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남’ 이재오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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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남’ 이재오 장관

임철순

2010년 11월 03일 (수) 01:23:54

1주일 전, 이재오 특임장관이 김황식 국무총리를 수행해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자승 스님은 이 장관이 90도 인사를 하자 “90도로 인사하면 허리 디스크에 걸릴 위험이 있고, 인사할 때 얼굴이 보이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45도만 숙이시라.”고 권했습니다. 자승 스님은 이어 “너무 많이 숙여도 뭔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말한 뒤 농담이라며 웃었지만,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이 장관을 특징 짓는 것은 함박웃음과 90도 인사, 이 두 가지입니다. 작년에 낸 저서 <함박웃음>에서 ‘나의 가장 큰 재산은 함박웃음’이라고 말했듯이 크고 환하게 웃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재산이며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7ㆍ28 재보선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데 이어 특임장관을 맡은 뒤부터는 누구에게나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승 스님의 말마따나 그렇게 숙여도 허리가 괜찮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몸을 잘 접다 보니 어느새 ‘폴더남’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90도 인사를 하는 이유를 이 장관은 ‘섬김의 리더십’, ‘이재오식 정치, 섬김의 정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러다 허리 끊어지겠다고들 하는데 자꾸 하면 괜찮다. 정치인은 고개를 숙일수록 좋은 법이다. 자기를 낮춰 남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정치의 1막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끝났고 이제 2막, 이재오식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섬김의 정치라는 것입니다. 90도 인사는 철학의 변화이니 정치 기술로 보지 말아 달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나 90도 인사법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감은 만만치 않습니다. 자승 스님의 지적이 그런 반응을 대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고 공손하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을 욕할 수 없는데 왜 거부감이나 반감이 생길까? 집권여당의 실세이며 ‘왕의 남자’라는 말을 듣는 이 장관에 대해서는 원래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습니다. 정권의 실세는 아무리 잘해도 주는 것 없이 미움을 살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장관도 함께 싫어합니다. 일단 싫은 사람은 아무리 옳은 말을 하고 좋은 일을 하더라도 다 밉게 보이는 법입니다.

반감의 가장 큰 이유는 90도 인사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쇼라는 것입니다. 한 국회의원은 “한두 번이면 몰라도 유권자들에게 매번 그런 모습을 보이면 진심이 아닌 티가 난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너무 지속적인 연출은 가식적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은 이 장관의 행동을 ‘얼굴 가식’이라고 말한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블로그에서 90도 인사를 조폭문화와 연결 지어 비판했습니다. 그렇게 허리를 꺾는 것은 조폭들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이고, 인사를 받는 대상에 대한 존경과 신뢰보다는 자기과시를 하는 일이며, 잔인함과 폭력성 이중성을 감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악의적으로 보이지만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게 해 주는 비판입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이 장관은 그것도 쇼라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습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국민권익위원장 9개월 동안 버스로 출근했다, 쇼를 그렇게 오래 할 수 있겠느냐, 지켜봐 달라.”고 말했습니다. “지하철 출근도 계속하고 90도 인사도 계속한다. 마이웨이 노래가 생각난다.”는 말로, 행동을 수정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 다 트친들(트윗 친구들)에게 한 말입니다.

