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띠’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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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띠’ 심리

임종건

2010년 12월 03일 (금) 00:01:18

태권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태권도 실력을 남에게 가장 과시하고 싶은 때가 유단자 직전의 붉은 띠를 땄을 때라고 듣기는 했습니다. 유단자가 되어 검은 띠를 매게 되고, 단수가 높아질수록 아예 싸울 일이 없게 된다는 얘기도 하지요. 피차간 공격이 상대에게 치명(致命)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핵무기로 말한다면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그런 검은 띠들이고, 북한이 바로 붉은 띠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북한이 하는 행동은 어설픈 핵무기 몇 개를 만들어 놓고 이를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엔 미국의 핵과학자를 불러다 플루토늄 추출보다 더 위험하다는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여줬다고 하죠.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누구 하나 별로 겁먹는 표정들이 아니었죠. 장난감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북한의 딜레마입니다. 그 딜레마가 연평도 포격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겠지요. 그 같은 도발의 배후는 원했건, 원치 않았건 간에 중국일 수밖에 없고요.

북한의 이번 도발이 중국을 도외시한 독단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의 말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라는 겁니다. 연평도 공격이 중국이 주최한 광주(廣州) 아시안게임의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에서 일견 그럴듯도 하죠.

과연 그럴까요. 북한이 중국에 바른 소리를 한 것은 19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김일성이 중소 등거리외교를 할 때 잠시 뿐이었죠. 중소 등거리 외교가 가능했던 것은 중소 두 나라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일 겁니다.

소련해체 이후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물론 경제적 가치도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에선 러시아와의 관계는 동맹이라기보다 보통 이하의 관계였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중국 일변도로 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북한은 중국만 참석을 하지 않았다면 연평도 공격을 G20 서울회의 때 저질렀을 거라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그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 때 서해교전을 도발한 전력도 있지요. 자신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릴 목적이라면 G20회의는 월드컵을 능가하는 선전효과 만점의 기회였을 겁니다.

G20정상회의를 피한 것은 다른 회원국들 사이에서 중국이 겪게 될 당혹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해야겠죠. 모든 참가국 지도자들이 그런 도발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하지 않았겠습니까. 중국을 덜 당혹하게 하면서 중국의 앞잡이 노릇을 할 구실을 연평도발 직후에 실시된 서해에서의 한미합동 해상훈련에서 찾았을 겁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 때의 ‘흐뭇한’ 기억도 떠올렸을 겁니다. 중국은 당시 남북한에 대해 양비론으로 점잔을 빼면서 북한 편을 들었지요. 아울러 서해에서의 한미해상훈련에 대해 강력하게 시비를 걸어 서해에 출동키로 됐던 미국의 핵항모 조지 워싱턴 호의 방향을 동해로 틀게 하는 성과를 올렸지요. 북한은 어느덧 중국에 ‘기특하게’ 보일 수 있는 도발을 골라서 하는 어릿광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지금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 한국을 견제할 꽃놀이 팻감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체제를 용인했고, 북한의 야만적인 테러행위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것이 연평도발의 진짜 배경이라고 하겠습니다.

중국마저 등을 돌리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빠진 북한이 이판사판 식으로 나올 지도 모르죠. 굳이 중국의 역할을 인정한다면 그런 막가파적 행동을 자제케 하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실제론 북한의 막가파식 도발의 강도만 높여주고 있는 겁니다.

중국이 하는 행동을 보면 지역패권 장악을 위해 북한을 이용하려는 것이지 북한을 진정으로 돕고, 한반도의 궁극적인 안정을 이루게 할 의사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돕는 것도 북한의 자원을 담보로 잡고, 연명할 수준의 원조를 제공해서 현상유지를 하자는 게 고작인 듯합니다.

한반도가, 나아가 동북아가 안정되려면 북한이 잘 살아야 합니다. 북한이 잘 살려면 외국과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핵 포기의 궁극적인 목표도 이를 위한 것이라고 해야겠죠.

남한은 동족의 입장에서 그 일을 해야 할 일차적 파트너입니다. 그래서 금강산 개발을 통해 막대한 현금을 지원했고, 개성공단을 통해 돈을 버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고, 금강산 관광객 살해사건, 천안함 폭침사건에 이어 연평도 포격이라는 전쟁행위까지 저지르고 있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기도 유분수가 아닙니까. 도울래야 도울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여건에서 남한 다음으로 북한을 돕는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는 큰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돈을 법니다. 중국은 북한에게도 그런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연평도 사건에 대해 종전보다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남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가하면 6자회담의 중국대표는 회담의 조기개최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6자회담은 그 동안 경과로 보건대 개최가 능사는 아닙니다. 중국이 한미일 모두로부터 부정적 대답을 들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6자회담은 열리게 되겠지요. 이제부턴 중국의 역할이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북핵 포기의 책임을 중국도 맡는 겁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초기에 기술을 제공한 점이나 확산방지를 소홀히 함에 있어서는 소련과 함께 중국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동안은 북한의 핵개발 저지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 몫이고, 중국은 뒷짐을 지고 6자회담 주최국 자격을 즐기는 형국이었습니다. 6자회담에서 진전이 없었던 것도 그런 구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에선 중국은 미국의 견제세력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만, 북한 핵에 관한 한 북한을 이용해 미국을 견제하려고만 하지 말고 한국 미국과 손을 잡고 북한을 진정으로 돕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G2국가의 역량은 그런 일을 위해서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북한에 핵우산 제공의지를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중국의 경제개발 방식을 따르게 하는 것이 더 유용한 방법이겠죠. 그럴 경우 한국과 미국의 동참 여지가 얼마든지 생길 터이니까요.

아울러 태권도에서와는 달리 핵문제에서 붉은 띠는 검은 띠가 되기 어렵다는 것도 주지시키면 좋겠지요. 검은 띠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쯤은 돼야 맬 자격이 인정되는 거 아닙니까. 몇몇 붉은 띠 국가들 가운데 인도 파키스탄은 북한처럼 날뛰지는 않고, 이스라엘은 날뛰는 편이지만 누구도 이들에게 검은 띠를 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핵무기 그거 가져 봤자고, 더욱이 백성을 굶겨가며 가질 것은 못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