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딱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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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 벗고!”

방석순

2010년 05월 17일 (월) 01:23:29

봄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잔뜩 늑장을 부리더니 어느 결에 다가선 여름의 기미를 눈치 챈 것인지 놀란 말처럼 지그재그로 달립니다. 어떤 산엔 이제 진달래가 피어나는데 어떤 산에선 벌써 철쭉이 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꽃들도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피고 지는 것 같습니다.

새들의 노래 소리도 한층 요란해졌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높은 나뭇가지에서 사람의 시선을 피해 다니는 새가 있는가 하면 사람을 따라다니는 새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놈들이 곤줄박이와 동고비입니다.

깜장 머리와 목덜미, 주황색 등과 배로 알록달록 귀여운 털을 가진 곤줄박이는 특히 대담해서 사람 손바닥에 거리낌 없이 올라앉습니다. 예전엔 볼 수 없던 풍경입니다. 고 쬐끄만 놈들이 가녀린 발가락으로 사람 손가락을 붙잡고 앉아 먹이를 쫄 때의 느낌은 정말 야릇합니다. 멋쟁이 여인들이 길게 기르는 손톱의 매력도 알 것 같습니다.

조용한 나무그늘에서 막 도시락을 펼치는데 이름도 모를 산새 두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녀석들은 맡겨놓은 점심이라도 찾는 양 먹이를 달라고 졸라댑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완존 겁을 상실한’ 모양입니다.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자 서슴없이 물어갑니다. 덩치가 비둘기만큼이나 커서 먹이를 주는 쪽이 도리어 겁이 날 정돕니다.

“똑또그르르…” 이따금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기둥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갖가지 음조로 노래하는 새들의 합창에 장단이라도 맞추는 것 같습니다. 오색딱따구리는 비교적 흔하게 보이는 새인데 부끄럼은 무척 많은 편입니다. 장도리 같은 부리로 정신없이 나무기둥을 파고 있는 녀석에게 살그머니 다가가 보았습니다. 놈은 그간 공사 벌인 게 아까웠던지 날아가지는 않고 시선을 피해 살짝 나무 등걸 뒤로 숨었습니다. 뒤따라 나무를 돌아가니 녀석도 재빨리 방향을 틀어 몸을 감춥니다.

인적이 뜸한 산에 가면 꾀꼬리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호리병에다 입을 대고 부는 것처럼 우렁차고 아름다운 소립니다. 꽤 오래 산에 다니면서도 그 소리의 주인이 황금빛 몸매를 자랑하는 꾀꼬리임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입니다.

가까운 산야에서 들을 수 있는 새소리 가운데 휘파람새 소리는 참 귀엽습니다. “호르르르 호르락!” 마치 옥구슬이 구르다 어디엔가 부딪는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예전 학교 도서관에서 초여름 나른함에 못 이겨 책에 침을 질질 흘리다가 깜짝 놀라 깨도록 귓전을 울리던 바로 그 소리입니다. 몇 십 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던 그 귀여운 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낸 것도 최근입니다. 얼마 전에 산 이우신 교수의 책에 붙은 CD를 듣고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서울대에서 야생동물생태관리학을 연구한다는 이 교수는 광릉 숲의 새소리를 들으며 자란 새소리 전문가 유회상 씨, 새 그림 전문가 일본인 다니구치 다카시 씨와 함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새소리 백가지」라는 책을 냈습니다. 최근에 산 책 중에서는 가장 맘에 드는 책입니다. 가까운 도서관에 드나들면서부터는 좀처럼 책을 사지 않다가 결국 주머니를 털어야 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하며 제일 먼저 산 책은 등산 안내서였습니다. 산행에 나서기 전에 등산로를 확인해 보고, 다녀와서는 올라갔던 산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재미가 그만이었지요. 그 다음이 야생화 책입니다. 산에서 보고 온 꽃 이름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특이한 소리로 노래하는 새들의 이름이 궁금해졌습니다.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들려오지만 다른 새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음색과 음조를 가진 놈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고. 꾀꼬리, 휘파람새가 바로 그런 새였습니다. 한 번만 들어도 절대로 잊히지 않을 아름답고 독특한 소리를 가졌습니다.

또 하나, 봄부터 초여름까지 내내 “홀딱 벗고” 하며 노래하는 새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새길래 저런 희한한 소리를 내는 거지, 친구들과 내내 그 이름을 궁금해 했습니다. 역시 이우신 교수의 「우리 새소리」CD를 듣고서야 그 새가 ‘검은등뻐꾸기’임을 알게 됐습니다. 뻐꾸기처럼 높은 나무에서 망을 보다가 때까치나 멧새가 둥지를 비우면 슬쩍 알을 낳고 도망간다는데 노래 소리도 조금 망측합니다.

알려진 것처럼 뻐꾸기 새끼는 남의 둥지에서 부화됩니다. 그리고는 눈도 못 뜨고 털도 안 난 녀석이 집 주인의 알이나 새끼들을 모조리 둥지 밖으로 밀어냅니다. 달랑 혼자 남아서 의붓어미 덩치보다 더 커질 때까지 먹이를 받아먹다가 인사도 없이 줄행랑을 놓는답니다.

