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을 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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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위한다면

방석순

2010년 03월 25일 (목) 00:47:40

- 예체능 교육을 살리자

이태 전 「울 학교 이티(ET)」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철밥통’으로만 알고 있던 교직에서 잘리게 된 한 체육교사가 영어교사로 변신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은 영화입니다. 코믹하다지만 실제 교단에 선 선생님들에겐 뼈가 저린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정규수업에서 밀려나는 과목이 어디 체육뿐이겠습니까.

「울 학교 이티(ET)」는 별로 빛도 못 보고 단기간에 종영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학교의 현실을 고발한 의미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됩니다. 흥행 실패로 적잖은 손해를 봤다지만 영화 제작자 스스로 “마케팅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걸 아쉬워했습니다.

학교가 입시 전쟁터가 되면서 체육시간은 자율학습시간, 아니면 다른 과목의 보충수업시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갔습니다. 민망스럽게도 오바마 대통령이 걸핏하면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을 추켜세우곤 합니다만 미국 내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도 오래전부터 체육은 폐기처분될 ‘위기의 과목’으로 인식되고 있었던가 봅니다.

필 롤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서쪽 네이퍼빌에 있는 매디슨중학교 체육교사였습니다. 그곳에서도 체육 경시 풍조로 교과과정에서 체육수업이 줄어드는 추세여서 그는 자신이 체육교사라고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아이들이 운동을 기피해 갈수록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필은 즉각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체육수업 중에도 아이들이 몸을 잘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야구를 할 때면 자기 타순을 기다리고, 축구를 할 때면 볼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고, 모두가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필은 매주 체육시간에 모든 아이들이 1마일씩 달리도록 수업내용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운동기구 판매업자의 후원을 얻어 아이들의 심장박동수를 측정했습니다. 빨리 달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그만큼 높은 심장박동 수치가 기록되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운동능력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운동에 기울인 성의와 신체 반응을 평가한 것입니다.

이어서 ‘3대3 농구’, ‘4대4 축구’ 등 참여하는 모든 아이들이 끊임없이 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스포츠에 대한 지식이나 능력으로 점수를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도에 맞게 목표로 정한 운동량, 심장박동 수치로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매디슨중학교의 체육시간은 점차 인공암벽을 기어오르는 아이,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아이, 자전거를 타는 아이, DDR 위에서 춤추는 아이들로 열기가 넘치게 됐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운동하고 심장박동기에 나타난 수치만큼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이 같은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깨닫게 됐습니다. 또 그 운동에 맞는 기술과 용기, 협동정신을 배우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체육수업의 혁신은 네이퍼빌의 이웃 학교들로 퍼져갔습니다. ‘0교시 체육수업’을 시행하는 학교도 생겼습니다. 정규수업이 시작되기 전 자원한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하는 실험적인 체육수업이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0교시 체육수업’ 참여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읽기능력, 이해력에서 두드러진 발전을 보인 것입니다. 적절한 신체운동이 잠들어 있던 뇌를 깨우고 뇌의 활동을 더욱 민활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학습효과를 크게 향상시킨 것입니다.

1999년 38개국 학생들이 참가한 학력평가에서 미국 학생들의 전체 평균은 과학 18등, 수학 19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체육수업을 받은 네이퍼빌 지역 학생들의 평균치는 과학 1등, 수학 6등 수준이었습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네이퍼빌과 다른 지역의 여러 요인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이 같은 성과가 이 지역만의 독특한 체육수업 덕택이라고 결론짓게 됐습니다.

‘0교시 체육수업’을 진행해온 네이퍼빌 센트럴고등학교의 체육교사 닐 던컨은 “이 수업의 목적은 운동을 통해서 학생들의 두뇌를 학습에 적합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필과 함께 이 혁신적인 체육수업을 전파한 폴 젠타스키는 “우리 체육교사들은 아이들의 뇌세포를 만들어내지요. 그 속에 내용물을 채워 넣는 것은 다른 교사들의 몫이고요” 라며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미국의 신경의학자, 심리학자들은 동물 실험을 통해 운동을 많이 한 동물군의 뇌의 구조와 무게가 운동을 하지 않은 동물군보다 훨씬 복잡하고 크게 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그런 효과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두뇌를 더 발전적으로 바꿀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방법도 간단합니다. 운동화 끈만 졸라매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부모들도 당장 경제적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아이들에게 적절한 운동을 시킴으로써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학업성적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네이퍼빌의 체육수업은 2년 전 하버드대 의대 임상정신과 존 레이티(John J. Ratey) 교수가 쓴 『운동화 신은 뇌(Spark Your Brain)』라는 책의 첫머리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그 내용은 출간 이전에 벌써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언론에도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미처 못 본 사람,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 알고도 실행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 몇 번이고 되풀이 화제에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 같은 재료로 만든 화장품을 고급 용기에 넣어 고가에 팔면 불티나게 팔리고, 싼 용기에 넣어 싸게 팔면 파리를 날린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보다는 출현 가능성 없는 신비의 영약에 목을 맵니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 숙면을 취하게 하는 약, 불안이나 우울증을 없애주는 약, 담배나 술,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 약, 노화를 방지하는 약, 치매를 예방하는 약… 레이티 교수는 이러한 모든 요구에 만일 운동만큼 효과가 좋은 약이 개발된다면 백년에 한 번 있을 정도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지난 2월 우리 학교들은 한동안 해괴한 졸업식 뒤풀이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계란을 던지는 고전적 뒤풀이가 아니었습니다. 알몸으로 개울에 뛰어들고 교복을 찢고 속옷을 벗겨 집단 체벌하고 바닷물에 빠뜨리고… 위험수준을 넘은 행태였습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서고 대통령이 질책했지만 학교는 덮어 감추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우리 교육계엔 덮어야 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고질적인 학교 폭력과 금품 갈취에서 부정 입학, 부정 인사까지. 참 교육의 뜻을 품은 선생님들마저도 언제까지 교단에서 버틸 수 있을지 염려스러울 정도입니다.

