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심(軍心) 전선(戰線) 이상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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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심(軍心) 전선(戰線) 이상 없나

김홍묵

2010년 06월 24일 (목) 08:38:41

인류 역사상 제1의 부자, 석유왕 존 록펠러(John David Rockefeller, 1839~1937). 그의 일생은 극단적인 평가가 교차하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를 “자유경쟁을 통한 보편적 행복이라는 꿈을 짓밟은 사람”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반면 윈스턴 처칠은 “의학 연구를 위한 기부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한 사람”이라고 한껏 추켜세웠습니다.

록펠러는 10대 후반부터 잡화상 운송업을 시작해 악명 높은 독점기업 스탠더드 오일을 일으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경제지 포브스가 2008년 말 기준으로 환산한 그의 재산은 3,183억 달러. 오늘날 최고 부자로 꼽혀 온 빌 게이츠의 재산은 1,010억 달러로 역대 20위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록펠러가 세계적 거부가 된 배경에는 아버지 빌의 ‘거짓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부의 제국 록펠러」를 쓴 론 처노는 기인에 가까운 빌의 행적을 소개했습니다. 존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가 받아줄 테니 높은 의자에서 뛰어내리라고 아들을 부추기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받아줄 듯 팔을 내밀고 있다가 내려버리는 바람에 아들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빌은 아들에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전부터 기억하라고 했지.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믿어선 안 돼. 이 아빠마저도 말이야.” 뒷날 아들 존은 아버지가 교육 목적으로 그랬다고 아버지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철저하게 감추고 남들이 언급하는 것조차 막았다고 합니다.

막대한 부를 자선과 기부로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말년의 록펠러는 긍정적 평판을 받았습니다. 1890년 시카고대학 설립을 시작으로 그는 록펠러재단, 일반 교육재단, 록펠러 의학연구소 등을 차례로 설립했습니다. 후손들도 뉴욕 중심가에 록펠러센터와 뉴욕 현대미술관을 지었으며, UN본부를 위한 땅을 희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의 축적 과정에서 그는 아버지의 충격적인 ‘거짓말 교육’에 충실한 나머지 ‘무자비하다’ ‘비정하다’는 꼬리표를 사후에까지 달고 다녔습니다. 1882년 미국 내 정유 산업의 95%를 지배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1911년 반 트러스트법 위반으로 해체될 때까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혹독하게 오일머니를 끌어 모았습니다. 비록 정승처럼 썼지만 개같이 돈을 번 것입니다.

개인과 가족간의 거짓말보다 조직 집단 내부의 거짓말은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군에서 거짓말이 자행돼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도 46명의 생령들이 수장된 마당에 천안함 침몰 원인을 왜곡 보고함으로써 군 당국과 정부를 허둥대게 하고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지난 3월 26일 밤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천안함으로부터 “어뢰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급기관인 해군 작전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또 천안함 인근 해상에 출동한 속초함이 미확인 물체를 확인, 천안함을 공격하고 도주하는 북한의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도 “상부에는 새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감사원 발표입니다.

결과는 군의 권위를 여지없이 떨어뜨렸고 국방예산마저 삭감 당하는 굴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측이 선제공격을 하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게 생겼다.” 지난 5월 26일 밤 전남 여수의 한 고교생이 퍼뜨린 유언비어는 인터넷을 통해 불과 35분 만에 전국에 퍼졌다고 합니다. 여당의 ‘북풍’에 대한 달콤한 기대를 일거에 쓸어버린 풍파였습니다. 가공할 거짓말이었습니다.

최전방의 한 병사는 유언비어를 전해 듣고 “엄마 전쟁이 난다고 하는데 겁이 나서 못 살겠어”라고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즉시 아들의 부대장에게 사실 여부를 따지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합니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게 학부모뿐만 아니라 군부모로까지 확산된 증좌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육군 장성(소장)이 북한에 국군의 야전교범과 작전계획을 유출한 사실이 밝혀져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중부전선 최전방 군단 참모장 직책(2005~2007년)을 맡고 있던 이 장군은 북한 공작원에게 우리 군의 중요 전술과 무기운영 방법을 설명한 야전교범 책자를 통째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비한 한미 연합사의 핵심 방어작전계획(작계 5027-04)도 구두로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전략 전술이 속속 노출된 우리 군은 이미 북한 정권의 눈에 오합지졸이나 눈먼 군대로 비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북측은 ‘황장엽 암살조’를 내려 보내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거듭 큰 소리를 치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전쟁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장담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어도 될까요.
군은 특성상 거짓말을 잘 활용하는 조직입니다. 장병의 생사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데는 옳고 그름ㆍ좋고 나쁨을 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십만 명을 100만 대군으로 부풀리고, 지고 있는 전투도 이기고 있다고 하는 등의 거짓말입니다. 6ㆍ25때 ‘서울 사수(死守)’를 호언했던 이승만 정부의 한강철교 폭파나,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거짓 ‘옥쇄 명령’은 수백 수천의 인명을 지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군의 허위 선전은 적군과 적지 주민에게만 허용되는 게 상식입니다. 그것이 자체 보고라인이나 지휘체계에 적용된다면 그 조직은 자중지란과 자멸로 치닫게 마련입니다. 관료제도나 기업, 금융 보험업계의 속임수들도 전 세계를 휘청거리게 하는 판인데, 국가의 안위와 존망이 걸린 전쟁(군전시상태를 포함해)에서의 왜곡 허위보고는 훨씬 더 심각하고 참혹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군인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존재하는 특수 집단입니다. 정책은 타협 양보할 수 있어도 안보는 포기 위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군대가 전쟁공포에 휩싸여 전의가 꺾이고, 정치적 매너리즘에 물들어 지휘 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전쟁에 지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온 국민이 도탄에 빠집니다.

내일이면 우리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습니다. 참상도 영웅도 비분도 잊혀 가고 있지만,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