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씨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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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씨의 예언

임종건

2010년 10월 13일 (수) 00:15:15

내가 황장엽 씨에 주목한 것은 수년 전 그의 강연을 듣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북한 권력 심층부의 얘기도 흥미로웠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의 북한은 세습체제로 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관측통들이 북한에서의 왕조세습 가능성을 예견했지만 그런 주장을 일찍부터 일관되게 했던 사람은 황장엽씨였다고 봅니다. 황씨도 막내 아들 정은 보다는 큰 아들 정남으로의 후계가능성에 무게를 더 뒀던 듯한데 김일성-김정일의 왕조체제 구축과정으로 보아 북한의 권력세습은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관측통들이 세습 가능성을 예상했다지만 ‘설마’ 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이성적 판단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비이성적 상황을 판단할 때 흔히 빠지는 주저 현상이지요. 그런 가운데 군부가 주도하는 집단지도체제의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고, 치마폭 속의 꼭두각시로 판명 난듯하지만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의 역할이 점쳐지기도 했습니다.

그 점에서 황씨의 판단은 돋보였습니다. 주체사상의 설계자였던 황씨는 주체가 개인 우상화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간파한 뒤 남쪽으로 망명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북한체제의 비이성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남한으로 망명한 후 북한 권력의 타락상을 폭로했습니다. 그는 김일성 주석의 총애를 받았고, 김정일의 가정교사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방약무인에 반감을 갖게 돼 망명을 선택했음으로 김정일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황씨는 최근 김정은에 대해서 ‘그깟 녀석’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지만 젊은 날의 김정일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녀석’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김정일로서는 황씨 암살조를 남파했을 정도로 그의 폭로가 아팠다는 얘기입니다.

황씨는 김정일을 가리켜 정치가로는 빵점 이하지만 독재자로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성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잡념을 갖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 배불리 먹일 생각을 하는 독재자는 없습니다. 민중은 적당히 헐벗고 굶주려야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김정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준 쌀로 군량미 곳간부터 채워놓고, 주민들에게는 북한의 핵무기가 무서워 남쪽에서 갖다 바치는 조공미라고 속이는 김정일에게 쌀을 주라고 하는 것은 이성입니까 비이성입니까. 황씨는 햇볕정책이 김정일 체제를 끝낼 기회를 잃게 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1989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대통령 일가족이 민중봉기로 처형당하는 장면에 누구보다 소름이 돋은 사람은 김정일일 것입니다. 그런 꼴을 면하려면 백성을 노예로 만드는 길 밖에 없습니다. 최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 말 그대로입니다.

핵무기로부터 각종 대남 도발과 평화 제스처까지 북한의 모든 정책은 백성의 노예화, 김일성 3대의 우상화 도구로 이용됩니다. 그 같이 폭정에 기반한 노예화 공작이 성공해 북한에서 민중봉기는 나올 수 없게 됐다는 것이 황씨의 견해였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나서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스스로 맡았습니다.

군 경력과는 무관한 아들 외에 여동생 김경희까지 대장자리에 앉힌 것을 보면 3대 세습은 피붙이 외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극단적인 고립감에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일족을 살려야 한다는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의 표출이라고 하겠습니다. 황씨가 김정일의 그런 성격을 두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여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고도 했습니다.

노 망명객은 10월10일 자택에서 목욕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87세였습니다. 누구나가 바라는 평화롭고 깨끗한 죽음입니다. 황씨가 죽던 날 김정일과 정은 부자는 평양에서 세습체제의 공고화를 겨냥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벌이며 주석단에 나란히 서서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 맞이할 죽음은 황씨처럼 평화롭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시시 (211.XXX.XXX.129)

세 분의 댓글을 한꺼번에 몰아 올렸군요.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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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09: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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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익 (96.XXX.XXX.168)

예리한 통찰력. 합리적 견해. 유려한 문장들. 자유칼럼이 점점 더 널리 읽혀지고 오피니언 메이커가 되어가는 듯. 각방면에서 귀감으로 삼고 인용하는 날이 올 것 같군요. <로스앤젤레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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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03: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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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58.XXX.XXX.198)

권선배, 반갑습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데니의 태극기 시절이 생각납니다.늘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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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05: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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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174.XXX.XXX.138)

혈연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사회주의나 공산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북한은 하나의 가족 기업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저도 황장엽 선생님처럼 생각합니다.
햇볕정책이 북한의 공산체제와 세습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좋은 의미가 변질된 햇볕 정책으로 하여 점점 통일은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김정일의 위기만 잘 넘어가게 해준 거지요.

이글을 읽기 전에도 항상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의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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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4: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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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58.XXX.XXX.198)

공산혁명의 최대명제가 왕제타파겠죠. 그점에서 북한은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라고 해야겠죠. 가족기업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기업도 저런 식으로 경영하면 오래전에 망했어야지요. 노조가 가만히 있었겠어요? 알수없는 집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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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05: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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