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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
이승훈 2010년 10월 06일 (수) 00:06:22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기세등등하게 미케네 성을 들어서 단칼에 아이기스토스를 해치운 오레스테스는 피가 흐르는 단도를 들고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아가멤논의 원수인 클리타임네스토르를 향해 시선을 옮겼습니다. 태양신 앞에 몇 번이고 맹세했던 복수이건만 검을 겨누는 순간 미케네의 왕자는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어머니가 가슴을 열고 "넌 이 젖을 먹고 자랐단다."라며 목숨을 구걸했기 때문이죠.

천하를 손에 넣은 남자인 칭기즈칸 역시 동생인 카사르를 핍박하자 어머니 후에른이 나타나 젖가슴을 보이며 "너흰 둘 다 이 젖을 먹고 자란 형제다!"라며 엄하게 꾸짖자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뒤돌아섰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성인이 된 남자가 어머니의 젖가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을 프로이트 식으로 해석한다면 내면 깊숙이 내재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발현하는 것을 무의식이 자기 방어를 한다-쉽게 얘기하면 어머니의 가슴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스스로가 수치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리게 된다는 얘기-는 정도가 되겠지만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런 식의 결론은 너무 재미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나와 남도 구별 못하는 갓난아기에게 어머니의 젖가슴은 자신의 모든 것인 어머니와 자신을 이어주던 모성의 아바타이자 어머니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입니다.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을 비난할 때도 유일하게 따뜻한 위로와 안락을 줄 것 같은 어머니의 집약체라고나 할까요. 나이가 들고 자신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잊혀지긴 하지만 그래도 힘든 세상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는 법. 내면 깊숙이에서 늘 갈망하던 것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눈 앞에 나타났으니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에 눈을 돌릴 수밖에요.

무엇보다도 어릴 적 보았을 적에는 예쁘고 탄력 있던 어머니의 유방이 이제는 볼품없이 늘어진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어머니의 지난 고생이 자신 때문임을 아는 아들 입장에서는 감히 바라보기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이가 뭇 사람들 앞에서 속살을 보이는 수치까지 감당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꾸짖으니 잘못의 여부에 관계없이 일단 고개가 숙여지는 것 아닐까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어머니께서 가슴을 보이며 야단칠 정도로 큰 불효는 안 한 덕분에 그 당혹스러운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보는 것에 버금갈 만큼 가시방석인 상황이 있으니 바로 어머니의 기도를 듣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 누워서 듣는 어머니의 기도소리는 포근한 자장가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약간 높은 톤의 조용한 중얼거림. 주변이 아주 조용할 때는 그 내용이 들릴 듯 말 듯한 아주 적절한 크기의 음성. 아마도 내가 잘 되길 기도하시겠지 하는 일종의 안도감이 드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행복한 꿈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과 함께 자는 일이 드물어지면서 잠자리에 누운 채로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듣는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명절 때 제사 대신 드리는 할아버지 추도 예배에서 주기도문 전에 하는 어머니의 통성 기도를 듣는 것은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참 고역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항상 오늘 같이 좋은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인 것과 지난 1년간 행복하게 지낸 데 대한 감사를 시작으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소망을 허락해 주시길 비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할머니에게는 건강을, 아버지에게는 의술이 무뎌지지 않고 계속 여러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은총을 비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자라나는 우리 남매들을 위한 기도는 그때 그때에 따라 다릅니다. 물론 그 중 가장 변화가 무쌍했던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님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저였죠. 몸이 약해졌을 때는 건강한 신체를, 공부 못하는 모범생이었던 학창 시절에는 학업에 좀더 충실하기를, 그리고 슬슬 노총각의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요즘은 좋은 배우자를.

아버지의 순서가 지나가고 누나의 순서가 다가오면 이미 앉은 자리에서 슬슬 오금이 저려옵니다. 사실 어머니가 어떤 것을 기도할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즈음 가장 많은 잔소리 들었던 부분이 나오는 것이야 평소 훈계를 들을 때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 중이라서 도망갈 수 없는 데다가 잔소리와는 다르게 간절한 음성과 어머니 자신을 위한 기도는 아예 없고 우리를 위한 기도만으로 채워지는 그 시간에는 가족, 특히 나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집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참 쑥스러운 일입니다.

늘 한 귀로 흘려들어왔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저토록 강한 소망을 내포한 것이었다니 죄송함과 함께 마치 어릴 적 갓 태어난 강아지를 손에 안았을 때만큼이나 손을 대면 더럽혀질 무엇인가가 가슴을 채운다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그 순간이 곤욕인 이유는 갓 돌이 지난 어린 조카 녀석이 안아주려고 하면 죽어라고 도망가다가도 잠시 혼자 두면 어느새 옆에 와서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올 추석에도 어머니의 기도와 함께 할아버지 추도 예배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비록 올해도 어머니의 기도 안에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기원은 빠져 있었지만 그 기도와 함께 자란 우리 남매들은 어머니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어머니의 소망과 기도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늘 기도합니다.

1979년 서울 출생. 단국대 치대 졸. 2008년 <한맥문학>으로 문단 등단.
한국문인협회, 치과의사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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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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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어머니의 기도'라는 평범한 제목이 감동을 줍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기도가 있지요. 누구나 같은 내용, 그러나 자신만의 간절한 기도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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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12: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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