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 아라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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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아라뱃길

김영환

2010년 07월 16일 (금) 01:32:00

한국 최초의 벼 재배지라는 김포평야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들쭉날쭉 치솟는 아파트들이 철따라 옷을 갈아입던 들판을 삼켜버렸습니다. 수변도시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도로를 대지 삼아 치솟는 재건축 아닌 신도시 고층 아파트들을 볼라치면 후손들이 신도시라는 이름에 대해 뭘 생각할지 걱정됩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김포시인데, 관문인 김포공항 곁의 48번 국도는 십수년 전부터 공사판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굴포천을 가로질러 철판을 깔아놓은 복강판 다리 앞에는 교통신호등이 있어 비나 눈이 내리면 차를 세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운전자들은 이 미끄러운 철판길이 언제 사라지나 학수고대했을 것입니다.

그 ‘개고생’이 이제 끝나려는가 봅니다. 최근 이 복강판 다리 옆에 경인 아라뱃길(경인운하)을 가로지를 웅장한 새 교각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 동북쪽에선 지금 수십만 평 규모의 아라뱃길 김포터미널 공사가 한창입니다. 깊게 파헤치고 웅장한 구조물을 만드느라 야간에도 타워 크레인들의 불빛이 휘황합니다. 늦은 밤에도 쉴 새 없이 덤프트럭이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김포에서 서인천까지 18킬로미터를 폭 80미터의 물길로 잇는 경인 아라뱃길이 내년까지 완공됩니다.

그런데 최근 송영길 인천시장 등 한강 물길이 지나가는 민주당 소속 지자자치단체장들이 취임하기 직전 아라뱃길 전면 재검토룰 주장했다는 소식입니다. 어떻게 인천시장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송 시장은 아라뱃길이 지나가는 인천 계양구에서 3선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그는 18대 국회의원 선거 공약 다섯 가지 중 두 번째로 ‘경인운하 조기완공’을 내걸었습니다.

그는 공약에서 “고려시대 때부터 논의해온 경인운하를 조기에 완공하여 계양과 인천의 발전 계기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경부운하 찬반논란에 경인운하가 볼모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면서 ”서울과 서해가 연결되어 동북아 지역의 핵심도시 인천, 남북교류의 중심지 인천이 부상할 수 있다“고 사업효과도 설명했습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환경단체들로부터 낙선 운동의 위협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차점자보다 2,500여 표를 더 얻어 당선되었죠.

이렇게 주장했던 사람이 이제 경인운하는 문제가 많다면서 전면재검토를 주장하는 지자단체장들의 선두에 나섰습니다. 6·2선거의 민심이 경인운하 재검토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참 편리한 6·2 민심입니다. 6·2 선거는 뭐든 걸면 해당되는 만능이 아니죠. 그럼 시장의 길을 열어주고 국회의원을 만들어준 경인운하 조기완공 공약은 어디로 실종했나요? 시장 선거공약에는 경인운하 언급이 일언반구도 없었고 인천-당진-서산을 해저터널로 연결한다는 매우 황당한 공약이 들어있었습니다.

지금 정국은 4대강 정비를 반대하는 야당 등에 종교단체들도 가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한 일에 두 가지 결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망치려고 돈 들여 하는 대형 국가사업은 수도분할을 위한 세종시 같은 것 빼놓고는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경인 아라뱃길 공사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은 옳은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 발상은 13세기 고려 고종 때 최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중종 때에는 김안로가 다시 추진하려고 했죠.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800여 년 전 선조의 구상을 후손들이 실현하는 것은 멋진 일이죠.

그런데 이 나라의 지도를 바꾼 많은 대형 국책사업은 늘 야당 등의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많이 봉착해 왔습니다. DJ는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드러누워 반대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은 인천국제공항이 침하할 것이라는 맹랑한 주장을 펼쳐 반대했지만 인천국제공항은 5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으로 우뚝 솟았습니다. 그는 지금 4대강 정비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도롱뇽을 보호해야한다는 희한한 명분을 내세운 지율은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여 단식투쟁했지만 업무방해죄로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었죠.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도 만류하려고 나섰는데 6개월간 수천억원 대의 공사 지연 비용을 유발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수많은 소송으로 얼룩진 새만금 방조제 공사도 예외가 아니었죠. 그런 사람들이 수십조 원을 들여 2,000여 만 평을 깔아뭉개는 행정도시 삽질에는 왜 반대 안 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나는 압축성장을 거듭해온 우리나라는 남이 하지 않은 일을 많이 개척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창조의 질서’운운하면서 큰 강의 정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치산치수에 대해 뭘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환경을 내걸고 반대한다면 산 속에 절은 왜 짓는지 사람들이 물을 것입니다. 하천과 땅을 파서 물길을 잘 잡고 홍수를 예방하며 풍광을 가꾸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집요하게 정권을 공격하면서 반대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서울 쪽에서 공항고속도로나 공항철도를 타고 가다보면 오른쪽에 깊게 파인 홍수방지용 굴포천 수로가 보이죠. 이 수로와 약 4 킬로미터를 이으면 경인 아라뱃길이 됩니다. 아라뱃길의 현 공정은 30%선에 가깝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신이 과거에 뭘 주장했는지 싹 잊어버리고 ‘당이 결정하면 나는 따른다“는 집단적인 사고방식은 곤란합니다. 유권자들은 시시각각으로 표변하는 정치인들의 뭘 믿고 투표하라는 말인가요?

혹시 정부가 훌륭하게 국토를 가꿔 치적을 쌓아 국민의 지지를 더 많으면 ‘청계천 복원의 신화’가 다시 생겨나 좌파의 차기 집권에 손해가 되기 때문에 두려워서 그러는 것인가요? 공사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와 환경친화적인 건설은 별개 문제입니다.

세종시 수정안 표결 때 충남이 지역구인 이인제 의원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는 수도를 분할하는 행정도시법엔 반대표를 던졌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주의에 매몰되어 있을 때 이런 결기는 군계일학의 ‘아름다운 찬성’, ‘아름다운 반대’ 라고 봅니다. 국회의원들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존재이지 정당을 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정치인들은 지역이나 정파. 계파의 추악한 줄서기에서 벗어나 양심과 국익에 따라 스스로 판단할 때 훨씬 멋지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송영길 인천 시장도 공약한 대로 ‘경제수도 인천’을 앞당기려면 대대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내야 할 판입니다. 더구나 아라뱃길은 지방재정도 쓰지 않는 사업이죠. 그런 것도 찬성하지 않는다면 뭐가 가능할까요? 임기는 짧고 역사의 심판은 무한하다는 말을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