이 교수는 검은등뻐꾸기의 노래가 “카, 카, 카, 코”로도 들린다고 합니다. 가만 들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꾀꼬리 소리는 “히요, 호호, 호이오”, 휘파람새 소리는 “호-호호옷-,호홋케쿄” 하고 들린다고 설명합니다. 꾀꼬리 소리는 그럴 듯한데 휘파람새 소리는 영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뻐꾹” 하고 울어서 뻐꾸기라고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쿡쿠”하고 노래한대서 쿡쿠(Cuckoo)라고 부르지요. 우리는 수탉이 “꼬꼬댁-꼭” 하고 운다는데 그들은 “캇카닥-칵” 한답니다. 사는 곳에 따라, 사람에 따라 듣거나 흉내 내는 방식이 다르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귀엽게 지저귀며 노래하는 새들을 우리는 왜 하필 운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새 소리에 관한 한 노래한다는 서양 사람들 표현이 더 그럴 듯해 보입니다.

아직 산이나 들에서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지만 밀화부리라는 새가 있습니다. 밀랍처럼 노란빛이 도는 부리를 가져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책에서 본 녀석은 까만 머리, 까만 깃에 주황색을 띤 하얀 몸통, 노란 부리, 빨간 다리를 가졌는데 참새보다 조금 크고 귀엽습니다. CD로 들어본 밀화부리의 노래는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꼭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설득조로 노래합니다. 우거진 숲에 산다는데 올해엔 꼭 이 녀석과 한 번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산에 오르내리며 꽃 이름 하나, 새 이름 하나 알게 될 때마다 그만큼 부자가 되는 기분입니다. 산이 있고 숲이 있고 거기 물이 흐르고 꽃과 새와 짐승들이 있는 한 우리의 마음은 조금도 가난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을 지키는 일이 제집 재물을 지키는 일보다 결코 가볍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유엔이 지속적인 삼림 파괴로 인해 환경이 급변하면서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이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 결국엔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환경오염을 막는 원천적인 방법은 인간이 욕심을 홀딱 벗어버리는 것이겠지요. 탄소배출량 통제보다 인구의 통제, 인간 욕심의 통제가 더 시급한 과제로 보입니다.

한범성 (119.XXX.XXX.235)

모처럼의 라운딩에서 티샷이나 퍼팅을 망쳤을때 마다 "홀딱벗고"소리 때문이라고 푸념했는데 애꿎은 누명을 쓴 그 새가 검은등뻐꾸기였군요.정감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방석순님의 글을 자주 읽고 있는데 홋시 우리 사내 블러그(신신당부)에 올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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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1 09: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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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244)

골프 잘 안 되는 데는 수만 가지 핑계가 있다면서요? 친구들로부터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새지요?
저희 자유칼럼의 글은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이 보기를 희망합니다. 영리목적으로 운영되는 사이트가 아니라면 올려도 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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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2 10: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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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21.XXX.XXX.244)

점점 더 자연으로 귀의(?)하시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그나저나 요새 어느 산을 가거나 펜션이며, 산림욕장으로 너무 파괴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엊그제 남양주 축령산엘 갖다가 거의 능선 안부까지 올라와 나무 등걸들을 치우고 있는 포크레인을 보고 기절초풍할 뻔 했습니다. 지난 달엔 수리산 계곡 상단부까지 올라온 트랙터를 보고 시민들이 112에 신고하는 난리까지 피워댔지요. 정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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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11: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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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244)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지요^^ 그러나 무엇에든 너무 집착하는 건 역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즐기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요? 산을 마구잡이로 파 헤치는 것도 욕심 때문이겠지요.
여전히 들꽃 열심히 찍으시겠지요? 꽃 달력 책상머리에 두고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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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1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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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67)

세검정에서 가까운곳에 "백사실"이라는 숲이 있지요.
몇 미터 안되는 곳에 딱따구리가 집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숲이 울창하니,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던데요.
새가 주인이고 사람이 나그네인 곳이 숲인 듯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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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2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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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244)

딱따구리와 친구가 되어 보세요. 사람보다 더 호감이 가실 겁니다.
원고를 미리 웹마스터에게 보내고 어제 청계산엘 갔다가 정말 밀화부리 노래소리를 들었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게 정말 우리 곁에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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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11: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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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상 (119.XXX.XXX.235)

"홀딱 벗고"와 "카 카 카 코"?
직접 들어볼 수 있음 좋겠습니다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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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17: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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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244)

서울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난 산이라면 쉽게 들을 수 있답니다. 검단산, 예봉산에서도 들립니다. 어느 쪽 소리가 더 그럴듯한지 꼭 한 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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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11: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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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56)

산을 오르며 산새들과 벗하는 사이 정말 부자가 되신 것 축하합니다. 살면서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갈짓자로 세월을 누볐지만 이제 자연을 벗하고 자연에 애정을 쏟으며 참 사람의 길로 들어선다면 후회없는 어제 오늘이 될 것 같습니다. 헛된 욕심 잊고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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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15: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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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244)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 있길래 ~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 오지요.
이 노래 기억나시지요? 저는 나물 있는 산, 샘물은 아니어도 계곡 물소리가 정겨운 곳은 몰래 감추고 다닌답니다. 비난 받아도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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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11: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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