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는 탐탁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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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태료는 탐탁지 않지만

허영섭

2010년 10월 21일 (목) 00:25:48

역시 골치아픈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는 법규의 강제력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모양입니다. 지난 며칠 사이에 차례로 발표된 애완견 배설물과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그리고 내집 앞 골목길의 눈 치우기와 관련한 행정 당국의 과태료 부과 방침이 그렇습니다. 단속 이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처리하고, 협조하고, 참여해야 하는 문제인데도 그것이 소홀했기 때문에 제시된 해결 방법입니다. 이렇게 당국이 단속에 나설 수밖에 없는 우리 실정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 중에서도 애완견의 배설물 무단 방치에 대해 적극 단속에 나서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두드러집니다. 공원에서 애완견이 저질러 놓은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경우 7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7년 개정된 ‘서울특별시 도시공원 조례’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요. 아울러 애완견에 목줄을 채우지 않고 공원 산책에 데리고 나오는 경우에도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합니다. 자기의 애완견만 귀여워할 줄 알았지, 다른 산책객들이 그 배설물에 눈살을 찌푸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체하며 넘어갔던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 규정입니다.

하지만 단속 규정을 마련해 놓고도 지금껏 미적거렸던 서울시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조례가 개정되고 공원 곳곳에 단속을 예고하는 현수막이 걸릴 때만 해도 애완견의 배설물을 그대로 놓아두고 슬쩍 사라지는 얌체족들이 근절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보다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요즘도 이따금씩은 공원 잔디밭 군데군데에서 견공들이 실례한 흔적을 목격하게 됩니다.

저 자신이나 저와 가까운 이웃들이 단속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유감스럽지만, 엄포만 질러놓고 그냥 뒷짐만 지고 있었던 모습은 법과 원칙의 기준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울시 뿐만 아니라 다른 광역 지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08년 동물보호법 시행에 맞추어 저마다 조례를 고쳐 애완견 배설물 단속 근거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단속했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아파트 계단에 화분이나 자전거를 놓아두어 통행에 불편을 주는 경우도 비슷합니다. 비상시 소방활동에 지장을 주고 주민들 대피에 장애가 되므로 단속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역시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특히 최근 자전거타기 붐이 일어나면서 아파트마다 복도의 자전거 행렬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혹시 사고가 났을 경우 이로 인해서 수습에 차질을 빚는다면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이밖에 장애인 주차구역에 일반 차량이 버젓이 주차하거나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등에 대해서도 마땅히 단속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현장에 동원될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해합니다. 더구나 단속 만능주의 행정 조치에도 문제는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공공질서가 깨지고 그 결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데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일반적으로 관청의 단속 규정이라는 것이 행정편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어딘가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애완견의 배설물을 단속해야 하는 것도 단순히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 말고도 배설물에 기생충이나 살모넬라균 같은 여러 병원성 세균이 있어 면역기능이 약한 어린이에게는 자칫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도 옆 사람에게 간접흡연의 피해를 주게 됩니다. 서울시가 내년 3월부터 버스 정류장이나 공원 등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되는 경우 과태료를 물리기로 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속에 나서려면 먼저 그 규정이 타당하고도 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제재를 받는 당사자로서도 왜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단속 대상이 명확하게 구분돼야만 합니다. 단속 내용이 애매모호하다면 제재를 받는 사람들로부터 억울하고 지나치다며 반발을 살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소방방재청이 자기 집 주변 이면도로의 눈을 치우지 않는 주민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얘기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과태료의 상한선이 무려 100만원으로 거론되는 점도 그렇지만 눈을 치워야 하는 집 앞길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누가 눈을 치우고 안 치웠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급변하는 이상기후로 폭설이 잦아짐에 따라 눈을 치우지 않으면 생활에 큰 불편을 주게 되지만 이런 방법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설령 법규를 고쳐 단속 규정을 만든다고 해도 실제로 단속은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럴 것이라면 애초부터 규정을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합니다. 뻔히 보이는 아파트 계단의 즐비한 자전거들과 병원이나 대형 매장의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워진 일반 차량조차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면서 계속 엄포성 단속 규정을 만들어낸다면 질서의식에 대한 시민들의 감각만 자꾸 무뎌질 뿐입니다. 단속업무를 관장하는 행정 당국의 체면도 많이 깎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애완견 배설물에 대한 서울시의 단속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관심을 끕니다. 그러나 단속도 중요하고 과태료도 피할 수 없겠지만, 그에 앞서 모든 시민들의 질서의식 발휘와 자발적인 참여로 아예 단속이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