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그리드, 정치에도 접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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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그리드, 정치에도 접목하자

김홍묵

2010년 11월 23일 (화) 02:03:40

“아버지,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란 말 들어 보셨어요?”
“아니, 처음 듣는데, 그게 뭐지?”
“전력 생산자에서 소비자의 전기제품에 이르기까지 IT(정보기술)를 접목시켜 가장 효율적이고 값싸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한국이 가장 앞서 개발하고 있어요. 우리 회사도 한국의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올 봄(5월) 스위스 알스톰에 근무하고 있는 아들과의 전화통화는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세계적인 전력생산 및 수송기술 개발 회사인 알스톰이 한국의 기술과 시스템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다, 한국 관련 기업과의 협력관계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런 첨단 구상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8일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 세계 전력 관계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입니다. 구좌읍 6,000가구 가운데 3,100가구와 공공기관 등이 사업대상으로, 12개 기업 컨소시엄이 지능형 가전, 지능형 건물, 신재생에너지 생산과 송배전, 에너지 저장 등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곳입니다.

참여 가정과 기관은 종합관제센터(TOC)로부터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로 생산된 전기 가격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습니다. 스마트 그리드를 위해 만들어진 TV, 냉장고, 에어컨을 설치한 가정에서는 전기요금이 비싼 시간대에 가전제품이 스스로 사용량을 줄여 절전을 극대화합니다. 남는 전기는 되팔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한 가정의 지난해 여름 4만 5,000원이던 전기요금이 올해는 1,100원 정도라니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지능형 전력망’으로 불리는 스마트 그리드는 전력의 효율화라는 일차적인 효과는 물론 기반시설 구축과 설비산업 생산을 통한 5만여 개의 일자리와, 74조원 규모의 관련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홈 네트워크 장비, 가전제품과 소통하기 위한 응용프로그램, 새로운 디지털 정보를 이용하는 가전제품 등 신기술을 이용하는 관련 산업들이 생겨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관련 기술 대부분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실증단지는 스마트 그리드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사업모델을 모색하는 시도입니다. 한국 스마트 그리드 사업단은 모델이 정립되면 2030년까지 정부 예산 2조원 등 27조원을 투자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스마트 그리드는 전기의 효율적 이용에 따른 에너지 절약, 생산자와 소비자의 소통을 통한 윈윈전략, 관련 기술과 산업 개발로 인한 일자리 창출, 녹색산업혁명을 이룩할 수 있는 국가경쟁력 제고 등 일석사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정치에도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고. 생산적이고 상생하는 정치,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 국익과 국격을 향상시키는 정치 같은 선거공약은 자고나면 구두선이고, 걸핏하면 역주행이니 그런 바람이 간절합니다.

우선 효율성부터 살펴봅시다. 과연 그만한 인원이 필요한가 싶은 국회의원 수, 적지 않은 세비에다 연금, 수십 가지에 이르는 특혜와 특권, 엄청난 선거비용이 드는 국회의 위상은 비효율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국회의원의 자질도 존경하는 선량으로만 비치지는 않습니다. 전기가 잘 흐르는 구리선이 아니라 철선으로 된 송배전 시스템 격입니다.

국민과의 소통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정치자금이나 후원금의 다소에 따라 입법과 법 개정내용이 달라진다면 공명정대한 대의(代議)정치가 아닙니다. 특정한 이해 당사자나 집단에만 유리한 법이 만들어진다면 과거 밤낮으로 전기를 공급해주는 특선(特線) 혜택이나 다름없습니다. 밤에만 전깃불을 켤 수 있는 일반선을 쓰는 다수의 국민들은 소외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전기 사용자를 가장 언짢게 만들고 막대한 손실까지 주는 것은 정전ㆍ합선 사고와 누전입니다. 상설국회도 아니면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예산ㆍ결산 심의 거부는 정전사고나 다름없습니다. 가전제품을 망치게 하는 합선과 같은 여야 충돌은 정상적인 의정활동이라 할 수 없고, 툭하면 벌이는 장외투쟁이나 석연찮은 외유성 시찰은 누전처럼 국고를 소모할 따름입니다.

전기가 고장 나면 신고 즉시 사고수습 요원이 출동해 고쳐줍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아무리 헛바퀴를 돌아도 수습할 방법이 없습니다. 겨우 있다면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타협’이 고작입니다. 그래서 정치가 경제를 압박하고 경제가 기술 개발의 발목을 잡는 정치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스마트 그리드의 도입이 더욱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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