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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특별전 이야기
안진의 2010년 12월 17일 (금) 01:55:46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을 감상하고 전시장 지하에 있는 카페에 앉았습니다. 주문한 카페라떼에는 프랑스 왕실의 황금백합문양보다 친근한 나뭇잎이 그려져 있습니다. 커피의 라떼 아트(latte art) 덕분에 눈이 즐거워지고 마음이 조금씩 관대해지기 시작합니다. 좀 전까지 남의 나라 왕실의 초상화와 왕가 계보를 이렇게 암기하듯 열심히 보아야 하나, 다소 불편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순정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덕분에 ‘루이 14세부터 마리 앙투아네트까지’라는 전시 속의 인물들이 낯설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긴 이름은 쉽게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자꾸 관람 동선을 깨면서 그림과 왕실 계보를 번갈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나라 초상화와 역사는 이만큼 동경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는지 일종의 자책감이 생겼던 것입니다.

씁쓸했던 마음을 던져놓고 전시 소감을 몇 자 적어봅니다. 먼저 당시 서명이 없는 왕실의 초상화에 가끔씩 화가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열 살 때의 루이 14세의 초상>의 경우 제단까지 높여 어린 군주의 위엄을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그 위대한 단상 아래 한 귀퉁이에는 화가의 팔레트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배경으로 쓰인 조각상의 받침대에 작가의 서명을 노골적으로 그려놓는 경우도 있지요. 작가의 유명도가 주문자의 명성에 따르는 시기였던 만큼 왕의 초상화에 자신을 표시하고자 했던 속내는 인간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초상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 여인들의 육체미입니다. 이 시기 권력층 여인들의 모습은 좁은 어깨와 작은 유방, 가는 허리, 작은 손, 작은 발이 특징입니다. 이전의 시대에서 보아왔던 아프로디테나 비너스 같은 풍만한 몸매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모유를 수유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마저도 노동의 일환으로 여기는 상류층 여인들에게 어머니로서의 큰 유방은 불필요했던 것입니다. 힘은 노동에서 요구하는 비천한 것이었고 아름다움은 노동하지 않는 가냘프고 고운 몸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던 시대인 것입니다.

남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종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통해 몸만들기가 한창인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어이없을 일이지만, 왕가의 푸른 망토를 걸치거나 신적인 인물에 빗대어 표현한 ‘신화적 초상’들에서도 눈에 띠는 것은 여인과 같은 고운 손입니다. 그리고 다소 뚱뚱해 보이는 상체에 대조되는 가는 다리와 작은 발입니다. 이 시기 남자들은 스타킹을 신어 각선미를 드러내는데, 이처럼 남성의 여성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패션의 리더였던 루이 14세는 왼손을 허리에 얹으며 허리를 약간 비튼 채 왼발을 앞으로 내민 미스코리아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발레로 다져진 다리의 각선미를 뽐내고,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신은 하이힐의 빨간 구두 굽으로 국왕의 지위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탈모증 때문에 고불고불한 웨이브의 긴 가발을 착용했지만 이 가발은 왕의 권력을 표시하는 상징이 되고, 한쪽 다리를 드러내는 포즈는 이후 프랑스 국왕 공식 초상의 전통적인 도상이 되는 것이었지요.

지금의 시선으로는 남성미란 종아리에서 슬쩍 드러나는 근육 말고는 도대체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더욱이 어린 <루이 조제프 자비에 드 프랑스>의 초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왕실에서 태어난 남자 아이들은 일곱 살 생일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여아의 드레스를 입힙니다. 이유는 사랑스럽게 자라라는 의미인데,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알았다면 격노할 일이었겠지요.

거기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른이건 아이건 창백한 피부에 붉은 뺨을 특징으로 합니다. 얼굴 전체에 백분을 바르고 뺨에 연지를 바르는 것입니다. 초상화속의 주인공들은 탱탱한 젊음을 갖고 있는 청춘이거나 아니면 어린 미소년과 미소녀들입니다. 루이 15세의 부인이었던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의 1748년 초상>의 경우 42세의 나이에 대례복이 아닌 평범한 복장의 수수한 패션으로 그려졌는데, 이 초상화는 왕비의 모습을 너무 소박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문제시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대개의 초상화들은 시들지 않는 젊음과 향락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 혁명 이전의 상류사회가 그대로 반영된 모습입니다.

이 전시는 그 외양에서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베르사이유궁을 포함한 프랑스 왕실의 찬란했던 황금기를 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17, 18세기 어쩌면 몰락해 가는 절대왕정시대 왕실의 한 단면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당시 풍속의 역사를 이해하고 전시를 본다면 새로운 발견들이 눈에 띌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시회를 찾는다면 가급적 도슨트(docent)의 도움을 꼭 받으시길 바라며, 순수미술로서의 명화 감상에 초점을 맞추시지는 않으시길 바랍니다. 전시의 구성은 왕실 초상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역사공부인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역사에서 절대왕정의 화려한 국가는 시민들의 분노로 대혁명을 맞이하며 끝나지만, 프랑스라는 나라는 이렇게 이야기 구조를 갖춘 예술품으로 지금까지도 쉽고 아름답게 프랑스를 보게 하는구나. 부러움도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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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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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수 (121.XXX.XXX.16)
이번 주말에 한번 보려가야 겠군요.바로코예요~ 로코코시대예요?
아프로디테나 비너스는 같은 인물이죠? 내가 잘 못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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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9 21:31:03
0 0
열매 (64.XXX.XXX.15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림을 어떤 생각으로 보고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히 댓글 쓰신 분들의 의견이 생각을 더해 주네요. "빵이 없으면, 케이크을 먹을 것이지!"... 상류층의 정의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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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8 05: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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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18)
"빵,빵을 달라"의 답변에 마리 앙뚜와네트의 주절거림이 유명하지요.
삶의 최저선을 몰랐다는 것,역지사지를 몰랐던 최상류층의 단순사고방식이 불행을 자초함을 교훈으로 남겼지요.
귀한 자식일수록 고생을시켜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들이 대조되어 떠오름니다.
오늘 날에도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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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7 0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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