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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애
유능화 2010년 06월 15일 (화) 00:16:29
제 병원을 자주 찾아오는 분들 중에 K 선생님이 계십니다. 의대 출신은 아니지만 같은 대학교 출신이기에 K 선배님이라고 부릅니다. K 선배님은 왕년에 중앙 일간신문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으로 지금도 틈틈이 토의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하시기도 합니다.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지식욕도 대단하신 분입니다.

선배님의 최대 고민은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사모님의 통증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미국에 사는 따님이 왔을 때 사모님은 “날 좀 죽여 달라”고 할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K 선배님이 병원으로 오시더니 인터넷에서 손수 찾아낸 글을 제게 주셨습니다.

제목이 ‘Pain in Parkinson's disease(파킨슨 병에 있어서의 통증)’, 미국 컬럼비아 의대의 블레어 포드 박사가 쓴 논문이었습니다. 평소 자주 가시던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아무리 아내의 고통을 호소해도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웹 서핑을 통하여 파킨슨 환자의 통증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글을 손수 찾아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통증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시다가 궁리 끝에 해내신 작업이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마침 제가 친구 모친의 극심한 통증을 해결한 약이 생각나서 같은 처방을 해 드렸습니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패치(먹거나 마시지 않고 피부에 붙이는 방식의 약)인데 보통 암 환자의 말기 통증 치료에 사용하는 약제입니다. 한 번 사용하면 3일 정도 유효합니다. 먹는 약이나 주사가 아니고 패치이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편리합니다.

아내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력감, 날로 증세가 조금씩 악화되어 가는 데 따른 불안감, 병 간호로 인한 피로감이 선배님을 힘들게 합니다. 힘든 현실이 선배님의 애절하고 간절한 눈빛을 통하여 나타날 때마다 제 가슴도 메어짐을 느낍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부부가 함께 골프를 즐기던 내외였습니다. 이제는 사모님이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시기 때문에 생활의 양상이 180도 바뀌었고 선배님도 갑자기 변한 삶의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애쓰시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안타깝습니다.

부부 가운데 누군가가 노후에 병이 들면 다른 한 편이 간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10년 정도 기니까 아내가 남편을 간호할 확률이 퍽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간호하는 경우를 저의 아버지를 통해서도 봅니다. 신부전증을 앓고 계신 저의 어머니를 아버지가 열심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보살피십니다. 아버지의 세심한 관찰력이 없었다면 벌써 세상을 뜨실 뻔한 어머니십니다.

K 선배님과 저의 아버지를 통하여 노년의 진실된 부부애를 보게 됩니다. 반세기 이상 같이 살아오면서 미운정과 고운정이 합쳐져 승화된 부부애가 보살피는 분과 보살핌을 받는 분의 삶의 끈을 더욱 단단하게 잡아 묶습니다. 이 시간 현재, 병중인 아내를 보살피는 모든 남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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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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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142)
글 잘 읽었습니다. 원수네, 악수네 해도 나중에는 부부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옆에 있는 이 사람, 보기만 해도 가엾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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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18: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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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112.XXX.XXX.232)
잘 읽었습니다. 집안에 오랫동안 구완이 필요한 환자가 있으면 참으로 고통스럽지요. 사람이 안 아플수야 없겠지만 살아가면서 겪지 말아야 할 고통은 없는 삶이었으면 합니다.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아서 글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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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09: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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