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의 풍경_(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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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의 풍경

김영환

2010년 12월 30일 (목) 08:18:18

여름에는 자외선을 차단한다는 토시를 팔던 외판원들이 요즘엔 중국산 싸구려 장갑이나 방한 스타킹을 팔고 있습니다. 제법 붐비는 지하철 전동차 안으로 허리에 찬 카세트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성가를 틀면서 앞을 못 보는 걸인이 돈 통을 들고 지나갑니다. 주로 여인네들이 천 원짜리 지폐나 동전을 넣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하철 외판원들은 한동안 남자 일색이었지만 최근엔 중년부인들은 물론이고 처녀나 할머니 같은 분들도 가끔 보입니다. ‘팔지도 말고 사지도 말자’고 하지만 생활이 어렵다보니 지하철 행상이 밀고 들어오는 것이지요.

지하철 역 입구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외롭게 들립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 영향 때문인지 호응하는 사람이 적어 보입니다. 사실 돈 몇 천 원이나 몇 만 원을 자선냄비의 투입구에 집어넣을 때 별별 생각을 다 하겠죠. “이렇게 돕는다고 얼마나 도움이 될까?”, “언제 이렇게 안 해도 불쌍한 사람들이 사라질까?” 하긴 손을 내밀지 않아도 눈치 볼일 없이 전화만 손에 쥐면 텔레비전방송 ARS전화로 자선의 손길을 쉽게 펼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요. 이웃돕기 마음이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한랭화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무자비한 동장군처럼 혹독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쪽방촌의 독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올 리 없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자선단체의 김장배달이 없었다면 김치를 아예 구경도 못했을지 모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개화동의 아동 시설은 올해도 눈이 빠지게 자선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이걸 누가 드시게 될까”, 얼굴에 고춧가루를 묻히면서 김장 속을 넣은 분들이 담근 김장 몇 포기 가격이라야 몇 만원도 안 넘을 소액이지만 그 사랑만큼은 아주 무거운 것이지요. 조카가 크리스마스 무렵 친구들과 함께 인천의 달동네를 찾아가 연탄을 배달해드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흐뭇했습니다. “벌써 다 자랐구나.”

연말에 눈만 퀭한 채 무얼 먹어 부른지 볼록한 배로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어린이의 모습은 신지호 국회의원이 북한에 뿌린다는 전단지의 사진에 나와 있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주민은 이렇게 굶주리는데 ‘선군정치 덕분에 전쟁이 안 일어난다’는 궤변을 늘어놓더니 핵으로 남한을 공격해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공갈을 쳐대는 북한 지도부의 시대착오성이 처량할 뿐입니다. ‘민족끼리’라는 구호는 급할 때만 쓰는 선전용이었나 봅니다. 그럴수록 북을 돕는 손길은 얼어붙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손학규가 연평도 사격훈련에 대해 착각하는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죠. 국민이 북의 포탄에 맞아죽는데 그렇게 몰아가시다니요.

종각역 제일은행 쪽 출입구나 안국역 인사동 출입구에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동전 한 푼을 구걸하고 있죠. 추운 날씨에 허기에 지쳤는지 대낮인데도 두꺼운 박스에 들어가 잠들어 있는 노숙자들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몇 백 미터 떨어진 백화점에서는 수백만 원짜리 명품 외제 핸드백이나 옷을 사려는 여인들의 탐욕스런 눈빛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스마트폰 회사야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할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는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너무 즐비하다는 것을 세밑의 지하철에서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간 큰 경기도 도의원들이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구입한다는 예산으로 9,216만 원을 통과시켰습니다. 거의 같은 액수의 맞벌이부부를 위한 가정보육교사 지원 예산안 9,800만 원은 전액삭감이랍니다. 첨단 스마트폰으로 뭘 하는지, 어디에 거는지 확인할 수 없는데 왜 국민들이 그들의 스마트폰 대금을 내줘야 합니까? 우리 국민들이 그런 돈까지 대줄 정도로 멍청하게 보입디까?

논란 속에서 서울시의회는 오늘 오전 1시 내년 서울시내 초등학교 전면 무료급식예산 695억 원이 담긴 새해 예산안을 밀어붙였습니다. 과연 이것이 사회복지이고 서민복지인지 의아합니다. 세밑의 스산한 모습을 위에서도 늘어놓았지만 저자거리에 가면 타이어지에 온 몸을 대고 기어 다니면서 구걸하는 장애인들이 있었습니다.

물어봅시다. 왜 서민들이 부자 아이들의 점심값을 대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고 소외계층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을 부자 아이들에게 빼앗겨야 합니까? 이것이 서민복지의 정체이고 정의사회입니까? 정치한다는 자들은 ‘기계적 평등’이라는 세뇌된 이념에서 벗어나 눈을 크게 뜨고 그런 일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 이 세계 구석구석을 파악한 연후에 움직이기 바랍니다. 비싼 돈으로 선진국에 나가면 관광하지 말고 이런 것부터 챙겨보라는 말입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정신을 가르치는 곳이지 밥 먹여주는 곳은 아닙니다. 밥은 일차적으로 가정의 책임이며 사회가 보호해야할 대상자만이 예외지요. 그렇게 부자 아이들에게 공짜 밥을 주고 싶으면 종로 3가를 지나가는 가여운 노인들이나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택시기사들에게 점심밥을 주시던가요.

논에 물을 댈 때에는 바닥 전체에 물이 고여 올라와야 하는 법입니다. 바닥 전체가 다 차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것은 무슨 발상입니까? 선거를 앞두고 부자들의 표가 얼마나 화급한지 모르겠지만 부자 아이 공짜 점심 대신에 거지같이 더 가난한 사람들의 다른 복지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회의 나눔이고 복지의 상식입니다.

홍정욱 (115.XXX.XXX.148)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생색내고 표 얻기 위함인지 무상급식이 절실해서인지는 불문가지라..정치인들이 가끔은 자신의 이해가 아니라 대의를 좆는 자세를 가질 때 우리나라가 진정 선진국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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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1 1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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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 (203.XXX.XXX.41)

구구절절 옳은 말씀, 한번 머리가 굳어지면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가짜 복지론자들이 가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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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11: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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