를 발견하곤 했어. 줄은 끊어져 조개껍질만 있는 과거의 목걸이를 준 그 아이도 지금은 40대 중반은 되어 있을거야.
옛일을 생각나게 한 자네 글 자주 보내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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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8: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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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길 (211.XXX.XXX.129)
근런애기 들은것 같기도하고 안들은것 같기도하고..갑지기 옛날 그시절이 생각나누나 . 글 잘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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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3: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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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121.XXX.XXX.250)
기자시절 입양아가 양부모에게 패륜행위를 한 기사를 쓴적이 있습니다. "길러준 부모에게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버려진 놈 뭐하러 주워다 살려서 살인자로 만들었냐"고 허공에다 외마디 고함을 지르던 소름끼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김길태 사건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나는 그 기사를 쓴 뒤 오래동안 후회했습니다. 입양해서 잘 키운 부모들이 훨씬 더 많을텐데 예외적으로 잘못된 케이스 때문에 대다수 입양아나 입양부모들이 상처를 받고, 그 때만해도 매우 드물었던 입양에 그 기사가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지금은 입양이 훨씬 보편화 된 세상인데 김길태 사건이 입양에 큰 영향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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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3: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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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그러니까 김길태는 정말 나쁜 짓을 한 거지요. 입양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이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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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5: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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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 (218.XXX.XXX.130)
김길태의 양부모도 잘한 것 없지요.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따뜻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요. 아이에게 "길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길태"라는 이름을 붙였다니, 이 부모의 무지로 인한 잔인함이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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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3 09: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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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121.XXX.XXX.250)
길태란 이름이 진짜 그런 이유로 지어진 이름인가요? 오보이거나 지어낸 이야기인줄로 생각했는데요. 그게 사실이라면 양부모가 비난받을 이유가 되겠지만 사실이 아니겠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확산되는 얘기일수록 면밀한 사실확인이 중요한 법이죠. 능력도 없으면서 주워다 기른 것이 죄라고한다면양부모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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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4 10: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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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섭 (211.XXX.XXX.129)
서울서 오래동안 특허관련 일하는 친구소개로 귀칼럼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글 재미나게 잘읽었습니다. 불의를 미워함은 이해하나 용렬은 왜 미워하십니까? 시는 아니고 술,유머 좋아합니다. 조금 형님뻘 되겠는데, 부산 나들이 있으면 연락하여 대포한잔 하십시다. 저는 병술생 음9월9일생 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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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0: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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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118.XXX.XXX.158)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가슴이 뜨거워지는 글입니다.
서운이를 한 번도 알아보지 않으신게 후회스럽다는 말씀 이해가 됩니다.
아마 지금 서운이는 한 가정 이루고 잘 살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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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09: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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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누군가의 딸이 되고 부인이 되고 어머니가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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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5: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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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打 (59.XXX.XXX.151)
청년 임철순의 따땃한 가심이 느껴지네유.
임주필님 복 받을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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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09: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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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어찌어찌해서 이 글 읽고 제 앞에 나타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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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5: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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