얼마 전엔 게임에 중독돼 3개월 된 아기를 굶겨 죽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게임을 말리는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젊은이도 있습니다. 게임에 사용되는 사이버 병기를 탐해 남을 해치는 사람, 지하 PC방에서 밤을 지새우다 죽는 사람도 하나둘이 아닙니다. 게임은 미래산업 이전에 건전한 사회를 위협하는 심각한 중독성 때문에 비판받고 있습니다. 게임산업의 미래에는 수익성에 대한 밝은 기대만큼이나 건전성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습니다.

지난주 행정안전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의 7개 부처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인터넷 중독 예방 및 해소 종합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전문 상담요원을 양성해서 현재 8.8%인 인터넷 중독률을 5% 이하로 낮추고, 예방교육 대상을 연간 47만 명에서 3년간 1,000만 명 수준으로 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발표에 나선 정부 당국자는 근거도 의미도 알 수 없는 수치를 읽어 나갔을 뿐 사태의 원인도, 해결 방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조차 옳게 하지 못했습니다. 게임의 접근성, 중독성을 방치한 채 게임방에 드나드는 청소년들에게 상담사가 타이르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것일까요. 그토록 강한 흡인력을 가진 게임을 만들 실력이라면 탐닉과 중독을 예방하는 기술 개발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법무부의 최근 자료는 청소년의 성폭력 재범률이 성인에 비해 3배가량이나 높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폭력 건수도 2005년 1,235건에서 2008년 2,126건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범죄 청소년들은 보호관찰소, 소년원학교, 소년교도소 등에서 교화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도의 효과는 모두가 다 아는 대로입니다.

결과를 다스리는 대증요법만으로는 늘어나는 학교폭력, 게임 중독, 청소년 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예방이 보다 중요하다는 소리도 수없이 흘러나왔습니다. 구체적인 예방법이 무엇인지, 거기에 자신이 없을 뿐입니다.

저는 매디슨중학교의 체육수업, 네이퍼빌의 ‘0교시 체육수업’에 참가했던 아이들처럼 우리 아이들을 키운다면 지하 PC방에 파묻혀 게임에 중독되거나, 졸업식 날 교복을 찢고 알몸 체벌에 주먹다짐을 벌이는 헛된 짓으로 정력을 낭비하는 일을 다른 어떤 방법으로보다 확실하게 예방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네이퍼빌에서처럼 올바른 체육수업을 받을 수 있다면 성폭력이나 갖가지 비행의 유혹에 빠지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 믿습니다.

호기심 많고 힘이 솟구치는 청소년들에게는 양지에서 마음껏 뛰놀고 땀 흘리며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용기와 모험심을 키울 수 있는 체육수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 학업의 향상을 바란다면 체육수업은 줄일 것이 아니라 늘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체능 교육은 사람의 그릇을 만드는 교육입니다. 심신의 건강과 인간다운 정서, 도전정신과 협동정신을 함양하고, 규율의 중요성을 일깨워 더불어 사는 법,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일인 것입니다. 아이들의 뇌를 더욱 크게 발전시키려면 우선 볼을 차고 달리고, 시를 읽고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을 아이들로부터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내천 (220.XXX.XXX.146)

예체능 교육을 활성화 하자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지식의 주입 보다는 지혜를 가르치는게 현명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예체능과 국사에 대한 시간을 늘이는게 필수가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현장은 반대로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 때는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는 표어도 내걸었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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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07: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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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용 (121.XXX.XXX.244)

여러 사람이 읽어야 할 글이라 생각합니다. 신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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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09: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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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섭 (121.XXX.XXX.244)

정말 옳은 말씀. 높으시 혜안과 통찰력에 감동했습니다. 간만에 좋은 글. 우리 아이의 교육에 대하여 필요한 글인 것 같습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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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09: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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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244)

수십년 만에 찾아뵌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지요) 담임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이 되어 계셨습니다. 그분 말씀이 교장 한 번 맘 먹으면 학교가 달라지고, 담임이 한 번 맘 먹으면 학급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분은 저자거리에 있어 어수선하던 학교 분위기를 꽃동산처럼 바꿔 놓으셨더군요. 여러가지 운동부는 물론 서예반, 바둑반 같은 특별활동부도 운영하시고. 정말 용기있는 선생님들이 맘 먹고 나서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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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1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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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상 (119.XXX.XXX.235)

체육시간을 입시와 연계하지 않고도 유익한 꼭 필요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사례네요. 저는 학교에서 체육점수를 줄넘기 수, 공치기 수, 공 넣기 수 이런 것으로 평가하는 것을 보고 저건 아닌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자기 몸에 맞게 운동을 열심히 한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는 방식, 참 좋겠습니다. 열심히 운동하면 몸에 좋고, 평가도 잘 받고... 이게 진정한 체육 교육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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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16: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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