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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싫은 일
이승훈 2010년 10월 19일 (화) 00:32:40

 

며칠 전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일본과 한국의 73번째 A매치가 국가 대표 평가전으로 열렸습니다. 양팀 선수들 모두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0:0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기 자체보다 붉은 악마의 응원에 더 눈이 가더군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선보인 경기 전 대형 태극기를 펼치는 응원이 이번에는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대형 초상화를 펼치는 것으로 변형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스포츠, 특히 축구의 본질이 폭력성의 분출을 위한 대리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투혼을 부추길 수 있는 상징물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그 상징물이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이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일 같습니다.

유럽연합에 대한 준비가 한창이던 1990년대 국가 별 문제가 되었던 몇몇 기념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의 런던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도착하는 역 이름은 워털루 역입니다. 바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에게 대패한 전투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에 프랑스가 영국에게 하나의 연합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역 이름부터 고치는 것으로 소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자 이번에는 독일 등의 나라가 프랑스의 개선문을 문제 삼기 시작하는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민족의 영웅이지만 이웃나라에게는 뼈아픈 상처로 남은 인물이나 사건일 수 있는 것이 역사적 사건의 특징입니다. 특히 이번 경기는 국제 대회의 일환이 아니라 일본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손님으로 초청한 친선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굳이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분 상할 만한 인물의 초상화를 응원 도구로 이용해서 경기하는 선수와 본국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볼 많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투혼을 상징하기 위한 상징물이 필요했다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사용했던 치우천황이나 을지문덕 장군, 강감찬 장군 같은 일본과 관련이 없는 역사적 영웅을 선택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응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만약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 친선 경기에서 울트라 니폰 응원단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욱일승천기의 대형 이미지를 사용한다면 그걸 바라보는 우리 선수나 시청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긴 역사를 통한다면 이웃나라 간에 크고 작은 사건이 많기 나름이고 그 사건은 관점에 따라서 한 쪽에게는 빛나는 명예이지만 다른 한 쪽에게는 잊고 싶은 굴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는 것 역시 필요하겠지만 이웃나라를 대할 때 좋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관계의 본질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싫어할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난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성숙한 시민의 배려 아닐까요.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 입니다. 강산이 10번은 변할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경술국치의 상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1979년 서울 출생. 단국대 치대 졸. 2008년 <한맥문학>으로 문단 등단.
한국문인협회, 치과의사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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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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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174.XXX.XXX.138)
공감이 가는 글에 감사합니다.
어쩐지 우리 민족은 배려의 정서가 부족한 것이 아닌지
항상 느끼고 생각해왔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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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10:07:0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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