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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장사하는 재미
신아연 2010년 11월 29일 (월) 01:54:51
"아니, 어째서 문인이 글을 쓰지 않고 부엌에만 박혀 있단 말입니까?"

식당을 시작한 이후 신문 기자 노릇도 사실상 그만둔 데다 신변잡기나마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요즘, 가게를 찾아주신 지인들이 제게 건네는 말씀입니다.

"저 이제 문인 아닙니다. 대신 (식)칼잡이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무인으로 불러주십시오."

"아, 그러니까 바야흐로 문무를 겸비하게 되신 거군요."

재치있는 손님 덕에 박장대소가 터집니다.

"그래, 글쓰는 것과 음식 하는 것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어떤 분은 또 이렇게도 묻습니다.

"글쓰기는 쉽지만 재미가 없고 밥장사는 두렵지만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재미있는 일이 더 하고 싶겠지요."

글쓰기가 어찌 쉬울까마는 수십 년 해오던 일이니 천직까지는 아니라 해도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익숙하다는 뜻이며, 밥장사는 안 해보던 일이니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 깨끗이 비워져 들어올 때의 짜릿함이란 일종의 중독과도 같은 체험이라 늦게 배운 도둑질처럼 무척 재미가 납니다.

더구나 서양 사람들 입에서 내가 만든 파스타나 리조토가 맛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날아갈 것 같은데,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도 같은 손님이 찾아와 같은 메뉴를 찾을 때의 황홀감이란... 거기다 대여섯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뽑아낼' 때의 속도감까지 즐길라치면 글 써서 댓글 달릴 때와는 성취감의 차원이 사뭇 다릅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제 스스로는 내 속 어디에 이런 숨은 능력이 있었나 기특하고 대견하기 그지없습니다.

25년 글쟁이 인생을 접고 나이 50에 '오너 셰프'를 꿈꾸고 있는 요즘, 제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평상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뒷꼭지에 노상 번역 따위나 원고 부담이 걸려 쉴 때도 쉬는 것 같지 않던 일상이 이 일을 하고부터는 저절로 말끔하고 명료해졌습니다. 비록 과도한 스트레스와 심신의 고단함에 절어 살지만 육체노동이 주는 단순한 생각과 삶이 정신 건강에는 오히려 이롭게 느껴집니다.

글을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니 의무감에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곤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오늘 날씨가 좋은가, 나쁜가가 주 관심사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장사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하루를 시작하고 반대로 초장부터 비가 오면 지레 실망하곤 하는 거지요.

밥장사는 날짜보다는 요일 개념이 우선이라는 것도 곧장 체득했습니다. 어느 밥집이나 주초는 한가하다가 목요일부터 탄력을 받는다는 것, 하지만 상승 기류를 타지 못하고 붐벼야 할 주말에 그만 맥없이 주저앉으면 그 주는 헛장사를 했다는 것도 체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밤 11시, 12시가 좋이 돼야 남편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그 야심한 시간에 영업을 하는 식당도 있다는 사실을 전에는 당최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처럼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이라는 것도 예전엔 미처 몰랐구요.

다소간의 취기에 곯아떨어지면 잠깐 눈만 한번 감고 뜬 것 같은데 어느새 아침, 또 허겁지겁 그 날의 '쳇바퀴'를 돌리러 나갑니다. 이쯤되면 삶이 단순해진 것이 아니라 무식해진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단순무식'이라 해야겠지요.

얼마 전에 들었는데 한국의 '잘 나가던' 한 '광고쟁이'가 몇 달 전에 홍익대 부근에 이태리 식당을 열었다고 합니다. 저는 25년 글쟁이, 그 분은 25년 광고쟁이, 그러니 나이도 어슷비슷하고 가게를 시작한 시점도 얼추 같고, 파는 음식도 같고, 공교롭게도 가게 이름까지 똑같이 '휴식, 쉼'을 뜻하는 '(라)파우자'라니 재미있는 우연이 겹쳤습니다.
더군다나 그분은 하고 싶어 못 견뎌 이 일을 시작했다니 모르긴 몰라도 정신노동을 육체노동과 맞바꾼 개운함이 남다를 겁니다.

저를 보면 혀를 끌끌 차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마도 요런 대가가 있다는 것은 모르실 걸요. 체력이 버텨주는 한, 그리고 무엇보다 돈 버는 재미에 맛이 들리는 한 이 일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더 솔직히는 '내겐 너무 골치 아픈 글쟁이, 신문쟁이'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이 일을 꾸려가게 하는 또하나의 동력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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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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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 (110.XXX.XXX.142)
'쉽지만 재미가 없는 일, 두렵지만 재미있는 일'.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잘 하셨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저도 얼마 전 아프리카 세네갈의 한국 중소기업이 투자한 회사에 와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생전 경험해보지 않던 사업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편함과 두근거림이 함께 있습니다.
신나게 일하시니 보기에 무척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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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0 22: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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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62)
이 글의 중간쯤에서 혹시 신참 셰프께서 '돈버는 재미를 알아버리셨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역시.....이 정도면 저도 준 도사는 되겠습죠? 비오는 날은 손님이 적을 수 있다 하셨는데 여기서는 비오는날은 *부침개*를 많이 먹지요. 그 곳에서도 우중충하거나 쓸쓸한날 한잔 기울이면서 먹을 수 있는 메뉴로 개발하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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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16: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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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42)
사람마다 ‘밥벌이’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프리랜스’라는 것이 왜 그렇게 좋은지. 지금으로 치면 비정규직인가요. 비정규직이 안정된 밥벌이가 될 날이 와야될 것인데 걱정입니다. 각설하고 지금 하시는 일이 재미있다고 하시니 일단 축하드립니다. 이 일은 되고 저 일은 안 되고 가려가며 사는 사람이 지구상에 몇 퍼센트나 될까요. 그렇지만 가출해가면서 자기 길가는 사람 보면 외계인 같기도 하고, 나는 그런 사람을 존대합니다. 글 써시다 다른 길로 가시니 내 눈에는 가출입니다. 뜻하시는 일 소원성취하시길 멀리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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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12: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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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삶의 방식도 다양하고 만족의 척도도 다양해서 꼭 어떤 삶이 유의미하다고 짚을순 없지만 한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특전은 아니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연씬 행운이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사람을 먹이는 일, 글 쓰는 일보다 훨씬 소중함을 아시고 최고의 음식에 최선의 마음을 비벼 파는 유명한 식당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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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10: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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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75)
단순 무식(?)하게 사는,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유식한 글쟁이 들의 옳바른 사회의식으로 선도해야 될 사명이 오늘날 더욱 필요함을 느낌니다.
아연씨!
하루에 30분 정도의 홀로 "사색하는 휴식"을 놓치지 않는다면 글쟁이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임니다.
먼저 경험한 자로써의 조언임니다.
가내 번창하길 기원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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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09: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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