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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자유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김이경 2010년 05월 13일 (목) 00:31:09
평생학습관에 딸린 시각장애인실에서 입력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점자책을 만들기 위해 책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인데, 어깨는 좀 아프지만 시간선택이 자유로워서 부담이 적었습니다. 그 날도 잠깐 짬이 나기에 장애인실에 들러 제가 맡은 책을 입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개를 앞세우고 한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맹인안내견을 데리고 온 시각장애인이었지요.

개를 무서워하는 저는 움찔해서 둘을 주시했습니다. 그리고 거듭 놀랐습니다. 덩치 큰 안내견이 너무나 조용하고 조신해서 놀랐고, 두 눈을 감은 장애인 청년이 훤칠하게 잘생겨서 놀랐습니다. 청년은 사무실 직원과 얘길 나누며 5분 정도 머물다가 지하수영장으로 내려갔는데, 그 5분 동안 오타를 얼마나 냈는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더군요.

잘생긴 남자를 보고 가슴 설레는 것이야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무수한 오타를 낼 만큼 평정심을 잃은 것은 그저 잘생긴 청년이어서가 아니라 잘생긴 장애인이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렇게 멋진 청년이 눈이 보이지 않다니! 마치 비극의 주인공을 보는 듯, 동정과 흠모가 뒤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던 것이지요.

그게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한 일인지, 김원영이 쓴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책을 읽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로스쿨에 다니는 스물아홉 살의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을 앓는 1급 지체장애인입니다.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는 지체장애인이 쓴 책이라니 당연히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아닙니다. 이 책은 역경을 이긴 슈퍼 장애인 이야기가 아니라 뜨거운 욕망을 가진,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장애 때문에 흔들리는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김원영은 불편할 정도로 솔직하게 장애인의 속내를 고백하고 장애를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을 고발합니다. 덕분에 책을 읽고나면 장애인에 대해서도, 장애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대해서도, 나아가 이른바 88만원 세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어느 날 아침, 할머니 바짓단에 걸려 넘어진 김원영은 뼈가 완전히 부스러지는 골절상을 입습니다. 이 생애 최초의 골절상을 시작으로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는 20번 이상 골절상을 입고 10여 차례의 수술을 받습니다. 한국인 5천 만 명 중에 2백 명이 앓는 골형성부전증을 타고난 것입니다. 이 ‘선택받은’ 운명 때문에 그는 열다섯이 될 때까지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강원도 시골집에서 두 팔로 기어 다니며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 열다섯 살 때,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해 경기도의 재활학교에 입학합니다. 난생 처음의 학교생활, 그것을 위해서 그는 장애인 등록을 합니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는 장애인이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게 뭐가 어려운 일인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김원영과 그 부모에게 그것은 “사회적인 추락,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비정상의 굴레를 뒤집어쓰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장애인이라 해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저 역시 여자로 살면서 여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그의 괴로움을 짐작하지 못했으니,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요.

재활원 생활은 방안에 웅크렸던 김원영을 엄청나게 성장시킵니다. 욕심 많고 자존심 강한 소년은 공부를 하고 학생회장을 하고 연극을 하고 사랑을 하면서 꿈을 키웁니다. 그리고 온갖 난관을 뚫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그는 ‘슈퍼 장애인’이 되겠다고, 언제나 당당하게 어려움을 돌파하고 사람들의 시선에도 태연한 능청스러움과 무엇이든 잘하는 능력까지 두루 갖춘 슈퍼맨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수록 그는 깨닫습니다. 자신은 슈퍼 장애인이 아니며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낙오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엇이든 잘하는 슈퍼맨이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이란 것을.

김원영이 대학에 다니던 2001년 중증 장애인들이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입니다. 리프트 사고로 여러 명의 장애인이 목숨을 잃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나선 것이지요. 지켜보는 비장애인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그들은 투쟁을 계속해 나갔고, 결국 서울시는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에 이릅니다. 요즘 노인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바로 장애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덕분이었던 겁니다. 아무 도움도 안 주고 혜택만 받은 비장애인으로서는 참 부끄러운 일이지요.

아무튼 김원영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슈퍼 장애인의 환상을 버리게 됩니다. 한 슈퍼맨이 장애를 ‘극복’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없는 몸 대신 사회를 바꾸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힘을 모으기 위해서 그는 비장애인에게 동정어린 시선으로 장애인을 모욕하지 말고 “함께 비를 맞는 연대”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장애인이 불쌍한 존재니까 도와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비정상의 세계로 추락할 수 있으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을 뜻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로스쿨에 다니는 중증 장애인으로서, 그는 전혀 이질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 동시에 관계를 맺습니다. 여러 세계에 정체성을 걸친 그 삶은 그를 분열시키고 잠 못 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삶을 책임지겠다고 다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리는 지금의 자유는 숱한 이들이 싸워 이룬 자유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김원영은 말합니다. 내 삶 자체가 바로 자유라고. 그러므로 더 큰 자유를 위해 기꺼이 제 몫을 다하겠다고.

젊은 장애인의 당찬 고백을 읽으면서 제가 누리는 자유를 생각합니다. 내 자유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멀쩡한 몸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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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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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56)
우리와 늘 더불어 사는 장애인을 위해 잠깐씩이라도 짬을 내서 봉사 하시는 김이경님의 건강한 마음을 빌어 새롭게 세상을 보는 눈이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흔히 몸의 장애보다 무서운 마음의 장애를 부끄러워한다고 말 하지만 타이인의 장애에 무심한 그것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긴 막대로 이리저리 더듬으며 혼자 걷던 맹인의 지팡이에 걸려 넘어진 적 있습니다. 그 때 복잡한 심정으로 사과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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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14: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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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환 (122.XXX.XXX.53)
나도 장애인이구나! 동시대의 비를 함께 맞으며 가는 많은 동지들과의 연대를 갈망합니다. 멋진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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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0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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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67)
여러 세계에 정체성을 걸친 그 삶은 그를 분열시키고 잠 못 들게 하지만책임지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큰 용기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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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4: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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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건강한 사람은은 장애인을 보면서,간난한 사람은 거지를 보면서 한없이 감사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줘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더 나은 사람들을 보면서 불평하는게 보편타당한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김원영씨가 외치는 뜨거운 욕망으로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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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0: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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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174.XXX.XXX.104)
지켜보는 비장애인들의 냉담한 표정....
이 구절에서 비애를 느끼며. 그 표정에서 냉혈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습니다.
저도 다리가 아픈 사람이라 서울에 가면 꼭 지하철 승강장을
이용합니다. 그런 애절한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다시 이용하게 된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타겠습니다.

오늘도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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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09: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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