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부러웠던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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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부러웠던 두 가지

임종건

2010년 11월 18일 (목) 00:06:34

지난 달 대만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80년대, 90년대에 이어 3번째 여행이었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감회지만 대만은 역시 범상치 않은 나라입니다. 남한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면적임에도 해발 4,000m의 옥산(玉山)이 있고, 3,000m를 넘는 봉우리만도 20개가 넘는 나라입니다. 자연의 높이만 그런 게 아니라 인공의 높이에서도 대북시의 101층 건물은 우리의 63빌딩(아파트로는 69층의 타워팰리스가 있지만)보다 훨씬 높습니다.

대만을 여행하면서 이런 것보다 더 부러웠던 것이 두가지 있었습니다. 한자의 힘과 양안(兩岸)관계의 실용주의적 접근입니다. 한자의 힘이 잘 드러난 곳은 거리의 간판입니다. 대만(중국에서도 같지만)의 거리에 외국어 간판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 한자 간판입니다.

그들은 외국의 이름을 가급적이면 뜻과 발음이 통하는 한자로 짓습니다. 코카콜라가 可口可樂(입에 들어가 즐거운 음료)인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행이 묵었던 쉐라톤 호텔은 喜來登(기쁘게 와서 올라오세요)입니다.

발음과 뜻을 고려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뜻만 통하게 이름을 짓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은 망(網), 컴퓨터는 전뇌(電腦)입니다. 핸드폰은 수기(手機)지만 모바일이라고 할 때는 행동(行動), 무슨 무슨 센터는 중심(中心)이라고 짓는 식입니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오바마가 歐巴馬 (본토에선 奧巴馬)로 되듯이 발음만 살리는 한자이름을 붙입니다. 이 때에도 의미부여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麥維德夫라고 ‘덕 있는 사내’, 또 워싱턴은 華盛頓으로 ‘화려하고 번성하는 곳’이라는 덕담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만에선 외래어는 뜻과 발음을 고려해서 일단 한자로 변환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글로 변환되는 것은 같습니다만 외국어의 발음을 한글로 옮겨놓는 것이 고작입니다. ‘Computer’가 ‘컴퓨터’로 끝나고 마는 겁니다. 우리말로 뜻과 발음을 살리려는 고민이 없는 것입니다.

의미를 살리는 것은 표의문자인 한자가 표음문자인 한글보다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글 또한 얼마든지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풍부한 어휘가 있고, 특히 표음문자로서 발음을 표기하는 데 있어선 한자를 능가하는 탁월한 기능을 가진 문자입니다.

한 때 민간기업이나 공기업을 불문하고 개명(改名) 바람이 거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삼성이 SAMSUNG으로, 럭키(樂喜)금성이 LG LS GS, 鮮京이 SK, 한국통신은 KT, 국민은행이 KB, 농협이 NH로, 최근에는 통합 주공토공이 LH등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하나은행이나 우리은행처럼 우리말을 살린 이름도 있고, 현대자동차처럼 옛 이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국제화를 명분삼아 영어로 바꿨습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서울거리의 간판은 한글 영어간판에다 드물게 한자간판이 뒤섞여 있습니다. 한글 간판도 글자만 한글이지 발음은 외래어인 것이 태반입니다. 그 중에는 국적불명의 외래어도 많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라 외래어로 직접 쓴 간판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한글의 표음문자로서의 장점이 오용되고 있는 겁니다.

글로벌시대에 다른 문화나 다른 언어를 잘 알아야 함은 두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대외무역으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바탕은 제 것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만이나 중국의 힘의 원천이 한자가 중심이 된 문화의 힘이라고 한다면, 한글에 바탕한 한국문화의 힘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두 번째로 양안관계는 한자 간판보다 훨씬 더한 부러움이었습니다. 남북관계가 막혀 있는 현실 때문에 더 그랬을 겁니다. 양안 사이에는 3통(통행 통신 통상)이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민항기가 주 400편에 연간 500만명이 왕래하고, 통신은 자유롭습니다. 무역액도 1,000억달러, 대만기업의 중국투자도 1,000억 달러에 이릅니다. 그 결과 대만의 고궁박물관이 본토의 관광객으로 북적이게 되는 등 대만경제 전반에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한 때 국민당 정부는 본토회복(本土回復)을 부르짖다가 1980년대에 그 구호를 접었습니다. 그 후 대만의 독립을 주장한 민진당이 집권했고, 현재는 국민당이 정권을 탈환한 상태입니다. 민진당이 재집권을 한다 해도 대만독립의 주장은 본토회복처럼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대만은 본토회복도 대만독립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듯합니다.

