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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사기꾼
신종호 2007년 03월 10일 (토) 09:15:25

   


세 명의 사기꾼
스피노자의 정신 지음
성귀수 옮김 / 생각의 나무 출판사

   
 

한 시대의 진리와 정의가 설득력을 잃거나 그 근거가 빈약할 때 시대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웃사이더들이 많이 출현하는 시대의 공통적 특징은 억압과 폭력이 난무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로 서민을 다스리겠다는 지도자들의 짓거리가 목불인견의 경지를 넘어서게 되면 너희들이 말하는 진리와 정의가 도대체 뭐냐며 반항을 일삼는 돌출형 인간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특기는 비꼬기와 사기치기입니다. "예술은 사기예요. 예술가는 고등 사기꾼이지! 그러니까 나도 사기를 하는 사람이지 뭐!"라고 말한 비디오 아트의 거장 고 백남준의 말을 빌려 유추해 본다면, 객관적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하등의 사기꾼이고, 하등의 사기꾼이 사기 친 것을 다시 한 번 더 사기를 쳐서 진리를 까발리는 게 고등의 사기꾼이라는 아이러닉한 공식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고등의 사기술은 아웃사이더들만이 가지고 있는 생의 노하우입니다.

 
『세 명의 사기꾼』을 그러한 사기 공식에 대입해서 읽어보니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모세, 예수, 마호메트는 하등 사기꾼이라는, 매우 위험하고 신성모독적인 전제와 결론을 애초부터 상정하고 쓴 불온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제는 『스피노자의 정신』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세 명의 사기꾼』이라는 도발적인 이름을 달고 출간 되었습니다.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수많은 추측으로 신비의 베일을 더 한층 두텁게 두르면서 17~8세기 비밀출판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악명 높은 문헌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출간 당시 이런 불경스러운 내용을 함부로 지껄인 자가 누군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당대의 쟁쟁한 삐딱이 지식인들이 용의선상에 줄줄이 올랐지요. 서구유럽에 악명을 떨친 종교철학자 이븐 루슈드를 필두로 보카치오, 에라스무스, 마키아벨리 등 전 유럽의 유명 사상가를 두루 탐문하다가 결국에는 스피노자가 저자일 것이라는 추측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확언은 할 수 없기에 결국 저자를 스피노자가 아닌 ‘스피노자의 정신’이라고 했다지요. ‘정신’이 저자라니 참 희한한 해프닝입니다.

 
하여간 세 성인을 사기꾼으로 몰고 간, 백남준의 말대로 고등의 사기꾼이라 불릴 수 있는, 저자의 안개 같은 행방도 흥미롭지만 당대에 이 책을 구해보려던 팬들의 극성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철학의 거장 데카르트를 억지로 초청해 철학 개인교습을 받을 정도로 지적인 욕심이 대단했던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이 책을 구해오는 자에게는 막대한 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것만 보더라도 그 유명세와 관심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예수나 마호메트는 종교를 빌미로 민중을 현혹시킨 정치적 선동가들이자 책략가들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보기엔 경천동지할만한 일이지만, 한 꺼풀 감정을 죽이고 보면 지극히 이성적 내용입니다. 무지가 거짓에 대한 섣부른 믿음을 초래한다는 게 저자의 일관된 관점입니다. 그래서 종교권력이 서민들에게 배포한 무지의 신비를 벗겨내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밝혀보겠다는 마음으로 쓴 내용이지요. 이성으로 세상을 보자는 게 신성모독일까요? 어쨌거나 볼테르는 이 책을 읽고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는 묘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말은 당시 종교 권력자들과 무지를 바탕으로 한 맹목적 신도들의 반발을 에둘러 비꼰 것이라 여겨집니다. 종교인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울 소지가 있지만 “불의에 과감히 항거하는 성실한 지식인의 목소리가 어느 시대나 끈질기게 있어 온 것 또한 사실”이라는 저자의 말을 상기하면서 읽어본다면 그 불온함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더군요. 불량하고 삐딱한 사유로 시대의 허위와 무지를 보기 좋게 사기 치는 고등의 사기꾼과 진정한 아웃사이더들이 왠지 그리워지는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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