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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에 손대지 마세요
임철순 2010년 11월 22일 (월) 01:51:26
자유칼럼에 4년 넘게 글을 쓰다 보니 이번 글로 100편이 넘게 됐습니다. 몇 번이나 썼는지 우연히 세어 보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100편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지만, 통째로 다시 쓰거나 아예 버리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내 글을 다시 읽어 보다가, 어째서 생각이 그리 짧고 왜 그런 표현밖에 하지 못했는지 자책과 자탄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글을 쓰는 게 갈수록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남들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 글을 남의 블로그에서 발견하게 되면 참 곤혹스럽습니다. 스스로 좀 괜찮다 싶은 글도 그렇지만, 고쳐 쓰거나 버리고 싶은 글을 퍼다가 실은 경우를 보면 어이가 없어집니다. 자기가 쓴 것처럼 내 글을 올려 놓은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 글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댓글을 읽노라면 절로 실소가 나옵니다. 블로거들이 많아지면서 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다양한 내용으로 자신의 글방을 꾸미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남의 글을 자기 글인 것처럼 올리는 것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글 쓴 사람의 승낙도 받지 않고, 마치 자기네 사이트의 고정 필자인 것처럼 내 글을 ‘오피니언’란에 올려 놓은 온라인 매체도 보았습니다. 상업적인 매체인 경우 그런 행위에 항의하고, 글을 내리게 합니다. 비상업적인 개인 블로그나 카페는 애교로 보아 그냥 지나치지만, 이 경우에도 글의 출전과 필자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알량한 신변잡기와 같은 글을 쓰는 나도 그런데, 시인이나 작가들이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힐까? 남이 노심초사하며 공들여 쓴 시를 허락 없이 인터넷에 공짜로 올리는 것은 분명히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그런데 공짜로 시를 올리는 차원을 넘어 작품을 훼손하거나 왜곡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정말 문제입니다.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몇 년 전에 쓴 글을 보면 인터넷에서 시가 얼마나 수난을 당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생명보험회사의 사외보 편집자가 그에게 메일을 보내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작품을 재수록하려 한다며 원문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답니다. 그 시는 원래 두 연으로 돼 있는데, 메일을 열어 보니 앞의 두 연과 어법과 구문이 비슷한 3연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1연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2연은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로 각각 시작되는데, 누군가가 '아프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고 3연을 만들어 덧붙였던 것입니다. 편집자는 그 시를 인터넷에서 가져왔다고 했답니다. 또 어느 대학교의 교지 편집장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시를 특집기획에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는데, 도씨는 이런 제목의 시를 쓴 적이 없다고 합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어느 방송사의 일일 연속극에 도종환의 시로 소개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는 원래 시가 아니라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 수록돼 있는 <강물에 띄우는 편지>의 일부였습니다. 그 글이 누군가에 의해서 행갈이가 되고 제목이 붙고 시로 둔갑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동료 시인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이구동성으로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고 하소연하더랍니다.

대중적 인기와 지명도가 높은 시인일수록 그런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밥값>이라는 열 번째 신작시집을 낸 정호승 시인의 작품 <그리운 부석사>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시의 첫 행을 제목으로 잘못 올려놓아 이 시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로 둔갑하고 말았습니다. <그리운 부석사>보다는 이 쪽이 훨씬 그럴 듯해 보이고 울림이 강렬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시를 문패까지 멋대로 바꾸어서야 되겠습니까.

