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여행? 불편해요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황경춘 오솔길

단체여행? 불편해요

황경춘

2010년 06월 29일 (화) 01:28:44

원래 여행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취미를 묻는 설문에는 거의 예외 없이 ‘여행’을 빠뜨리지 않고 들었습니다. “귀여운 자식엔 여행을 시켜라”고 하는 이웃나라 속담에는 상당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나 독서 등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국내외 여행에서 터득한 경험을 저 자신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의 경우, 돈과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일정부터 본인이 작성하여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끼리 떠나는 여행이 가장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에 따른 개인적 희생이나 고생도 많았지만 이렇게 해서 떠나는 여행에서 얻는 것이 준비과정이나 여행 도중의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오랫동안 모은 용돈 2천만 원으로 혼자서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듣고 정말 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 귀국 후에 개인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을 실천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여행사나 자신이 관계하는 모임 등에서 마련하는 여행에 참가하면 우선 편리합니다. 시간과 돈도 절약되지요. 젊을 때엔 이 편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차츰 여러 가지 불편을 느끼면서 여행은 역시 개인적으로 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단체여행에 참가하면 우선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합니다. 일행과 행동을 같이해야 하는 제약이 젊었을 때와는 달리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시간에 구속된다는 것에 점점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체여행이므로 약간의 개인적 제약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터무니없는 불쾌감마저 여행기간 내내 참고 지내려면 문자 그대로 돈 주고 마음의 고생까지 사게 됩니다.

흔히 교통사고 현장의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서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시비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승자다”고 하는 빈정대는 말을 잘 듣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치라고나 할까요, 어느 모임에서나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왕이고 토론회나 토크쇼에서 사회자가 독선적으로 분위기를 좌우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와 비슷한 경험을 단체여행에서 겪는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소속하는 모임의 친목여행에서 마이크를 잡은 간사가 저지르는 횡포는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싼 돈 내고 참가한 단체여행의 안내원의 상식에 벗어난 행동은 참기 힘듭니다.

벌써 15년 가까이 된 옛 이야기입니다. 라이온스 클럽을 같이하던 친구들끼리 호주 관광여행을 했습니다. 방문지에 관한 예비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분들이고 여행사가 준 책자로 새로운 정보도 익히고 해서 모처럼의 먼 나라 관광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생각으로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의 이런 꿈은 현지 한국인 안내원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원래 안내원의 역할이란 자기가 준비한 관광지 설명과 특별한 유의사항을 전달한 뒤 손님의 질문에 적절하게 답해 주면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손님을 마치 유치원생 다루듯 과잉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드니에서의 이 관광안내원이 바로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예를 들어 호주의 면적, 인구 및 기후를 설명할 때 이 아가씨는 어린 학생을 대하듯 “아시는 분 계세요”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반응이 없으면 “안 계세요”라고 다그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호주의 기후는 지구의 북반부에 위치한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입니다”라고 설명하면 되지 면접시험 때처럼 정면으로 질문을 하면 아주 어색해지기 마련이지요. 어린 학생 모양 “네네, 저요”하고 손들어 말할 손님은 별로 많지 않지요. 오랜 습관으로 이 관광버스의 앞 좌석을 차지한 저는 몇 개의 질문은 안내원이 어색한 기분을 가지지 않도록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었습니다만 너무 집요한 태도에 넌지시 불쾌감을 전달했습니다.

하루는 좀 먼 거리를 가면서 느닷없이 호주 정치 이야기를 끄집어내 때마침 진행 중인 선거운동에 언급하고 자기는 일 잘하는 집권 노동당의 승리를 믿고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정치문제에까지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것은 아니지만 저는 출국 전 직업상 우연히 읽은 어느 외신기사를 인용하며 안내원과는 다른 의견이라고 말했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그곳의 정치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만 그때는 그 정도로 해 끝났습니다. 귀국 후 얼마 있다가 장기 집권해온 노동당이 보수당에 참패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이 안내원의 실망하는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좀 이야기는 다르지만 방송사나 시민단체의 교양 프로그램에 나오는 강사들 중에도 이 안내양 비슷하게 청중을 긴장시키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하고 넘어가면 좋을 대목에서 갑자기 무엇무엇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하고 불쑥 질문을 던질 때 무의식적으로 저도 긴장합니다. 학교 강의 때 학생들을 긴장시킬 필요는 있겠지만 공개된 교양강좌에서 불쑥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좀 어떨까 하고 걱정하는 것은 역시 노파심 때문일까요.

일상생활의 여러 구속에서 잠시나마 해방되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가벼운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여행 재미의 하나가 아닐까요. 어려운 병의 회복기에 있는 환자에게 여행을 권하는 의사들의 마음을 짐작합니다. 그러니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을 위험성이 있는 단체여행은 되도록 피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