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연, 저런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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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연, 저런 인연

황경춘

2010년 10월 25일 (월) 02:28:34

“소매 스치는 것도 전생의 연(緣)”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웃 일본에서도 똑 같은 표현의 속담이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두 남녀가 마치 운명의 신이 인도하는 듯이 기구한 경로를 거친 끝에 인생의 반려로 맺어지는 예를 우리는 가끔 듣거나 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어떤 분은 운명이다, 아니면 인연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기적적인 우연의 연속 결과라 하고 또 다른 분은 필연적 귀착(歸着)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세상의 한 가지 현상이 인연, 숙명, 필연, 우연 등 여러 가지 견해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폴 앵카(Paul Anka)는 “You are my destiny"(당신은 나의 운명)이라 불렀고 노사연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고 했지요. 피천득 선생의 유명한 수필 ‘인연’을 위시하여 세상에는 이 인연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천득 선생처럼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인연도 있고 연때가 잘 맞은 인연도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인사인 99세의 현역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씨는 우리나라와 묘한 인연으로 맺어졌습니다. 1970년 3월 31일 히노하라 선생이 탄 일본항공 국내기가 극좌 적군파(赤軍派) 테러리스트들에 납치 당해 평양으로 가는 도중 승객을 김포비행장에서 석방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히노하라 선생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정래혁(丁來赫) 씨와 알게 되고
그뒤 서울에서 강연도 하고 그가 시작한 7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노인운동’의 서울지부도 만드는 등 사회활동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인천의 모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황장엽 선생에 관한 가슴 아픈 인연 이야기를 신문지상에서 읽고 피천득 선생의 경우와는 다른 또 하나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2002년 6월쯤에 ‘탈북자동지회’에서 평양 정의여고 동창들과 함께 황 선생을 처음 만난 뒤 인간적으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전한 두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이 있는 한 살 차이의 주 교수와 5년 이상 매일 아침 8시 반이면 전화를 걸고 인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주 선생 나와 형제 합시다”라고 말해 주 교수를 놀라게 한 황 선생은 좀 더 친해진 뒤에는 “북한에서 주 선생을 만났다면 결혼했을 거요”라고 했고, 이에 대해 주 교수는 “예수님을 안 믿어 안 됐을 걸요”라고 되받은 일이 있을 정도의 사이였다고 합니다.

주 교수는 황 선생의 생일잔치를 황 선생이 원하는 대로 자기 집에서 차려 주었고, 한 번은 주 교수의 생일잔치를 황 선생이 자기 사무실에서 차려 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장엽 씨가 돌아가신 아침에는 8시 45분까지 전화가 없어 이상한 예감이 든 주 교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 황 선생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8시 반에도 습관이 돼서 시계를 쳐다봤어요. 제가 울고 있더라고요”라고 전한 이 기사는 “86세의 주선애 씨는 소녀처럼 감상에 젖어들었다. 목소리는 또랑또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주 교수의 평양 집은 선교사와 서양인이 많이 사는 양촌(洋村) 근처에 있었다는데, 황장엽 씨도 어릴 적에 거기서 놀았다고 하여서, “나이를 맞춰보니 한 살 차이였어요. 어쩌면 어렸을 때 같이 놀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주 교수의 회상은 비약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두 사람의 인연도 대단했다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지난 10월 15일 서울 근교 광릉에서 조선조 제7대 세조대왕의 기제사인 기신제향(忌辰祭享)이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사장 李桓儀 ㆍ이환의)의 광릉봉향회(光陵奉享會)에 의해 모셔졌습니다. 이 자리에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일단의 외국인이 참례하여 국궁사배(鞠躬四拜)를 올렸습니다.

금년에도 서울을 방문 중인 국제우정의모임(Friendship Force International) 회원 16명이 광릉봉향회 이연창(李演昌) 회장의 초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과 전통 제향의식을 견학하기 위해 광릉을 찾은 것입니다. 금년에는 미국인 외에 독일에서 온 두 회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왕릉과 전통 제향의식의 외국인 견학은 서울 우정의모임 고문이며 종약원 부이사장인 이건구(李健九) 씨의 주선으로 작년 10월에 미국 워싱턴주(州)에서 온 18명의 회원이 기신제향에 참례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인연으로 금년에도 광릉을 방문하게 된 외국인 일행은 한 시간 남짓 걸린 제향이 끝난 뒤 황사손(皇嗣孫)과의 기념사진 촬영 및 전례 없는 음복까지 경험하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맑은 가을 공기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이들 중 네 사람은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휴전 뒤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예비역 군인이었고, 70대의 한 부인은 30여 년 전 자기 남편이 용산의 UN군사령부에서 근무할 때 2년 동안 같이 살았던 관사가 그대로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감개무량했다고 말했습니다.

명년 가을 이맘때에는 호주 회원들이 서울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 좋은 인연으로 많은 외국인이 우리 전통문화에 접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해와 서로의 우호 증진에 큰 몫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필자 (203.XXX.XXX.45)

서울대 김진균 교수님 잘못 지적해주셔 고맙습니다.
예, 폴 앵카가 맞지요. 고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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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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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36)

주선애 교수님의 우정이 외로운 영혼에 의지가 되주신 기사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만남의 인연을 소중하게 갈무리하는 능력은 여성의 인품에 있지요.
이웃사랑에 자연스러움을 보여주신 주교수님을 존경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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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09: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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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203.XXX.XXX.45)

언제나 글 읽으시고 감상 보내주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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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18: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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