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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더라
임철순 2010년 07월 12일 (월) 00:57:16
한 달 동안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도 끝났습니다. 한국은 16강에 오르긴 했지만 좀 성에 차지 않는 기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여름 휴가는 시작됐는데, 아직 길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엇갈리는 장마와 폭염으로 심신이 자꾸 지치는 요즘, 뭐 좀 즐거운 일이 또 없을까? 이번 글은 이런 가벼운 기분에서 순전히 웃자고 쓰는 것입니다. 소재는 주로 귀로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글을 읽고도 웃지 않으면 당연히 날씨 탓이 아니라 쓴 사람의 능력과 재치가 부족한 탓입니다.

어느 회사 사우회보의 인터뷰 기사에 서양화가 이마동(李馬銅ㆍ1906~1981)이 임화동이라고 잘못 나갔습니다. 녹음한 내용을 옮겨 적던 기자가 잘못 알아들은 탓입니다. 이마동은 우리나라 최초로 동경대 서양화과를 나온 선구적 화가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임화동이거나 임아동일 수 있습니다. ‘봄날은 간다’로 유명한 가수 백설희씨가 올해 5월 타계했을 때, 어떤 이들은 전영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고, 나이가 더 어린 세대는 6인조 여성가수 티아라의 멤버인 전보람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로 알았으니 백설희를 백서리라고 우기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수 있습니다.

‘임화동’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0여 년도 더 전에 어느 신문의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가 공연 기사를 쓰면서 오페라 아리아의 제목을 ‘어떤 게 있나’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클래식에 관심과 지식이 별로 없는 편이었는데, 새로 발굴된 아리아인가 했더니 푸치니의 <나비부인>에 나오는 ‘어떤 개인 날’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선배들은 그에게 “야, 오늘 쓸 기사는 어떤 게 있냐?”하고 물으며 놀리곤 했습니다.

어느 국문학자가 어린 시절 성당에서 ‘천주의 고양이며 인자하신 예수’라는 성가를 부를 때마다 무슨 말인지 몰라 할머니께 여쭈어 본 일이 있답니다. 난처해진 할머니는 “아, 천주께서 고양이를 좋아하신다 그 말이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어린 생각에도 그게 아니라 아마도 ‘천주의 고향’을 잘못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라서 알고 보니 천주의 고양은 羔羊, 즉 새끼양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羔는 ‘새끼양 고’자입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어린 양, 인자하신 예수”로 고쳐 부르고 있습니다.

시인 김춘수의 손녀는 대학 기말고사에서 ‘서정주의 소설의 특징을 논하라’는 문제를 받고, ‘아니, 서정주 시인이 언제 소설을 썼나’하고 놀라서 고민 고민한 끝에 “서정주 시인이 정말 소설까지 쓰셨나요?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라고 엉뚱한 답을 써 냈다고 합니다. 서정주의(抒情主義), 즉 lyricism소설의 특징을 말하라는 문제를 오해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녀는 대시인의 손녀가 그게 뭐냐고 두고두고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서정주의’를 검색하면 거의 전부 徐廷柱의 작품에 관한 자료만 나올 정도이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나도 언젠가 나태주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 카페에 썼더니 “아니 이게 무슨 나태주의(懶怠主義) 시냐?”고 한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다. 내가 말한 나태주는 1945년에 태어난 충남 공주의 시인 羅泰柱입니다. 나태주의라는 게 뭘 하는 건지, 뭘 안 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 이름이 서정주나 나태주처럼 무슨 무슨 이즘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미당 서정주가 젊었을 때, 절친한 김동리가 시를 써 가지고 와서 들어보라며 읽어 준 일이 있습니다.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이 대목에서 미당은 절창이라고 감탄하며 무릎을 쳤다고 합니다. 송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ㆍ1007~1072)는 남이 읊는 시가 좋으면 무릎을 치면서 “어디서 얻어왔느뇨?(何處得來)”라고 묻곤 했다는데, 서정주도 아마 그런 심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동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미당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 사람아,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이야.”라고 말하더랍니다. 꼬집히면 벙어리 아니라 귀머거리 장님 부처님 하느님 옥황상제님도 다 아플 것이고, 아프다 보면 울 수 있겠지요.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고 하면 시가 되지만, 신체적 충격 때문에 운다고 하면 평범한 산문일 뿐입니다. 미당은 그때 동리에게 “자네는 (시보다) 산문 쪽으로 가야겠네.”하고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소설을 쓴 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나중에 발표한 그의 시가 형편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동리는 소설가가 되더랍니다.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 생긴 에피소드의 압권은 ‘짚신 세 벌’입니다. 옛날 무식한 짚신장수가 큰 스님에게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큰 스님이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고 말해 주자 짚신 세 벌이라고 잘못 알아들은 그는 왜 짚신이 부처일까, 그것도 왜 하필 세 벌일까 이렇게 자나깨나 궁리하다가 어느 날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여하시불 즉심시불(如何是佛 卽心是佛), 어떤 게 부처님인가, 이 마음이 곧 부처님이지. 즉심시불은 시심시불(是心是佛) 즉심즉불(卽心卽佛)과 같은 말인데, 부처님을 어디 멀리서 찾지 말고 내 마음 속에서 찾으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어떤 할머니가 즉심시불이라는 말을 듣고 “짚세기가 불이라, 짚세기가 불이라”하고 외우며 다니고 짚신을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있지요. 석두(돌대가리)라는 스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그는 즉심시불이라는 노스님의 말에 큰 의문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짚신이 부처라는 말인가. 3년이 지난 어느 날 땔감을 잔뜩 지고 산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땔감이 나뒹굴고 짚신이 끊어졌습니다. 석두는 노스님에게 달려가 부처님이 뭔지 알았다고 소리쳤습니다. 뭐냐고 묻자 짚신 한 짝을 벗어 노스님의 머리를 내리치며 “내 짚신 끈이 끊어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노스님은 제자의 깨달음을 반기며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어떤 수행자가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지성으로 암송한 끝에 물 위를 걷는 신통력을 얻게 됐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이러면서 강 위를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한 구절이 잘못됐다고 알려 주어 고쳐 외우려다가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일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던데,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환자를 치료하던 사람이 틀린 부분을 지적 받고 고쳐 외우자 병을 고칠 수 없게 됐다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물에 빠지거나 병을 못 고치게 된 이유는 자구(字句)에 집착하는 바람에 몰입과 삼매(三昧)의 일심(一心)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를 얻는 데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 알아들은 말이라도 그 속에는 다 그 나름의 도가 있고 철리(哲理)와 필연이 있으니 공공의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남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억지로 고치고 가르치려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에나 무엇에나 다 도가 있고, 이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지 않습니까? 악의 없는 오해와 오독(誤讀)이 세상살이에는 오히려 즐거운 일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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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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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k (121.XXX.XXX.191)
글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의 내면을
엿보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타인의 맘을 이해하는 우리네 정서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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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0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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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55)
잠깐 장마가 그쳤는지 창밖은 온통 샛하얀 공기로 가득찼습니다. 진초록 나뭇잎이 간간히 팔랑대는 걸 보면 미풍이 조금 이는모양입니다. 이런 오후 선풍기 틀어놓고 이 글을 읽으며 맘껏 웃습니다. 글이 재미있어서 냐구요?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 행복해서 웃습니다.
...........................

