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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오바마!”
임철순 2010년 11월 15일 (월) 00:20:37
경만호 한적 부총재가 부적절한 성희롱 건배사를 했다가 사퇴한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그는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11월 3~5일) 행사 전 날, 공동취재단과 만찬을 하면서 “요즘 뜨는 건배사 중 ‘오바마’가 있다.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는 뜻이다.”라며 건배사를 외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되지 뭐.”, 이런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산가족상봉단 남측 단장이라는 사람이 여기자들도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으니 온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결국 8일 후 한적 부총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한국인들은 건배사로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곤 합니다. 어떤 모임에서건 자기만 아는 건배사로 참석자들을 웃기거나 호감을 사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또, 뭔가 새로운 말을 들으면 ‘잘 외워뒀다가 나중에 써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건배사는 모임의 성격과 참석자들의 특성에 맞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때와 장소를 잘 가려야 하는데, 경씨는 어디선가 누구에게선가 들은 그 말을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써 먹다가 사단이 난 것입니다.

건배사는 역시 세 글자로 된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일종의 삼행시 놀이와 비슷합니다.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성행위(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변사또(변치 말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껄껄껄(좀더 참을 걸, 좀더 베풀 걸, 좀더 즐길 걸), 통통통(만사형통 운수대통 의사소통), 쾌쾌쾌(유쾌 상쾌 통쾌) 이런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건배사의 의미를 먼저 알려주고, “제가 통통통 하면 여러분은 쾌쾌쾌 하세요.” 하고 두 가지를 한꺼번에 써먹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건배사에는 즐겁게 말을 만드는 재미는 물론, 말을 바꾸고 비트는 재미가 있습니다. '해당화'는 ‘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라는 뜻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남편이 이렇게 먼저 건배사를 하자 조금 있다가 건배사 주문을 받은 아내가 똑같이 해당화를 외쳤습니다. 왜 재미없게 같은 말을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생글생글 웃더니 "내가 말한 건 ‘해가 갈수록 당신만 보면 화가 나’ 이건데?" 하고 약을 올렸습니다. '나가자'도 원래는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라는 말이지만, 분위기를 봐서 ‘나라를 버리고 가족을 팽개치고 자기만 챙기자’고 바꿔 말하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합니다.

세 글자로 된 건배사 중에서도 최근에 많이 유행하고 말을 만들기 쉬운 것은 역시 ‘오바마’인 것 같습니다. 우선, 세계 유일 초강대국(중국 때문에 많이 불편해지긴 했지만)의 현직 대통령 이름을 가지고 노는 재미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전직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두 글자니까 그만두고, 클린턴이 현직 대통령이라 해도 건배사로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클, 린, 턴 이 세 글자로 무슨 건배사를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힐러리(미 국무장관)나 메르켈(독일 총리), 이런 이름도 건배사와 맞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오바마는 말을 만들어 내기가 아주 편하고 좋습니다.

‘오’는 감탄사도 될 수 있지만,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살자 또는 현재를 즐기자는 뜻을 담은 오늘, 남녀관계나 애정에 관한 농담을 이끌 수 있는 오빠, 이렇게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글자입니다. ‘바’는 바람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바란다는 뜻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바람을 피운다는 뜻의 외도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바지, 바다, 바닥, 바위와 같은 명사를 이끌어 오거나 바로(올바르게, 또는 즉시)라는 뜻의 부사로 쓸 수도 있습니다. ‘마’도 마구, 마음, 마누라, 마당, 마비, 마시자, 마지막, 이런 말처럼 쓰임새가 넓습니다. 한마디로 오, 바, 마는 여러 말을 만들어내기 좋게 열려 있는 글자의 조합입니다.

