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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말을 찾아서
임철순 2010년 06월 09일 (수) 00:34:30
이미 보도된 내용이지만, 1988년 시작된 영국의 ‘헤이 페스티벌(Hay festival)’이 올해 트위터(twitter) 쓰기대회를 추가했다고 합니다. 헌책방 거리로 유명한 영국 웨일스의 헤이온와이(Hay-on-Wye)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인구 1,500여 명의 작은 마을을 세계적 문학명소로 만들었습니다. 매년 5월이면 책 축제가 열리고, 연간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올해 축제는 5월 27일 시작됐습니다.

그런 축제가 트위터 쓰기를 추가한 것에서 날로 커져 가는 트위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트위터는 2006년 미국의 잭 도시, 에번 윌리엄스, 비즈 스톤 등이 공동 개발한 일종의 ‘미니 블로그’입니다. ‘지저귀다’라는 문자 그대로, 하고 싶은 말을 140자 내외의 짧은 문장으로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통해 올리고 받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ㆍSocial Network Service)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커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ㆍ2 지방선거를 통해 트위터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됐습니다. 특히 투표 독려를 위해 띄운 이른바 ‘인증샷’은 발상 자체가 아주 기발합니다.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 큰 힘을 발휘한 트위터는 선거 후에도 정치 감시ㆍ심판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선거 다음 날엔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심판한 게 아니라 국민이 민주당을 도구로 삼아 한나라당을 심판했다.”, “2년 후, 3년 후에는 20대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이런 트위터가 눈길을 끌었다고 합니다.

트위터는 문학의 인기와 권위를 회복하는 방안으로도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ㆍ대중예술에 치여 외면 당하는 문학을 트위터를 통해 되살리자는 취지입니다. 트위터와 리터러처(literatureㆍ문학)를 합친 ‘트위터러처(twitterature)’라는 말이 생겨났고, 미국 펭귄출판사는 지난해 말 단테 셰익스피어 스탕달 등의 작품을 140자 이내로 압축해 소개한 <트위터러처>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런 다이제스트 방식이 문학의 부활에 얼마나 기여할는지 모르지만, 트위터의 위력을 알게 해 주는 사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일로는 지난해 5월 런던에서 지하철 출퇴근자들을 대상으로 트위터 시 짓기 대회를 열면서 ‘위대한 영국의 여름’이라는 시제(詩題)를 내주고, “일본의 한 줄짜리 단시(短詩)인 하이쿠(俳句) 형식으로 쓰라”고 지정한 점입니다. 트위터는 이렇게 일본문학 홍보에 이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시조도 트위터로 널리 보급하지 못할 게 없다는 말들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시조는 그 길이에서 하이쿠보다 긴장과 압축미가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트위터에는 내용을 축약하고 강조하는 문학적 기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글이 짧을수록 메시지 전달 효과는 더 커지고 강해지지 않습니까?

나는 일본 문화에 하이쿠라는 게 있는 것이 가장 부럽습니다. 5ㆍ7ㆍ5의 17음(音)으로 이루어지는 하이쿠는 해학적이고 응축된 언어로 인정(人情)과 사물의 기미(機微)를 재치 있게 표현하는 문학형식입니다. 와카(和歌)와 함께 일본 시가문학의 큰 장르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이쿠 작가로 가장 유명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ㆍ1644~1694)의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가을은 깊은데 옆 방은 무엇 하는 사람인가’‘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나 이 매미 허물은’같은 작품은 하이쿠의 참 맛을 알게 해 주는 명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하이쿠를 짓듯이 짧은 문장으로 트위터를 이용하는 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도하는 팬들과의 실시간 소통은 문학의 저변 확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놓치면 안 될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점차 확산되고 있는 트위터 소통이 인터넷 악플과 같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교정하면서 사람들의 마음과 문장을 가다듬는 것을 도와 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글자를 줄이고 압축된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편한 대로 아무렇게나 생각 나는대로 댓글을 다는 것과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쿠를 짓는 자세는 그야말로 ‘한 줄도 너무 길다’(하이쿠 모음집의 제목)는 마음과 생각이지만, 정말이지 그렇게 한 줄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바로 이와 같은 한 줄의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여름의 정적을 노래한 바쇼의 작품에서는 ‘고요함이여’라는 말을 빼고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라고 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나아가 한국어에 더 가깝게 옮기려면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소리’ 이렇게 글자를 더 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매미 울음이 바위에 스며든다는 말만으로도 한여름의 적막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이지,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모든 이들에게 잊히지 않을 말 한 줄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말을 찾는 일이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모두 가치 있고 보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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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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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24)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어렵게 쓴 詩를 보여주면 무자비하게 여기저기 쳐냅니다.아깝지만 참고 다시보면 전 보다 더 선명해 지는 걸 어쩌겠습니까? '한 줄도 너무 길다'는 류시화의 하이쿠 모음집 처럼.
저녁 달빛 아래
달팽이가
허리까지 옷을 벗었다._이싸_

날마다 주필님의 이런글만 읽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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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00: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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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어떤 모임인지 모르지만 무자비하게 군더더기를 쳐내 주는 그 분들은 정말 고마운 분들이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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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7 09: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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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트위터를 이용하여 나의 마음을 남에게 보내는 시대가 온 것인가요?
좋은 시대인 것은 틀림없는데 우리 나이가 트위터를 이용하기에 너무 많은 것이라고 하면 창피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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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18: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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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그런 거 아직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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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3 17: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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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25)
하이쿠는 멋스러워 연애용 인 듯 싶네요.(음미하기 좋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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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14: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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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아 (211.XXX.XXX.129)
짧고 강한 메세지... 저도 추구하는 바이지만, 어찌보면 약간 투박하고 그리 강하지 않더라도 다 읽고 나면 두고두고 마음을 적시는 글도 '참 좋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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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13: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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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211.XXX.XXX.129)
촌평,하이쿠,트위터...시대를 넘어 공간을 넘어 인간의 생활은 비슷한 형태로 옮겨다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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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09: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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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청봉 (116.XXX.XXX.192)
압축과 생략으로 간결한 문장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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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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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 (59.XXX.XXX.151)
공감합니다.

그러나 시상 뜨는 말씀을 하기엔 너무 젊으신 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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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08: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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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개찰의 법칙, 잊으셨남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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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13: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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