양안은 경제교류를 통해서 이념의 벽을 훌쩍 뛰어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 발효된 양안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교류의 견인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8년 5월에 취임한 국민당의 마영구(馬英九)총통은 ECFA협상의 대원칙을 ‘현실을 바로 보고, 미래를 개척하며, 쟁의는 제쳐두고, 윈-윈을 추구하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실행전략으로 ‘선 경제, 후 정치’ ‘쉬운 것 먼저, 어려운 것 나중에’ ‘급한 것 먼저, 급하지 않은 것 나중에’로 정했다고 합니다. '마영구 판' 흑묘백묘론이라고 할만합니다. 이런 허허실실의 협상전략이 ECFA협정 타결의 원동력이 됐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양안관계가 발전되어 본토에 대만식의 정치 경제 체제가 들어선다면 국민당 정부로서는 본토회복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대만은 G2국가로 위상이 날로 커지는 중국을 바라보며 외교권행사의 불편 정도는 감수하는 ‘만만디(慢慢的)’의 자세로 본토회복의 그 날을 기다리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 눈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민생만 풍요롭게 한다면 저들이 3대가 아니라 4대 세습을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북한은 주는 것도 없이(테러 빼고는)달라고만 하고, 남한은 주려고 해도 핵무기로 인해 줄 방법이 없는 것이 남북관계의 현주소입니다. 양안관계가 희망의 미래라면, 남북관계는 아직도 건너지 못한 절망의 강을 건너야 보일까 말까한 미래입니다. 그래서 양안관계가 부러웠던 겁니다.

김윤옥 (210.XXX.XXX.147)

아주 오래 전 지금은 타계하신 김영태씨가 코카콜라를 '可口可樂'이라 쓴다는 글을 읽고 중국인들의 여유로운 상상력에 박수를 쳤었지요. 최근 우리 관공서에서 나름 재미있자고 쓴 표어에 어줍잖게 한글에 끝자 하나를 영어나 한자로 써서 민망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왜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지... 남북한의 관계도 긴 안목으로 해결하려는 생각보다는 유한한 정권 유지의 구실로 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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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23: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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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58.XXX.XXX.148)

'일어서自' 류의 꼴볼견을 이른 말씀이시죠.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SH인것은 그렇다치더라도 SHift라며 임대아파트 선전을 하는 것은 가관이지요. 이런 판에 인터넷 용어랍시며 한글 파괴를 예사로 하고 있으니 한글이 어디로 가는지 걱정입니다. 북한이 하는 일 중에서 하나 맘에드는 것은 우리말을 살리려는 자세입니다. 촌스럽다고만 할게 아니라 그 중에서 좋은 것은 우리도 썼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일의 중국방문때 TV에서 북중정상회담 장면을 얼핏 봤는데 김정일 앞에는 金正日, 胡錦濤 앞에는 호금도라고 적힌 명패가 놓여 있더군요. 중국인들 앞에서 자기식 발음을 내세우는 북측의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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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9 17: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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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72)

나라 대 나라에는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에서,서독과 동독의 관계에서 자주적 자존심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남북관계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긴 터널 앞에 지쳐 서있는 느낌임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끝이 있겠거니 믿고,힘내서 다시 출발점에 서서 긴 터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함니다.
임종건님,
후대를 위해서 긴터널을 걷는다 여기시고 힘을 다시 한번 내십시요.
부러운 것은 해봐야 되지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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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09: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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