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 강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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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 강이 그리워

오마리

2010년 05월 03일 (월) 00:20:48

버드나무들이 휘늘어져 있던 천변은 우리 조무래기들에게는 놀이동산이었습니다. 가장 어린 나는 사촌들 속에 묻혀 색종이로 만든 팔랑개비를 날리며 달렸습니다. 그곳은 울안에 갇힌 한 마리의 토끼같던 내게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상설무대를 설치한 천막극장이 자리하여 '황성옛터' 같은 온갖 구성진 노래를 불러대면 우리는 가마니를 깔아놓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혼을 쏙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옛날 가요를 기억하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이 상설무대 덕분입니다.

또한 '나이롱극장'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그 야외극장은 악극과 국악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였으며, 춘향가 심청전과 같은 판소리까지 들려줘 전통과 서민문화를 저절로 교육시킨 곳이었지요. 물론 약장수들이 약을 팔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우리에겐 꿈과 추억의 산실이었습니다.

어쩌다가 서커스단이 이 천변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으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고 천변의 서커스장 입구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유혹하던 나팔소리와 온갖 노래 소리, 외줄 타기, 불 속으로 뛰어들기 등 곡예와 묘기에 사람들은 넋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그 천변의 낭만은 서커스단과 함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론강 (Rhone River)

작년 겨울 남 프랑스의 고도 아비뇽을 찾았습니다, 아비뇽다리 아래로 흐르는 론강(Rhone River)의 저녁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갈색으로 물들어 가던 해질녘의 강과 강변의 나무들,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떠 있던 아비뇽 다리 위에 서서 론강을 바라보며 고흐의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그의 걸작 ‘별이 빛나는 론강(Starry Night Over the Rhone)’에서처럼 고흐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 있는 그 강은 그림 속의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높이가 한 자도 되지 않는, 홍수로 범람하여 다리가 끊겼다는 아비뇽 다리 주변의 콘크리트 제방은 흙과 자연스럽게 어울렸으며, 아비뇽 도시 밖으로 흘러가는 론강과 론강의 지류는 흙길의 정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센강(Seine River)하구 옹플뢰어 항구

파리의 센강(Seine river)은 흐르고 흘러서 그 유명한 인상파 화가 모네의 화실인 지베르니를 지나, 그의 스승이자 인상주의를 태동시킨 부댕의 고향인 옹플뢰어(Honfleur)까지 흘러갑니다. 아주 오래 전, 도버해협과 만나는 센강 하구인 옹플뢰어까지 흘러가는 센강과 지류들이 범람하여 댐 공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센강변의 길은 내가 최초로 보았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없이 아름답습니다. 자연환경과 강의 조화가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직 옹플뢰어 항구에만 요트와 보트들의 정박을 위하여 콘크리트 제방을 쌓았을 뿐 흘러가는 강의 지류들은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이자르 강 (Isar River) 독일 뮌헨시

그뿐 아니라 뮌헨시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이자르강의 백사장은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군데군데 차도가 있는 곳은 콘크리트를 더러 썼지만, 백사장과 우거진 숲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멀리 대성당과 바로크 형식의 유명 사탑을 배경으로 맑은 물이 잔잔히 흐르는 강과 백사장을 걷는 연인들의 모습, 오래된 고목의 가지 위에서 소년 소녀가 포옹하고 있던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티베르 강 (로마 시내)

국내에서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4대강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이에 대하여 언론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 여당 의원이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 것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즉 4대강 사업을 통해 4대강을 한강처럼 친 시민생활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홍수를 막고 재해를 막는다, 친 시민생활공간을 만든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강 주변에 보기 흉한 콘크리트로 도배를 한 한강개발은 원래의 아름다웠던 한강을 망친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아름다운 4대강들이 한강처럼 흉측하게 변하지 않을지 두렵습니다. 이 개발사업 전체에 얼마나 많은 콘크리트가 사용될지 걱정입니다. 또한 지나친 준설작업이 그 강에 살고 있던 생명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안동시의 하회마을을 S자로 휘감고 돌아가는 낙동강변의 백사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고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외국인에게 우리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 양식을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하회마을입니다. 깊은 감동과 함께 내가 걸었던 하회마을의 백사장은 낙동강과 함께 부드럽게 돌고 돌아 하회마을을 더욱 은은하게 만듭니다. 우리 조상들의 탁월한 심미안에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백사장을 없앤다니 백사장 없는 소나무와 강이 운치가 있을 리 없으며 아름다울 리도 없습니다.

더욱이 병산서원과 민속적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는 많은 고택들은 소나무와 백사장을 배경으로 절묘하게 조선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백사장 없는 하회마을, 고택들, 서원, 낙동강을 상상해 보시지요. 가장 빼어난 한국미를 보여주는 하회마을의 배경인 백사장을 없앤다는 것은 또 한 번 조상이 남겨준 훌륭한 유산을 망치는 일이니 다시 한 번 숙고하기를 바랍니다.

섬진강 하구의 하동포구에서는 이제 재첩이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섬진강 상류에 건설된 댐이 담수의 흐름을 막고 있어 바닷물이 강 심층까지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식입니다. 몇 년 전 여행하였던 섬진강은 물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섬진강 상류에서 하동포구까지 가는 동안 보기 흉한 강바닥이 드러나 갈라진 모습을 보면서 댐 공사가 과연 필요했던 것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댐으로 하여 농수와 재해 방지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모습도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섬진강 풍경 중 가장 수려했던 곳은 간이 열차역인 괴목역에 서서 바라보는 강변입니다. 하지만 그리웠던 그 경치 또한 사라졌습니다. 한 번 파괴된 자연은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콘크리트 사용을 최소화하고 지나친 준설작업도 신중히 고려해야 하지 않는지요.

강은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강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함께 애환을 보듬으며 함께 살아갑니다. 그 역사와 문화가 그곳에 그대로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사는 생명체들도 다시 그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사진촬영 오마리>

김윤옥 (210.XXX.XXX.84)

인위적으로 벌이는 일이 어찌 창조주의 솜씨를 따르겠습니까? 우리 자신도 창조주의 귀한 작품일진대 그 사실을 잊고 또는 부정하며 벌이는 자연 파괴의 행패를 누군가가 막아야합니다.
지금 넘쳐나는 준설토가 또 다른 재앙을 일으킨다는 뉴스를 들으며 참으로 안타깝고 두려운 맘 억제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라도 더 적극적으로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어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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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13: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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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철 (119.XXX.XXX.235)

글을 읽으니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이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왜 많은 해야할 일들을 두고 그것도 임기 안에 4대강을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닌 후세에 누구의 업적이 이것이다를 표방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아요. 국민이 아닌 대통령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발상에 전국이 흐트러집니다. 항상 차분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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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14: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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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21)

5,6세때 물굽이가 느린 사행천 강변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모래놀이를 하던 추억과,홍수때면 범람해서 둥둥 떠내려오던 물건들[초가지붕,돼지,닭,수박,참외]의 추억 극과극의 두가지 추억이 공존함니다.자연에는 평화와 파괴가 공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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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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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청봉 (118.XXX.XXX.158)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4대강이 어떻게 변할지, 하고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이루어질지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미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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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1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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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k (121.XXX.XXX.198)

꼭 나쁘게만 생각해야만 하는지요.
전 국민이 이렇게 자연홰손됨을 걱정하니 친환경적으로 설계하겠지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며 이끌어가면 어떨지 저혼자 생각해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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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21: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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