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지갑 속에 넣어 다니던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기로 했습니다. 얼굴사진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하게 뭉개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주민등록증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증명서입니다. 그러니 거기 붙은 사진도 정확히 그 사람의 것으로 확인되어야 하겠지요. 진작 주민등록증을 바꿨어야 했는데 누구 특별히 보자고 할 일도 없을 것 같아 벌써 몇 년째 미루어 온 일입니다.

예전 동회에서는 바로 디지털 카메라로 얼굴을 찍어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더니 요즘 주민센터에서는 본인이 증명사진을 가지고 와야 한답니다. 옛날 무슨 동사무소, 무슨 동회로 불리던 허름한 블록 건물들도 차츰 초현대식 건물로 바뀌더니 이젠 명칭도 주민센터로 세련되게(?) 바뀌어 있습니다.

전날 찍은 증명사진을 찾으러 간 사진관에서 우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엇! 이게 나예요?”
“왜요? 잘 나왔잖아요?”

“에이!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허! 이제껏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다시 찍어 드려요?”
“아니, 수정하기 전 원화(原畵)가 있을 거 아녜요?”
“사진 데이터 용량이 커서 수정한 것만 보관하거든요.”
“그래요? 그럼~ 생각 좀 해 볼게요.”

사진관 주인이 손님 비위맞추느라 포토샵으로 점 빼고 주름 뭉개고 애써 만들어 놓았지만 집에 와서 다시 들여다보아도 전혀 다른 사람 얼굴 같았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봤다가 엉뚱한 대답만 들었습니다.
“이거 아는 사람 같아?”
“아이구, 많이 마르고 늙었네.”
“이 사람! 뚱딴지같은 소릴 하구 있어. 얼굴이 허옇게 부어올랐는데.”

할 수 없이 이튿날 다시 사진관을 찾아갔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미안하지만 다시 찍어 주세요.”
사진관 주인은 다행히 별 말 없이 새로 찍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그 다음날 좀 더 늙어 보이긴 해도 제 얼굴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이제 사진은 누구나 손쉽게 찍고 수정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얼굴을 실제보다 예쁘고 젊게 만드는 성형수술쯤 일도 아닙니다. 아예 얼굴을 뚝 떼어다가 다른 몸에다 붙이는 외과수술도 가능해졌습니다.

예전 필름카메라 시절에도 소위 '리터치(retouch)'라 해서 사진사가 전문적인 기술로 사진 원본의 일그러진 부분에 손질을 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랑 얼굴사진 하나로 맞선을 대신하기도 하던 그때엔 요즘과 같은 사진 성형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9․11 테러 사건 이후로 지구촌 곳곳에서 테러 위협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공중 테러의 참사를 우려해 공항에서는 신발도 벗고 숫제 알몸 윤곽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카메라로 몸 검사를 한다고 합니다. G-20 정상회의를 앞둔 우리나라의 주요 공항에도 지문 검색기, 알몸 투시기가 설치되고 있다니 이젠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런 판에 증명사진을 그야말로 ‘뽀샤시’ 하게 마구 손질하고, 전혀 딴 사람처럼 보이게 해도 좋아만 한다니 생각해보면 좀 웃기는 일입니다. 그나마 요즘 주민등록증은 위조를 막기 위해 조폐공사에서 찍어낸다지만 거기서도 실제 인물과 사진을 대조할 방법이 없겠지요.

얼굴사진이 붙어있는 신용카드도 있지만 어느 가게서나 물건 사는 사람과 카드에 붙은 사진을 대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여권사진도 마찬가지, 발급기관에서 실물과 사진을 대조하는 걸 본 기억이 없습니다.

무슨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것이지요. 번거롭게 따져서 서로 얼굴 붉히고 불편해 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것도 우리네의 심각한 ‘안전 불감증’이 아닐까, 혼자서 실없는 걱정을 했습니다.

며칠 전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는 이집트 관영신문 알 아흐람이 어이없는 사진 조작으로 국제적 망신을 샀습니다. 이 달 초 백악관 중동 평화협상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을 앞장서서 안내하던 오바마 대통령 위치에 뒤따르던 무바라크 대통령을 바꿔 세운 것입니다. 이집트 내에서도 ‘무바라크 대통령을 띄우기 위한 과잉충성’이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진 수정이나 조작은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유혹인 것 같습니다. 실물보다 더 예쁘고 잘나 보이고 싶은 욕심, 실제보다 더 우아하고 권위 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사진은 실물도 사건 현장도 있는 그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였습니다. 그런 사진이 신문에서조차 서슴없이 조작되고 있는 걸 보면 이젠 사진의 원래 기능이나 역할도 사라져버리는 걸까요. 이 또한 종이 신문, 인쇄 매체의 몰락을 재촉하는 촉매가 되는 건 아닐까요. 사진 전문가나 동호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