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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은 머슴이 아닙니다
임철순 2010년 10월 20일 (수) 00:36:55
재계 서열 40위인 태광그룹이 편법 증여ㆍ비자금 조성 및 정ㆍ관계 로비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태광 자체의 비리는 물론 정ㆍ관계의 수상한 비호행태가 조금씩 드러나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좀 돌발적인 느낌도 드는 검찰 수사가 처음부터 급행이 돼 버린 것은 상당한 자료를 확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보자들이 검찰에 제공한 자료는 단순 제보가 아니라 거의 수사 보고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보자들 중 한 사람인 박윤배 서울인베스트먼트 대표는 1년 9개월여 동안이나 자료를 모아 검찰에 넘겼다고 합니다.

태광산업의 자문위원으로 기업 구조개선 업무를 도맡았다는 사람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다른 제보자들과 달리 공개적으로 ‘태광 죽이기’에 나선 그는 몇 년 전 별다른 이유 없이 해고 당한 데 대한 복수심과 적개심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해고된 뒤 27억원을 요구했다가 거절 당하자 앙심을 품고 검찰에 제보했다는 소문을 그는 강력 부인하고 있습니다. 정의감으로 한 일도 아니지만 보상을 요구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부 고발’에 대해서 “구조조정 컨설팅 과정에서 빼낸 내부 정보를 악용해 경영권에 위해를 가한다면 어느 경영자가 무사하겠느냐?”, “자기가 몸 담았던 조직을 칼로 찌르는 질 나쁜 배신자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내부자의 고발이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려는 투철한 정의감에 의한 것이 아닌 한 그리 아름답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풍토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3년 전 삼성비자금 사건 때도 내부 고발자인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시각은 크게 엇갈렸습니다.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인 또 다른 사건, 한화증권 비자금 사건도 내부자 고발로 불거졌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는 회사의 임원이 제보자에게 5,000만원을 건네며 입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대해 회사측은 회사 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내부고발 사건이 벌어지면 금품으로 무마하려 하고, 그게 잘못되면 임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어느 회사나 다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며 임원이나 종업원들을 대하는 기업 경영주의 자세를 생각하게 됩니다. 1999년 경제청문회에서 한보그룹 정태수 전 총회장이 “머슴(전문경영인)이 무엇을 알겠느냐”고 말해 유행어가 됐지만, 우리나라 기업 경영주들은 임원이나 종업원들을 대체로 머슴이나 몸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만 많이 줄 게 아니라(돈마저 짜게 주는 경우도 많지만) 인격적인 처우를 해 주고 신뢰관계를 맺었다면 최소한 기업 경영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내부고발자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꽁꽁 숨긴 비밀금고를 내부 고발이 없으면 검찰이나 경찰이 어떻게 금세 찾아내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경영주들은 겸손하지도 않고 인간적이지도 않습니다. 아버지의 타계 후 취임한 A회장은 임원회의 때 거의 영어로 말해 임원들이 못 알아듣자 영어도 못한다고 단체 면박을 주고, 볼펜을 손으로 돌리면서 “그래서? 그래서?”하고 반말로 업무보고를 받아 모멸감을 느끼게 했답니다. B회장은 아버지뻘인 회사 고문(전직 장관)이 담배를 피우자 회의가 끝난 뒤 “회장 앞에서 버릇없이 담배를 피운다”고 다른 임원들에게 욕을 해 결국 그가 회사를 그만두게 했습니다. C회장은 얼마 전까지도 임원들을 세워 놓고 ‘조인트’를 깠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런 것들은 아주 사소한 사례일 뿐입니다. 특히 창업주의 2, 3세 중 공부를 제대로 하고 인격을 갖춘 사람 외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 때의 임원들을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더 젊으니 당연히 요즘 시대의 감성에 맞고 더 똑똑하기도 하겠지만, 아들이나 딸뻘인 사람에게 반말에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어느 누가 기분이 좋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을 하려 하겠습니까?

내부의 임원들에게는 아무렇게나 함부로 대하고 기분 나쁘면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르게 잘라 버리면서 대외적으로는 고객과 국민들에게 ‘윤리경영 도덕경영 감성경영 상생경영 문화경영 예술경영 무슨 경영’을 아무리 아름답게 홍보해봤자 그것은 허구일 뿐입니다. 그 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자신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정말 더럽고 아니꼽고 구역질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 치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 붙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존경과 신뢰는커녕 증오와 적개심이 자라기 십상입니다.

기업의 임원들은 자신들을 임시직원, 임기가 없는 비정규직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런 자기비하가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경영주들의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임원이나 종업원은 머슴이나 몸종이 아닙니다. 동업자까지는 아니라도 ‘기업을 함께 하는 동료’라는 생각만 조금 하더라도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최근 어느 조찬강연에서 들으니 사덕(社德)을 베풀면 사운이 열리고 국덕(國德)을 베풀면 국운이 열린다던데, 사덕을 제일 먼저,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경영주입니다. 거꾸로 말해, 사덕을 베풀지 않으면 사운이 닫힌다는 뜻일 테니 늘 잊지 말고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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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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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인 (211.XXX.XXX.129)
임주필 잘 읽었습니다

바로 이런 재벌들(2/3세 포함) 이 과연 협력 업체 즉 그들이 말하는 하청업체에게는 어떻게 대 할까요?
파리 목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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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09:23:08
0 0
채길순 (211.XXX.XXX.129)
잘 읽었씁니다. 요즘 소설 마무리 하느라 좀 바쁩니다. 그래도 이렇게 시원한 글을 볼 수 있다니, 행복합니다. 아직 머리 긴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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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09:16:15
0 0
박지애 (211.XXX.XXX.129)
참으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매일 날아오는 컬럼이지만 오늘은 정말 공감이 가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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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10:22:53
0 0
임종호 (211.XXX.XXX.129)
주필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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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08:44:0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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