처음 이글의 제목을 보고 언듯 생각난 詩 한 편을 보냅니다.

꽃은 피고 인자 우에 사꼬
문을 열면 능금밭 가득 능금꽃이 아찔하게 피어 있는
그 풍경 아득하게 바라보며 비명을 치는 노파
어깨 한쪽 맥없이 문설주로 무너진다
그 모습 힐끗 일별하던 네 살박이 손주놈이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중얼거리며 나자빠진다
꽃은 피고 인자 우에 사꼬

- 이중기(1957~)의 '꽃은 피고 인자 우에 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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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15: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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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꼬집히고 아파서 인자 우에 사꼬. ㅎㅎㅎ.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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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16:43:06
0 0
홍승철 (211.XXX.XXX.129)
세네갈에서 읽으니 더 새롭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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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09:08:27
0 0
김애양 (211.XXX.XXX.129)
정말 웃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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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09: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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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엔돌핀이 쏟아질 정도로 많이 웃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간의 오해와 오독은 에피소드 창출의 계기는 되겠지만 집단과 개인,집단과 집단, 위정자와 국민간의 오해는 망중한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요?
4대강이나 세종시,전시작전권 등에 관한 국민의 마음 오독과 오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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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5:36:35
0 0
양지원 (211.XXX.XXX.129)
제가 꽃을 가꿀수 있는집 논현동 아침은 예전에 사시던 어른들은 새개발지역으로 이주하시고 사무실로 탈 바꿈이 되어 교통혼잡을 이루는 곳으로 변해가는것이 안타까운 모습을 마주하는 때, ㅇ른아침 새들의 지저귐을 놓치지않고 짧은 대화를 하고 눈을뜨게 되는 요즘이었습니다. 잉크가 뭍어있는 편지통에 날아온 감사의 편지로 이제 그리 삭막하지 않음으로 하루 시작할것같은 좋은 예감입니다.깊은 감사 드리며~ 양지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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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3:25:42
0 0
차덕희 (121.XXX.XXX.221)
음력 초하룻날이지요.
가끔 있는 일입니다.
악의 없는 오해와 오독으로 어리둥절 할때 소리없이 웃지요.
좋은 법문 들은 날 같습니다.
저는 개신교도 이지만 공감하는 분 들도 많이 계실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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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3:09:52
0 0
임철순 (211.XXX.XXX.129)
그러고 보니 저는 불교, 천주교와 다 관계가 있는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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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3: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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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16.XXX.XXX.192)
이 글을 읽고 웃음이 안 나오고 마음속으로 느낌만 오니 쓰신 분의 탓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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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8: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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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잘못했습니다(의자 들고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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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3: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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