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시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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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이시마루

황경춘

2010년 05월 27일 (목) 00:50:34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향상됨에 따라 우리말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도 두드러지게 높아졌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로 부임하는 외국 외교관이나 신문기자 중에는 옛날에도 직업상 우리말을 어느 정도 익힌 뒤에 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일반 시민이 우리말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는 예는 없었습니다.

이 경향은 가까운 일본에서 특히 눈에 띕니다. 최근에 와서 일본인 친구가 보내는 새해 카드에 제대로 된 한글로 인사말을 써 보내는 이가 두세 명은 되고, 일본말 편지에 간단한 우리말 인사를 곁들여 써 보내는 친구도 대여섯은 넘습니다.

젊을 때 학교에서 정식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는 달리 사회에 나와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새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를 우리는 짐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상의 필요 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한 나라의 풍습이나 문화를 배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애를 쓰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가을 일본 남부에 있는 섬 시코쿠(四國)의 마쓰야마(松山)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제우정의모임(Friendship Force International)의 세계대회가 오키나와에서 열리고 뒤이어 홈스테이(homestay)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10명의 회원이 참가신청을 했는데 신종 독감 만연으로 대회는 취소되고 방문여행만 실시되었습니다.

원래 홈스테이 여행은 현지 언어를 몰라도 영어나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로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마련이지만, 일행 중 한 사람은 영어에도 자신이 없어 좀 고민하는 눈치였습니다. 이런 사정을 떠나기 전에 연락했더니 뜻밖에도 저쪽에서 그건 더욱 잘 되었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이유인즉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는 분이 있어 영어나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을 더욱 환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박4일의 체류기간 중 영어나 일본어를 전혀 쓰지 않는 기회를 갖게 되어 고맙다고 한 이 일본인 호스트는 서울의 연세(延世) 어학당에 유학한 분으로 그때부터 공부하고 있는 우리말을 활용할 기회가 별로 없어 좀 무료했던 참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치과의사였던 이시마루 아키라(石丸明) 씨는 연세 어학당의 학칙이 60세 넘은 학생은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57세 되는 해에 병원 문을 닫고 서울로 와 1년 반 동안 한글 공부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그는 방학 때만 고향에 가고, 부인도 남편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입학식과 졸업식 딱 두 번만 서울의 남편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결과 그의 우리말 실력은 누구나 놀랄 정도로 향상돼 우리를 위한 환송연에서는 일본말과 우리말을 혼자서 구사하며 거뜬히 사회를 볼 정도였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 마침 연세대 출신이 있었는데 그 분과는 “선배님, 선배님”하며 각별히 친해지고 언어문제로 걱정을 하던 자기 집 손님 허(許) 여사와는 곧장 서로 “누나” “아우” 하는 친숙한 사이가 되어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 상호 이해와 우정을 높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새삼 실감케 했습니다.

방문 일정이 끝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진 지 반년이 되는 지난 주, 이 이시마루 씨가 서울을 찾았습니다. 클럽 행사로 유렵 방문을 위해 떠나는 부인과는 별도로 한국을 찾은 그는 어학당 동기생과의 모임 약속이 있어 왔다고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어학당 전체의 큰 ‘홈커밍’ 행사도 있었던 모양이나 그는 따로 스위스의 취리히와 일본 오사카에서 오는 동기생과 세 사람이 개별적으로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것입니다.

그 동기생과의 모임 이틀 전에 서울에 도착한 이시마루 씨는 도착한 날 서울에 있는 우리 클럽 회원과 만난 뒤 다음 날은 충북 단양에 살고 있는 허 여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우리 클럽을 정식 방문 중이던 대만 클럽 회원 세 명도 합류한 일행이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단양으로 갔습니다. 이시마루 씨와 허 여사의 반년 만의 재회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단양 근교 소백산 기슭의 외딴 비탈길에 집을 지어 혼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이 ‘누나’는 이날을 위해 열 가지가 넘는 산채 요리와 대여섯 가지의 약술을 준비해 그야말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세 나라 회원들이 한국말,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섞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담소하는 바람에 예정했던 구인사 고수동굴 등 근처 관광은 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오기 직전에 캐나다 밴쿠버 클럽 손님을 받아 홈스테이 시켰다는 이시마루 씨는 영어와 한국말이 자꾸 뒤섞여 튀어 나와 본인은 물론 좌중을 당황케 하였습니다. 그의 영어는 우리말보다 못 했습니다. 그는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까지 들먹이며 우리들의 귀한 인연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란다며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저녁노을이 질 무렵 언덕 위의 하얀 집을 떠났습니다.

남의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우정을 쌓기 위한 순수한 뜻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이런 사람이 있는 반면, 말을 배우기는 해도 구수한 인정이나 문화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연세 어학당 출신이지만 가끔 우리 풍습을 비꼬거나 꼬집는 글로 우리의 빈축을 사는 일본 신문기자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금 일본에서도 대인기인 우리 비빔밥을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 비하하는 기사를 써 말썽이 나자 다시 쓴 해명 기사에서 겉으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음식을 숟가락으로 다 비벼 원 형태를 모르게 만드니 양두구육이라 했다며, 일본에서는 그 표현이 한국에서와 같은 사기란 나쁜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한문(漢文)에서 나온 표현인데 우리가 그 글의 진의(眞意)를 곡해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불교에서 나온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을 일본에서도 잘 씁니다. 그리고 ‘소매만 스쳐도 인연’이란 속담도 우리와 똑같은 정서로 사용합니다. 헤어지기 마련인 짧은 우리의 만남은 곧 끝나고 이시마루 씨는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아름답고 우정 어린 추억은 우리의 가슴을 오랫동안 흐뭇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김윤옥 (210.XXX.XXX.83)

'내 친구 이시마루' 씨나 우리 막걸리 예찬론자인 '야마시다'씨나 그들은사람,*人*의 뜻, 서로 사랑해야 사람이다.를 역설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 어께를 기대야 자연스런 사람 人의 모양에서 사람의 태생적 관계를 생각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야마시다씨가 우리의 벽촌 외진 곳까지 가서 맛본 막걸리는 술 따라주는 주모의 " 한 잔 주면 정 없지라!!" 하면서 두 잔 따르던 그 情깊음에 있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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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7 13: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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