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웨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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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웨스턴

김창식

2010년 10월 11일 (월) 01:15:41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따른 중징계 방침을 통보함에 따라 신한은행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에이스 은행으로 평가 받아온 신한은행 경영진 간의 진흙 밭 싸움은 금융계뿐 아니라 국가신인도에도 흠집을 냈고 예금주는 물론 일반 국민의 집단적 정서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냈습니다. 지난 달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검증과정에서 드러난 '전직 후보자들'의 분칠하지 않은 맨얼굴을 본 뒤끝이라 참담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는군요.

신한은행 분쟁의 정확한 실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라응찬 회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연합팀이 전전긍긍하면서도 신상훈 신한지주금융 사장을 압박하고 신 사장은 세 불리 속에 반격을 도모하려 하나 뾰족한 방도가 없어 속을 끓이는 형국입니다. 고소‧맞고소 사태 속에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시원한 결론이 내려질 것 같지 않습니다. 감독기관이 개입하고 물의를 일으킨 세 사람이 모두 물러나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나옵니다. 고객이나 국민이 참여하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해관계 충돌로 석연치 않은 이면의 스토리가 진행됐고, 어떤 결말이 나든 당사자들이 쉽게 승복할 리 없으며, 억지로 등 떼밀려 관전하게 된 국민들에게 심리적 타격을 주리라는 점은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의 대치는 기시감(旣視感)이 있습니다. 등장하는 캐릭터가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 번안 제목은 석양의 무법자. 원제는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이 영화는 우리나라 김지운 감독이 같은 제목으로 패러디해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말 번역인 '좋은 놈'은 '그런대로 괜찮은 놈' 정도의 뜻이고 '이상한 놈은 '추한 놈'이 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나쁜 놈'은 어떻게 바꾸든 여전히 '나쁜 놈'이겠지만.

서부영화가 늘 그렇듯 이야기 구조는 헐겁습니다. 허무와 권태에 찌든 눈빛, 아무렇게나 걸친 담요, 입에 건성으로 문 불 꺼진 시가가 트레이드마크인 떠돌이 총잡이 블런디(좋은 놈‧클린트 이스트우드). 블런디와 동업관계인 사기꾼 현상범 투코(이상한 놈‧엘라이 월락), 냉혹하고 가학적인 무법자 센텐자(일명 아이스 엔젤‧나쁜 놈‧ 리 반 클립). 이상 개성파 악당 3인이 보물을 찾아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반목, 이합집산, 제휴와 대결이 기둥 줄거리입니다.

블런디와 투코는 속마음이야 어떻든 불화하면서도 공생하고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지만 센텐자는 독자노선을 걷습니다. 트리오의 연기 앙상블이 기가 막힙니다. 등장인물들 간 대의명분은 찾아볼 수 없으며 철저히 개인적 이익을 좇고 음모와 배신이 판칩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 남북전쟁의 시대상을 끼워 넣어 전쟁의 허무함과 비참함, 황폐함도 슬쩍슬쩍 건드리는데, 마지막 시퀀스인 3인의 대결장면이 압권입니다. 카메라 앵글은 세 사람이 가늘게 눈을 떠 서로 눈치를 보며 견제하고 손이 권총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을 근접묘사(Extreme close-up)해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마침내 울려 퍼지는 총성….

신한은행 분규의 당사자인 3인의 '추악한 서사'를 지켜보며 영화를 떠올린 것은 영화에 나 자신을 투사(Project)해 위안을 얻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점잖은 분들로 보이니 누가 그저 그런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이며, 누가 추악한 놈인지는 알 수 없군요. 게다가 아직 초입 단계이니만큼 이 사태가 어떤 경로로 진행될는지 점치기도 힘듭니다. '신한은행 웨스턴'도 '스파게티 웨스턴'에서처럼 똑 같지는 않겠지만 얼추 비슷한 결말이 나지 않을까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요. 영화에 묘사된 3자 대결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죽는 자(나쁜 놈), 낭패를 보지만 살아남는 자(이상한 놈), 그런대로 한 몫 챙기는 자(좋은 놈).

다비 (174.XXX.XXX.138)

흐흐흐
너무 재밌어 한참 웃었습니다.
닉시님만 하실 수 있는 비교법이 아주 즐겁습니다.
사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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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3: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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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xland (110.XXX.XXX.243)

다비님,오랫만에 뵙는군요. 저도 진행되는 사태의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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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5: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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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72)

저는 이 와중에 나응찬 회장이 아무렇지도않게 출국하는 걸 보면서 결코 검찰도 어쩌지못하는 속사정이 있는게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영화는 그저 즐기면 그만이지만 신한사태는 결코 즐거운 일이 될 수 없음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좋은 놈,이상한 놈, 나쁜놈은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사라져주지만 이번 신한사태의 당사자들은 그 후유증으로 서민의 희생을 요구 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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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23: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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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xland (110.XXX.XXX.243)

글쎄 말입니다, 김윤옥님. 라회장도 혐의가 있어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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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5: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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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112.XXX.XXX.231)

하.하.하. 재미있군요. 신한 사태의 3명의 주역들을 서부 영화의 총잡이들과 연상시키는 작가님의 慧眼이 놀랍습니다. 이들 3명, 모두가 금융계에서 몇 십년 근무한 엘리트들이며, 머리들이 비상한 사람들로서, 서로 서로 구린 구석을 꿰뚫어 보고 있기에 누구하나 쉽게 (총맞아) '깨갱'하지 않을듯합니다. 라응찬 회장, 엊그제 미국으로 돌연 출국했죠? 이 분쟁건 처리맡은 검찰, 정말로 골치깨나 아플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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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17: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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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xland (110.XXX.XXX.243)

happy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참, 점잖은 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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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5: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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