지난해 6월 트위터를 시작한 이 장관은 솔직한 발언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별을 보며 집을 나가 별을 보며 들어오는 생활, 그 길에서 보고 만나는 서민들 살림살이 걱정, 인기 TV드라마를 보는 즐거움, 불광천의 코스모스 등 자연에 대한 찬탄, 이런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칠레 광원 33명이 구조됐을 때는 3ㆍ1 독립선언서의 33인과 일치한다며 고난을 극복하는 숫자 33에 맞춰 앞으로 트윗을 33자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재미있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타인의 말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왜곡하여 소란을 피우는 것은 공정한 사회에 역행하는 것이다. 특히 잘 알아 보지도 않고 논평을 하거나 비판부터 하는 것은 참으로 망칙한 것이다.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이런 건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해도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그로서는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몇 달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 <장자>에 나오는 ‘積卑而爲高(적비이위고)’, 낮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루었다는 말을 빌려 박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 그는 90도 인사와 같은 낮은 자세로 큰 것을 이루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 장관에게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우선 함박웃음-. 함박웃음은 (함박꽃이나 함지박처럼) 크고 환하게 웃는 웃음을 말합니다. 보는 이들 모두를 즐겁고 기분 좋게 하는 웃음입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함박웃음은 모든 웃음을 자신에게 모아 들이는 웃음, 다른 사람들의 웃음까지 몽땅 다 가져다 웃는 웃음, 나 한 사람만 웃는 웃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환하게 함빡 웃지 말고 만날 얼굴을 찌푸리고 살란 말이냐,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웃음새도 각각인데 얼굴과 치악(齒顎)의 구조가 함박웃음에 맞게 생긴 걸 어쩌란 말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함박웃음의 중의성(重義性)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덜 함빡 웃을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90도 인사도 자승 스님의 말대로 반쯤으로 줄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겸손과 섬김의 행동양식으로 채택한 그 인사법이 ‘실세라는 사람도 이런 인사를 하는구나’하는 호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진정성이 있는 행동이라 해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연출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어떤 경우에는 90도 인사가 복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린치작전 비슷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너무 크게 웃지 말고 너무 크게 절하지 말고 지나치거나 넘치지 않게, 담담하게 하는 게 오히려 진정성을 인정 받는 일입니다.

그는 처음 트윗을 할 때 띄어쓰기 좀 하라는 요구와, 머리를 염색하라는 권고를 함께 받았습니다. 하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서 ‘어떤이는띄어쓰라하고어떤이는그냥쓰라하고내가써놓고봐도숨차네우야꼬’라고 쓴 일도 있는 이 장관은 머리 염색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띄어쓰기는 트친들의 주문을 받아들여 충실히 하게 됐습니다. 90도 인사는 바로 그렇게,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고 몸을 마구 들이대는 행동과 비슷해 보입니다. 이제 글을 쓰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리게 됐지만, 띄어쓰기를 하고 보니 남들과 글로 소통하는 데는 훨씬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견우 (94.XXX.XXX.245)

평소, 그분의 행동을 대하면서 느끼던 것인데,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운 지적, 공감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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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3 00: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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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댓글 감사합니다. 평안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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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3 22: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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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남의 이목과 시선을 받고 있는 사람은 어떤 행동도 도마 위에 오르지요. 그냥 봐주면 안되나요? 시간이 지나면 그의 진면목을 알수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의 행적도 시간이 지난 먼 훗날에 평가되지 안나요? 세상에는 자기의 길을 걸어가기가 정말 힘듭니다. 우리 어린 시절 하던 말이 생각나네요.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던 무슨 상관이야. 이것 임주필이 자주 쓰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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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2 11: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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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211.XXX.XXX.129)

임철순님의 글은 항상 담연같은 부드러움과 조용한 엄중이 있습니다. 때로는 휴매니티즘이 물씬하고요. 항상 즐겨 읽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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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5 08: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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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45)

진정성이란 겉으로 드러내려 한다고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폴더남께서 미처 알지 못하고 벌이는 퍼포먼스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은평사는 사람들이 안겨준 패배의 쓴 기억을 그렇게 쉽게 잊은체 하는 것도 일종의 쇼가 아닐까, 그 겸손의 머리숙임을 보면서 느끼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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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23: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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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211.XXX.XXX.129)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퇴근 무렵 확인한 메일을 보면서 '아! 이렇게도 절제된 언어로 모든 것을 말 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사와 함께 주필님의 얼굴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런 글을 접할 수 있게 추천하신분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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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17: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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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태 (211.XXX.XXX.129)

Oh Good! 주필(酒馝)님의 지당하신 말씀 저도 100% 공감합니다.
저도 어떻게 이런 가슴 속에 꼭 담아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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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11: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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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 (211.XXX.XXX.129)

임주필님, 평소에 제가 느끼고 있던것을 써 주셔서 감사 합니다. 90도 인사를 하더라도 단정하고 진정성을 갖추어 인사한다면 좀 더 신뢰감을 줄텐데 건들건들한 모습- 마치 조폭들이 팔을 축 늘어뜨리고 하는 양 대충 90도 허리를 꺽는 - 이 안좋아 보였었습니다 임주필님의 글을 읽고 변화가 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봅니다. 오늘도 활기찬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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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11: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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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14.XXX.XXX.11)

좋은 글 공감합니다.
자승 스님의 훈수가 적절한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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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9: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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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가을이 깊어갑니다. 사방에 가을이 널렸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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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8: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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