그래서 오바마로 이루어진 건배사는 점점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역시 “오, 오래오래(또는 오늘맨치로) 바, 바라는 대로, 마, 마음 먹은 대로” 이건데, 단체 모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배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범적이고 공식적입니다. 이걸 오바마 건배사 1번이라고 해 둡시다. 하지만 오바마 건배사를 1번만 알고 주야장천 마르고 닳도록 이 말만 쓴다면 진도가 꽤나 떨어진 사람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사람들이 술을 잘 마시지 않거나 흥이 돋지 않고 어우러지지 않을 때 "오늘도, 바쁘게, 마시자!" 또는 “오는 술잔, 바로바로, 마시자!” 이렇게 오바마를 외쳐 보십시오. 분위기가 금세 달라집니다. 경만호씨는 하필 요상한 오바마를 외쳤다가 말썽이 났지만, 어법의 구조와 발상이 그 말과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G20 정상회의 전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추가협상을 마무리하고 싶어 했던 오바마가 한국에 오자, 이명박 대통령이 “오, 오셨어요? 바, 바라시는대로 마, 마구 양보할게요.” 이렇게 말하는 만평을 어느 신문이 실었습니다. 추가협상에서 우리가 미국에 많은 것을 양보하려 한다는 지레짐작을 전제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지난 주말 모임에서 그런 말들이 생각나 음식점 주인에게 이렇게 말해 보라고 알려 준 일이 있습니다. “오셨어요, 손님? 바라는 걸로 마음껏 드세요.” 이 경우에도 오셨어요 다음에 오빠라는 말을 넣으면 괜히 어감이 이상해지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 모임은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부부등산 뒤풀이 자리였습니다. 모두 8쌍이 4시간여 동안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산에서 내려와 한 잔 마실 때, 등산모임 회장이 건배사를 시키기에 일단 오바마 1번을 외쳤습니다. 1번도 처음 듣는 것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을 위하여”, “통통통”, “가~족같이” 이런 건배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눈치를 보아가며 오바마 시리즈를 추가했습니다. 한 친구가 가정과 부부의 화목을 강조할 때 “오늘로 바가지 마지막!” 이렇게 덧붙였더니 다들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남편들만 만날 늦게 들어오느냐,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남편만 기다리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말들을 하기에 내가 거꾸로 “오늘은, 바로 좀 들어와요, 마누라님.”,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조금 뒤에 집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하기에 “오늘만, 바라는 대로 놀아라, 마누라야.” 그랬더니 옆자리의 친구 부인이 “조금 전엔 마누라님이라고 하더니 이젠 마누라야라고 하시네.” 그래서 낄낄거리고 웃었습니다.

이렇게 오바마 시리즈를 하며 1시간여 동안 즐겁게 놀았습니다. 사실은 그런 건배사가 있는 건 아니고 미리 생각한 것도 아니지만, 즉흥적으로 말을 만들어내다 보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직원들은, 한국인들이 이렇게 오바마 대통령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하면서 친숙하게 느끼고 있다는 걸 본국에 수시로 잘 번역해서 보고해야 할 텐데, 번역을 잘하는지 보고도 수시로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별스럽게 미국인들 걱정까지 다 해 주고 헤어졌습니다.

건배사를 만들어 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말 만들어 내는 데 천재적 소질이 있습니다. 연말 모임이 곧 많아질 텐데 자기만의 건배사를 하나쯤 개발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오바마 시리즈로 무슨 말이 더 있을까? 오, 오라버니, 바, 바지.... 이런 것도 생각나는데, 말을 잘못하다가 큰일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제 그만 입을 닫고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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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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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환 /견우 (94.XXX.XXX.245)
마지막 미완성 <오바마> 오라버니... 바지... 마?
뭘로 할까 생각해 봅니다. 마져? ... 큰일 날려나 ㅎㅎ
재미있습니다. 우리나라 말, 한참 웃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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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10: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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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오늘 어떤 분이 빠삐용을 알려 주시더군요. 좀 억지같기는 한데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며 살자, 그런 말이랍니다.
오라버니 바지는 잊어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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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1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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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1)
언제 어디서 어떤말을 했건간에 그 말은 결코 그사람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만호씨의 건배사도 그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그 건배사 말고도 그에게는 더 많은 허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르쳐주신 건배사중에 껄,껄,껄을 외워둬야 하겠습니다. 이 해가 다 가고나니, 후회되는 많은 껄,껄,껄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사람을 대변한다고 임주필님은 정말,무궁무진한, 유쾌한, 기분좋은, 늘 함께 하고싶은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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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14: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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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고맙습니다. 우리 자유칼럼 필자들에게 늘 값진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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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16: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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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오셨어요? 바라시는데로 마구 양보할게요!(쇠고기,자동차 등등) 못이 박힌 삼행십니다 ~~^^
임 주필님 해학이 욱일승천 하십니다. ~ㅋㅋ 답답한 현실 앞에서 배꼽을 잡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휘가 풍부한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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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5 09: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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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감사합니다. 설마 욱일승천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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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5 15: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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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211.XXX.XXX.129)
해마다 연말이면 올려주시는 건배사 이야기 참 재밌고 인용하기 참 유익합니다. 감솨~ 드리고요, 저는 <오>직 <바>라는 건 <마>누라라고 지어봤습니다. 간단하고 그것이 질타일 지언정 좌중의 시선집중에 무엇보다 마누라 눈흘김은 없을테니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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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5 09: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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