일부러 바꾼 게 아니라도 인터넷에는 원작과 다르거나 한자가 틀리거나 오자 탈자투성이에 몇 행씩 통째로 빠진채 떠다니는 시나 산문이 많습니다. 도종환의 <담쟁이>라는 시에는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는데, 누군가 글을 긁어 붙이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듯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로 줄어들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외국의 사례나 옛 우화, 전설, 각종 통계, 이런 것들은 글에 인용하고 싶어도 어디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쉽게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고, 언제나 간편하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ctrl+c, ctrl+v만 잘 활용해도 바라는 작업을 쉬 마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의 정확성, 인터넷의 편리와 중요성을 오히려 더 절감하게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5억명 이상이 가입했다는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최근 개봉됐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커버그는 절교를 선언한 여자친구 에리카를 블로그에 나쁜 년이라고 욕하며 그녀의 브라자 사이즈까지 공개합니다. 에리카는 그 뒤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터넷에 뜬 것은 고치기도 어렵다"며 그를 경멸합니다. 그녀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인터넷에 한 번 뜬 글은 교정 정정할 수 없습니다. 자기 글도 그런데, 남의 글에 멋대로 개칠을 하는 것은 무슨 수로도 바로잡을 수 없는 횡포이며 잘못입니다.

우리는 흔히 표절을 문제 삼지만,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왜곡과 조작이 큰 문제입니다. 작품의 원형을 존중하는 성숙한 문화의식이 필요합니다. 창작자의 권리와 노력을 인정하며 올바른 다운로드를 권장하기 위해 영화인들이 벌이는 굿 다운로더 운동처럼 문학작품의 원형을 온전히 보호하고 존중하자는 취지의 캠페인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자기 글이 소중하면 남의 글은 더 소중하다는 생각과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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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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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 (211.XXX.XXX.129)
안녕하세요~ 한국일보 인턴 8기입니다! 메일로 칼럼을 받아본지 이틀이 됐습니다. 작고 단순할 수 있는 업무지만 그것에 조차 치이다보니 칼럼에 있는 글들이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네요! 시간을 내어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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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3: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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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가을이 갚어가는데, 건강하시지요? 어느 언저리에는 행여 못된 내 글을 누가 가져갈까봐 겁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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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17: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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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53)
그 동안 100편의 글을 올리셨다니 제가 이 자유칼럼을 몰랐던 때의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는 즐거움 하나를 추가합니다. 요즘 제가 가진 화두 중에 하나가 <다윗의 비밀> 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비밀을 감추려고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했지만 그 비밀은 누 천년 후 김권사도 아는 비밀이 되었다는 생각, 무엇을 숨기고 감추겠습니까? 비밀을 만들기 전에 매사에 떳떳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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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4 2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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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재미있는 말씀이십니다. 권사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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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17:43:29
1 0
임철순 (211.XXX.XXX.129)
그런 게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 했다가 잊어 버리고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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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5 17: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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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인 (211.XXX.XXX.129)
난 졸때 아넵네다 졸때

최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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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3 09:01:14
0 0
이창섭 (211.XXX.XXX.129)
아주적절한지적입니다
인사못드려지송합니다 이창섭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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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14: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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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 (121.XXX.XXX.109)
벌써 100건을 쓰셨네요.
축하혀유!

근디 백일잔치 맹크로 백건잔치라는 거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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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12: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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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백건잔치(百件宴) 한 번 하지요. 그런데 남들이 웃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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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12: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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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 (121.XXX.XXX.109)
언제부터 넘덜 눈을 고로코롬 겁냈다요?
술필님이 연내로 날짜 잡고 지가 멤버 모으구 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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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4 10: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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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우선 100편의 글을 쓴 것에 대해 축하를 드립니다. 중간부터 글을 읽고 있는데 너무 실감나는 글이 많았어요.
글을 쓰면서도 남에게 도용되고 우렁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인생은 어떨까요? 더 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래도 글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과 경험을 전해주눈 당신같은 글쟁이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더라도 힘내서 200편 300편 아니 1000편 이상의 글을 만들어 주세요. 담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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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1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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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23.XXX.XXX.172)
구구절절 옳습니다.
저도 블로그에 가끔 남의 글을 소개하는데 마음이 뜨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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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09: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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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남의 시를 올리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이미 올린 것도 삭제하는 블로거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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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12:59:3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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