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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묻는 그대에게
신아연 2010년 04월 22일 (목) 00:38:30
몇 주 전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지인으로부터 “매주 글을 쓰면서도 바투 다가오는 간격을 잘 조정하며 글의 질을 고르게 유지하는 것이 힘들 텐데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인지라 역시 듣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신문사 일을 시작한 후, 이런저런 취재도 다녀야 하고 기사도 써야 해서 전처럼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도 용하게 매주 칼럼을 끌어가는 것을 격려하는 뜻이었습니다.
응석도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실은 별로 의식도 않고 있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제 자신이 갑자기 대견하고 좋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품질 유지'는 둘째고 한 주에 하나씩 칼럼을 생산하는 자체가 당면 과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언감생심 한국일보의 '장명수 칼럼'이나 조선일보의 ‘이규태 칼럼’처럼 명칼럼으로 이름을 날리기는 고사하고 한 주 한 주 지면을 메우는 것에 급급하며 허덕입니다.

글을 쓰는 일은 질주하며 내달리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유사합니다.
무 자르듯 일상의 흐름을 단칼에 성둥 베어낸 후 일정량의 정지된 시간과 독대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잘린 무의 하얀 단면처럼 순간 아득하고 때로는 아주 잠깐 공포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일상의 잡다한 흐름을 순간적으로 끊는 제동장치를 내면에 장착시키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기본 자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운동에는 도통 소질이 없지만 중ㆍ고등학교 때 저는 왕복 달리기를 제일 잘했습니다.
짧은 단위의 거리를 최고 속도로 달려가다 정지선에서 갑자기 멈추는 순간 발바닥에 불이 이는 듯한 느낌은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의 타이어와 흡사합니다.
그렇게 달리다 갑자기 멈추는 동작을 몇 번 반복하는 왕복달리기에는 늘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또래보다 키가 한 뼘은 컸던 꺽다리가 갑자기 멈춰 서려면 휘청거릴 만도 하건만 정확하게 멈추고 휙 돌아서서 왔던 방향으로 내달리는 제 동작에 급우들은 경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운전 면허 실기 시험 중에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을 채점하기 위해 주행 중에 급제동을 걸게 하는 코스가 있지요. 그것도 학창시절 왕복달리기처럼 제 주특기였습니다.
왕복달리기와 주행 중 돌발적 브레이크 잡기처럼 일상에 급제동을 걸 수 있는 능력과 유연성이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문화 단체의 강좌를 맡아달라는 제안이나 이따금 글 쓰는 것에 대해 물어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엊그제는 올가을엔 꼭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취미나 여가 보내기, 좀 더 고상하게는 뒤늦은 자아발견을 위해 제일 만만한 활동이 글쓰기인 것처럼 여겨져 민망할 때도 있지만, 늦은 나이에 일 말고 한 가지를 새로 시작하려면 악기를 다루거나 그림을 그리기보다 글쓰기가 훨씬 간편하고 돈도 안 들어 수월할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자는 시 한 편을 짓기 위해 사흘 밤낮을 새운다고 하지만 면구스럽게도 ‘뭘 그렇게까지야 ‘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단하고 징하게’ 굴어야만 글이 나온대서야 어디 시작이나 해 볼 수 있겠습니까. ‘글재주’ 라고 하듯이 재능이 먼저 주어져야 끄적이는 시늉이라도 할 것처럼 지레 겁을 먹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모든 글이 ‘문학’일 필요는 없습니다. ‘범접할 수 없는 문학’의 영역을 기어코 기웃거리고 싶은 분만 빼고는 단언컨대 그냥 쓰면 됩니다. 한 유명한 역사학자는 어느 날 시각 장애로 더이상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어 그 때부터는 글을 썼다고 하지요. ‘에라, 남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된 바에야 이제부터는 내 글을 써야겠다’ 라는 여유와 배짱이 멋지지 않습니까.
물론 여기에 저처럼 왕복 달리기를 잘 한다거나 남보다 급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편이라면 글쓰기에 유리한 조건입니다. 내달리는 일상의 고삐를 틀어쥘 수만 있다면 글쓰기의 기본기는 갖춘 셈입니다. 그 일상은 술자리의 유혹일 수도 있고, 친구와의 수다나 뭘 좀 해보려 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초저녁잠일 수도 있을 겁니다. 뭐가 됐건 하던 일을 가차없이 중지하고 단칼에 시간을 베어 그 단면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가을에 모두들 글 한 편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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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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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근 (203.XXX.XXX.182)
신아연 기자님을 글을 읽을때가 한 주일 중 가장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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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3 11: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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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 (203.XXX.XXX.182)
오랬만에 다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반갑네요. 글쓰는 것이 마치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은 느낌이 제에게도 왔으면 좋겠네요. 모쪼록 자신만의 기쁨의 글을 쓸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독려해 주어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제네바에서 최병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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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3 11: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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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203.XXX.XXX.182)
저도 한달에 글 하나씩 써야하는데 매주 좋은 글을 뽑아내고 나누어 주는 신아연 부국장님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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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14: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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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그렇더군요.
아무리 간결한 글이라도 하던 일을 가차없이 베지 않음 쓸 수 없더군요.그리고 잡힌 주제를 따라 오솔길도 걷다 골목길도 헤메다 시원한 해변을 내달려 종지부를 찍었을 때의 상쾌함은 끌 쓰는 사람만이 누리는 성취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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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1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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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121.XXX.XXX.157)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마크 투웨인의 표현을 원용해서 말하면 '글을 쓸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은 글을 쓸 수 없어서 안 하는 것 보다 나쁘다 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글 쓰는 사람을 모두 문인 취급을 하는 습성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글을 안 쓰려고 하는 핑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신아연 부국장님의 글은 글쓰기를 아주 친근하게 느껴도 좋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런 계기를 마련해주셨다고 봅니다. 글쓰기를 하고는 싶지만 아직은 멀리하고 있는 분들은 이번 신아연 부국장님의 글을 읽고 또 읽고, 아주 여러 번 읽으면, 아니 족보처럼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는 물론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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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13: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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