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의 정신만은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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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의 정신만은 살려야

임종건

2010년 07월 05일 (월) 00:33:33

세종시 수정안이 6월 말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부결됨으로써 지난 10개월여 동안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국민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세종시 민관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사람으로 착잡한 감회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민간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행정부의 절반을 쪼개어 지방으로 옮기는 세종시의 원안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종시는 한마디로 현재의 과천 청사에다 총리실을 얹어서 충남 연기 공주로 옮기자는 구상입니다. 정부 청사를 과천으로 옮긴 결과가 서울과 지역의 균형발전이나 서울의 과밀해소에 기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과천 청사를 충청 지역으로 옮긴다 해서 그런 효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세종시 논란의 와중에서 과천 시민들의 대응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들은 무덤덤하게 논의를 지켜보았습니다. 가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라는 듯이. 과천 청사가 옮겨 갈 경우 과천시의 발전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주민들 같지 않았습니다. 어느 면에선 과천 주민들은 옮겨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차분하게 논의돼야 할 문제였는데 정치공학으로 덧칠을 해서 온 나라가 법석을 떨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세종시위원회에서 저는 일관되게 절충안을 주장했습니다. 정부 부처가 하나도 가지 않는 수정안보다는 세종시의 정신에 가장 부합되는 몇 개 부처를 보내자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가 행정중심복합(행복)도시의 애칭을 ‘세종시’로 붙여 줬을 때부터 이 도시가 세종대왕의 정신을 구현하는 도시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종은 대한민국 정체성의 본질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의 애민정신, 창조정신의 소산인 한글은 숱한 외침 속에서도 우리의 얼을 지켜내 한국의 오늘을 있게 한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세종 임금의 이름에 걸맞는 도시라면 무엇보다 세종 정신의 정수(精髓)인 우리 민족에게 내재된 창의력을 발양하는 역할을 하는 도시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육과학과 문화예술은 창의성을 발양케 함에 있어 가장 큰 매개체이지요.

이 도시는 앞으로 최소 100년 동안 한국을 먹여 살릴 과학 기술을 개발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이뤄지는 기술개발이 한국을 넘어 인류의 후생에 기여할 수도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MS)나 구글 같은 기업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것의 실현 가능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세종시는 그런 포부와 기개로 건설돼야 할 도시임을 강조했습니다. 정부 안에 그 기능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거나 또 도와야 할 부처가 있다면 같이 가게 하는 것이 세종시의 완성도와 기능도를 높이는 데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도시를 건설할 수만 있다면 전 부처가 옮겨가도 무방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수도이전은 위헌으로 판결됐으므로 행정부만 반으로 쪼개어 보내자고 한 것인데, 그럴 경우 행정의 비능률이 명확해 보이고, 그런 영구적 비능률은 세종 정신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가장 적합한 몇 개 부처를 이전하는 선에서 절충을 하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럴 경우 정부의 신뢰는 덜 손상 당하고 지역민으로부터의 신뢰는 좀 더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종시위원회에서는 부처 분할의 비능률, 일부 부처의 이전은 자기모순이라는 주장이 다수를 이뤄 결국 부처이전 없는 세종시로 결론을 냈던 것입니다.

저는 당시 국회와 정치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 그런 방식의 절충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붙여서 수정안에 찬동했습니다. 그것이 무망한 기대일 것으로 예상은 했으나 현실은 예상보다 더했습니다. 여당 내에서도 박근혜 의원 지지파나 중립지대에 있는 의원들이 절충안을 비쳤지만 박 의원은 완강한 원칙론으로 실질에 대한 논의의 싹을 잘랐습니다. 본회의 표결에 앞서 박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선 것은 그 중에서도 하일라이트였습니다.

여당의 주류측에서 ‘국익보다 명분에 봉사한 의원들의 이름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것을 본회의 표결 명분으로 삼았지만 내심으로는 여야나 계파를 떠나 의원들의 자유의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박 의원의 반대토론은 거기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헌정사는 여당의 무리수와 야당의 발목잡기로 점철돼 있다지만 여당의 비주류가 야당과 힘을 합쳐 정부의 정책을 좌초시킨 예는 많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세종시 수정안의 부결처리는 의회주의의 발전인지 퇴보인지 가늠키 힘든 희대의 사건입니다. 그 책임이 누구에 있느냐를 따지기 이전의 문제입니다.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 야당의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예가 몇 번 있지만 대부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빚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두 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1969년 4월 8일의 공화당 내 항명사건입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3선개헌을 통해 영구 집권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공화당 내의 비주류는 3선개헌에 반대했고, 제2인자의 위치에 있던 김종필의원이 자의건 타의건 그 중심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 무렵 야당인 신민당이 권오병 문교 장관의 국회 경시 발언을 이유로 해임건의안을 냈습니다. 공화당의 비주류계 의원들은 이 사건을 이용해 박정희를 견제하고자 했고, 그런 낌새를 알아 챈 박정희는 김진만 원내 총무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결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표결 결과 40여 명의 공화당 의원이 신민당에 동조해 가결됐습니다. 휴가 중이던 박정희는 급거 상경해 항명의원들을 색출해 고문하고, 제명했습니다. 그 때 박정희가 한 말은 “당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당을 떠나라”였습니다.

여하튼 세종시 수정안 부결 이후 플러스 알파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육 과학 기업도시’라는 수정안의 정신은 부처 이전 여부와 무관하게 살려야 합니다. 또 원안대로 추진하더라도 비능률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정부 국회 지역민 간의 흉금을 턴 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과학과 실용을 중시한 세종 임금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원안대로 관공서와 공무원 아파트만 들어선 유령도시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식의 발언은 수정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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