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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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남과 북

방석순

2010년 06월 18일 (금) 00:16:17

시계의 아침 경보를 3시 반에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3시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북한과 브라질의 월드컵 경기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TV 화면에서는 막 경기에 임할 양 팀 선수들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곧 이어 그라운드에 양국 국기가 펼쳐지고 국가가 연주되었습니다. 거기, 꿈에 그리던 월드컵 본선 경기장에 서서 홀로 눈물을 흘리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보기 드문 광경의 주인공은 정대세(鄭大世), 재일교포 3세, 분단된 조국의 반편인 북한 대표로 월드컵 예선의 험난한 길을 뚫었던 선수입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상대 위에서 우리의 피겨 여왕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흘리던 눈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정대세의 뜻하지 않은 눈물에 가슴이 쩌릿해졌습니다. 너무도 못난 나라에서 태어나 굴욕을 안겨준 나라에서 차별받으며 자란 교포 3세. 그나마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둘로 갈라져 서로를 가장 미워하고 반목하는 두 반쪽의 한 쪽 대표로 나선 월드컵대회. 정대세가 마음속 깊이 묻고 지냈을 설움과 한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기분이었습니다.

브라질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축구 최강팀입니다. 월드컵이 시작된 이래 19회 전 대회 본선에 출전하면서 가장 많은 5회 우승을 기록했고 이번 남아공 대회서도 당연히 우승후보입니다. 대회 직전 국제축구연맹(FIFA)이 국가대표팀 간 전적을 토대로 매긴 세계랭킹에서도 당당 1위입니다. 반면 북한은 FIFA 랭킹 105위, 이번 대회에 출전한 32개팀 가운데 꼴찌입니다.

브라질이 과연 북한에 몇 골이나 넣을 수 있을까, 그게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꺼리였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많이 달랐습니다. 브라질의 현란한 드리블도 송곳 패스도 다부지고 질서정연한 북한의 수비 앞에서 겉돌기만 했습니다. 정대세를 앞세운 북한의 역습이 오히려 매의 부리처럼 매서웠습니다.

비록 2-1로 지긴 했지만 북한의 플레이는 침착했고 선수들의 자세는 당당했습니다. 정대세의 헤딩 도움으로 지윤남이 성공시킨 만회골은 박지성의 골 못지않은 걸작이었습니다. 브라질을 상대로 또 어떤 팀이 그런 멋진 골을 넣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구촌을 들뜨게 하는 월드컵에 남북이 나란히 출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했으나 한 달 여행 끝에 경기 당일에야 현지에 도착해 당시 최강팀이던 헝가리에 9-0, 터키에 7-0으로 지고 돌아왔습니다. 북한은 1966년 처음 출전한 영국 월드컵에서 유럽의 강팀 이탈리아를 1-0으로 물리치고 8강까지 진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포르투갈의 걸출한 스타 에우제비우에게 연속 세 골을 허용해 5-3으로 역전패했지만 이 경기서도 북한은 경기 시작 1분 만에 첫 골을 넣으며 3-0으로 앞서나가 상대의 간담을 서늘케 했었지요.

한국이 32년 만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두 번째 출전했을 때 외국 취재기자들 가운데는 1966년의 북한과 혼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북한의 플레이가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지요. 멕시코대회 이후에도 한국은 매 대회 지역예선을 통과해 이번 대회까지 연속 7회째, 통산으로는 8회째 출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최다 기록입니다. 북한으로서는 1966년 이후 44년 만에 두 번째 본선 진출입니다.

남과 북, 모두 출발은 좋았습니다. 한국은 유럽선수권대회 우승팀 그리스를 2-0으로 통쾌하게 제압했습니다. 북한은 최강 브라질에 선전, 오히려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이제부터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2차전에서 세계적인 골잡이들이 즐비한 아르헨티나와 열심히 싸웠으나 어정쩡한 골, 석연찮은 골을 허용하며 아쉽게 4-1로 무너졌습니다. 남은 경기서 아프리카 최고 전력의 나이지리아를 넘어야 합니다. ‘죽음의 조’에 편성됐다는 북한은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와 싸워야 합니다. 두 팀 모두 16강 진출을 장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16강이 아닌들 어떻습니까. 월드컵은 지구촌의 한바탕 축제일 뿐입니다. 국력을 과시하는 정치무대가 아닙니다. 본선에 나아가 세계 축구 강호들과 어깨를 겨뤄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지역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와 호흡하고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발전의 자극과 계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남북이 힘을 모으면 훨씬 강해질 텐데… 그런 기대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예전에 여러 번 경험해본 일입니다. 또 우리는 정치 상황이 좋지 않아 두 편으로 나뉘어 참가하지만 영국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 네 팀으로 쪼개어 출전합니다. FIFA가 축구 종가에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4개 축구협회를 인정한 덕입니다. 그러나 4개팀 전적을 살펴보면 한 팀으로 뭉쳐 나와도 지금 이상의 성적은 얻기 어려워 보입니다.

남북의 경우엔 정치적 타협에 의한 단일팀 구상보다는 오히려 남과 북의 잦은 교류, 북의 빈번한 국제무대 외출이 다가올 장래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이 폐쇄와 고립에서 벗어나는 길도, 외부의 충격을 줄이는 길도 다른 어떤 분야에서보다 스포츠에서 찾을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1971년 미국 탁구선수들이 처음 중국 국경을 넘은 것을 계기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양국은 마침내 교류의 물꼬를 텄습니다. 이 핑퐁외교가 거대 인구와 영토와 잠재력을 가진 중국이 죽(竹)의 장막을 걷고 개혁 개방의 길을 찾아 오늘날 미국과 함께 슈퍼 파워의지위에 오르는 실마리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남북은 1990년 축구팀이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처음 교류전을 열었고 1991년에는 세계탁구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단일팀을 출전시키는 발전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북핵으로 인한 대립과 계속된 긴장상태로 스포츠 교류마저 올 스톱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북이 보다 쉽게 마음을 열고 만날 수 있는 장은 스포츠 무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발걸음이 더뎌도 역시 스포츠에서 또 다시 남북 대화의 창이 열리고, 언젠가는 북이 빗장을 풀어 세계와의 교류의 길을 틀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방석순 (121.XXX.XXX.244)

네, 큰 착각을 일으켰군요. 죄송합니다. 2002년 대회에는 한국, 일본이 개최국으로 자동출전권을 얻었고 중국이 아시아지역 예선을 통과해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했었습니다. 지적에 감사드리며 본문을 고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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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1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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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jk (210.XXX.XXX.158)

2002년에 중국이 출전했던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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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8 22: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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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27)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자신의 존재에 흔들리는 정체성을 갖고 산다고 합니다.
살기 위한 방법으로 연고지를 택하고(일본인,민단,조총련) 한반도를 지켜 보지요.
순수한 교류로써 포용해야 겠지요.
재일교포 세계 역시 우리 정부가 보듬어야 할 지대라고 생각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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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8 11: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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